2021.10.17. 주일설교. 인생 수정 7: 거짓말, 진실이 죽어가는 시대를 바라보며(잠12:22). 양은익 목사.

 

  • 오늘 설교 음향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앞부분 5분 정도 잡음이 심합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생 수정 7: 거짓말, 진실이 죽어가는 시대를 바라보며(잠12:22)

1.
오늘 보려고 하는 인생 수정의 주제는 ‘거짓말’입니다. 잠언의 지혜자와 성경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지 살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여학교 교실 풍경을 그린 시 한편 입니다.

“선생님은 무얼 먹고 그렇게 키가 커요?” 풋과일 같은 여자애들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올려다본다. 시선은 집중되고 정적이 감돈다. “착한 마음”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아이들 벌떼같이 소리지른다. 책상 탕탕 내리치는 놈 자다가 벌떡 깨는 놈 힐끗힐끗 눈 흘기는 놈 머리 싸매고 뒤집어지는 놈 우웩우웩 토악질 흉내내는 놈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놈 교실 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다. 그래, 이놈들아 말도 안 되는 소린 줄 낸들 왜 모르겠냐만 그래도 우기고 싶구나 너희들 앞에서만큼은 착한 척이라도 하고 싶구나 (김수열, 거짓말)

키가 왜 그렇게 크냐는 물음에 ‘착한 마음’이라는 사오정 같은 대답을 합니다. 그 대답에 아이들이 책상치고, 눈 흘기고 난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제목이 거짓말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듯 말하는 게 거짓말인데, 선생은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착한척’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김수열 시인은 실제 교사라고 합니다. 거잣말을 말하는 오늘 자칫 무거운 느낌이 들까, 희망을 말하는 거짓말, 되고 싶은 마음 표현하는 거짓말도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어, 읽게 된 시입니다.

거짓말의 범위는 넓습니다. 표로 정리해 왔는데 보시기 바랍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짙고, 독한 거짓말입니다. 왼쪽의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White lie, 선의의 거짓말)이고, 맨 오른쪽 거짓말은 Black Lie, 음모가 있는 거짓말, 악의에찬 거짓말, 독한 거짓말입니다. 모든 거짓말은 이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가운데 회색 지대의 애매한 거짓말을 기점으로 왼쪽으로 가면 봐줄만한 거짓말이 되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위험하고 나쁜 거짓말이 됩니다.

왼쪽의 거짓말에는 배려하는 거짓말,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 많이 있습니다. 부인이 묻습니다. 전XX이란 나랑 누가 더 예뻐. 이때 대답 잘해야 됩니다. 딸들이 아빠에게 묻습니다. 제X랑 나랑 누가 더 이뻐! 이런 거짓말 갖고 거짓말이다 아니다 그러면 결벽증입니다. 살다보면 알아도 모른척 할 때가 있습니다. 거짓말로 숨길 때도 있습니다. 배려하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의 히브리 산파들. 남자 아이들 죽이라는 명령을 받지만 죽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합니다. 히브리 산파들이 건강해서 도착하기 전에 다 낳습니다. 여호수아 2장의 라합도 거짓말로 정탐꾼의 생명을 보호합니다. 산파나 라합이나 들키면 자신들이 위험해 지는데도 거짓말로 생명을 구해 냅니다. 거짓말이지만 하나님은 나쁘다 하지 않고 칭찬하고 복을 주십니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거짓말은 심각해 집니다. 배려는 사라지고, 자기만 있게 됩니다. 중상 모략이 넘쳐납니다. 부인 사래를 누이라고 했던 아브라함의 거짓말(창12),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던 야곱의 거짓말(창27장), 두려운 나머지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의 거짓말(마26장). 전부 자기 살려고 했던 치졸한 거짓말들입니다.

좀 더 오른쪽으로 가면 동생을 죽이고 모른다고 했던 아벨의 거짓말(창4장)이 있고, 땅 값을 숨겼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거짓말(행5장)이 있습니다. 생명과 직결됐던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은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한 가족의 삶, 한 사회의 길을 무너뜨리는 무서움이 거짓말에는 있습니다. 거짓말의 극치가 창세기 3장의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이 거짓말로 에덴의 삶이 끝나고 사람은 거짓말에 흔들리는 존재,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존재,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존재가 됩니다.

