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부지런히 찾기를(잠2:1~12)
더 늦기 전에 들으라는 지난 주 말씀보다 더 부지런히 찾으라는 오늘 말씀이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입니다. 아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혜자는 지혜를 말하면서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극적으로 지혜를 구하고 찾아나서라는 설득과 도전을 오늘 본문에서 하고 있습니다.
1.
4세기 교부였던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347-420)의 문장입니다. 로마 시대 격변기에 사회와 교회를 보면서 한 말입니다. ‘배가 침몰 중인데 우리는 배에 실린 화물을 걱정하고 있다’. 침몰하지 못하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잿밥만 걱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 말입니다. 여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배가 우리 시대의 교회라면 이 표현처럼 위태위태합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더 가라 앉고 있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히에로니무스가 보았던 것 처럼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묻고 싶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 침몰 중에 있다는 증거가 있소! 저는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한 단어면 충분합니다. ‘신뢰 상실’입니다. 우리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입니다. 굳이 통계를 나열하지 않아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더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습니까? 개인이나 단체나, 신뢰를 잃으면 다 잃는 건데, 이 정도면 다 잃은 것이고, 침몰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뭐겠습니까? 자잘한 이유들 다 빼고, 크게 말하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신앙인의 삶, 윤리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상실했고, 윤리를 상실했습니다. 속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신앙인의 삶에 하나님이 별로 없습니다.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비중이 작으니 윤리를 상실한 모습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위태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침몰하지 않으려면 무너져 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회복하고, 신앙인의 윤리적인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신앙을 내면화(內面化,Internalization)해야 합니다. 신앙을 다지고 다져서, 지혜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역동적인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2.
지혜자가 오늘 2장 본문에서 설득하고, 권고하는 게 신앙의 내면화입니다. 2장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1-4절은 조건이고, 5-22절은 그 조건을 받아 들일 때 누리게 되는 혜택과 유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장에서 듣지 않는 이들에게 들으라고 강권한 지혜자는 2장에서는 더 강하게 나옵니다. 듣는 정도의 열심이 아니라, 지혜의 말을 1절, 받고, 간직하며, 2절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고, 3절, 구하고, 4절, 금은 보화를 찾듯 성실히, 부지런히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1절. 3절, 4절.if. 말을 받으면, 지식을 구하면, 은을 구하듯 구하면), 지혜의 말씀이 주는 놀라운 혜택과 유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리게 되는 혜택이 5절. 하나님을 알게 되고, 9절, 지혜가 마음에 들어가 공의와 정의, 정직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회복 할 수 있고, 윤리를 회복 할 수 있습니다.
관건은 부지런히 담아내고, 찾는데 있습니다. 이게 조건입니다. 조건 없이 지혜로워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을 강하게 원하고, 찾아내는 그런 신앙적인 갈망과 삶의 과정을 통해 회복은 일어납니다.
3.
1절에서 ‘받고’, 다음에 나오는 동사가 ‘간직하다’인데, 받다에서 간직하다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지혜의 말을 받아서 계속해서 쌓고, 쌓고, 축적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내면화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받고 쌓고, 받고 쌓고. 축적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요8:32에서 주님 