거짓말의 스펙트럼은 이처럼 넓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거짓말은 오른쪽 거짓말들, 음모가 있는 나쁜 거짓말들입니다. 이런 거짓말은 심각한 위해를 가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 거짓말의 유혹에 무너지는 사람 모두를 퇴보하게 하게 만듭니다. 이런 거짓말에 대해서 성경은 단호합니다. 거짓말 하지 마라. 거짓을 버리라. 거짓은 어리석은 자의 행동이다.

오늘 읽은 잠언의 지혜는 한 구절의 말로 전해 오는 짧은 지혜지만 깊게 받아야 합니다.거짓말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는다. 하지만 진실하게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잠12:22). 하나님은 거짓말을 싫어하고, 가증스럽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거짓이 에덴의 동산을 훼손했기에 하나님은 거짓에 단호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출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9계명입니다. 이웃에 대해여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엡4:25.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거짓말에 대한 성경의 요구를 신앙인들은 엄중하게 받아, 만연한 거짓의 현실을 이겨내야 합니다.

2.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 냅니다. 없던 호랑이를 어떻게 만들어 냅니까? 거짓말로 만듭니다. 불편한 말이지만 지금의 삼인성호의 시대, 가짜 뉴스의 시대입니다. 여러 명이 모여서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합니까?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들이 거짓의 아비인 미혹의 영을 받아 거짓을 만들어 냅니다.(딤전4:2)

예레미야 6장에 예레미야 시대의 모습이 나옵니다. 쉽게 넘길 수 없는 모습입니다. ‘힘있는 자든 힘없는 자든 모두가 자기 잇속만을 채우며,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았다. 예언자와 제사장까지도 모두 한결같이 백성을 속였다.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괜찮다, 괜찮다’ 하고 말하지만, 괜찮기는 어디가 괜찮으냐? 그들이 그렇게 역겨운 일들을 하고도 부끄러워하기라도 하였느냐? 천만에!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쓰러져서 시체더미를 이룰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벌을 내릴 때에, 그들이 모두 쓰러져 죽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렘6:13~15, 새번역)

거짓말이라는 현상으로 우리의 모습을 진단하면 거짓말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죄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거짓말을 능력으로 봅니다. 생존의 기술, 정글에서 살아남게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거짓이 있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파스칼이 오래 전에 한 말입니다. ‘오늘날 진실은 흐려지고, 거짓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뽑은 올해의 단어가 ‘Post-truth’입니다. 진리와 진실을 넘어선 ‘탈진실’의 사회가 됐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진실을 넘어섰기에 사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이 중요하지 않으니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거짓을 말할 수 있고, 거짓이라는 감정을 이용해 대중들을 선동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사실이 드러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보다 감정이 중요하고, 각자의 해석이 중요합니다. 생존 앞에서 사실과 진실은 무력해졌습니다.

악의 평범성을 말한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예견한 경고입니다. ‘지속적인 거짓에 의해서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부식되어 버린다. 거짓이 진실과 사실을 덮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 처럼, 지금 우리는 진실이 죽어가는 슬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3.
성경과 현실의 갭이 큽니다. 성경은 거짓말히지 말라고 합니다. 현실은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염된 공기 속에 있으면 누구나 다 오염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거짓으로 가득차 있는 이상 나 혼자 깨끗해 질 수는 없습니다. 구조화된 악이 거짓을 권하고, 거짓을 명령합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필요하고, 거짓의 관행과 문화를 고쳐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이 과정에 그리스도인들이 기꺼이 동참해야 하고, 힘을 써야 합니다. 물음없는 동조가 아니라, 묻고 아파하고, 할 수 있으면 고쳐 나가는 애씀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는 힘(마5:37)을 길러 나가야 합니다. 아닌게 분명한데 내편이기 때문에, 안면이 있기 때문에 ‘아니오’라는 말을 하지 못하면 모순과 부패는 끊어질 수 없고, 거짓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사회의 부패와 후진성은 고쳐 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만드는 자(world-maker)이지, 세상을 따르는 추종자(world-follower)가 아닙니다. 세상이 잘못될 때 세상을 고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열정이 흑암과 어둠 속에서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삶이 되야 합니다. 거짓이 주는 결과는 고통이고, 타락이고, 부끄러움이고, 퇴행입니다.

고통 중에 있던 욥이 했던 단호한 다짐입니다. 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6. 내가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욥27:4~6)

거짓의 문화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속깊은 다짐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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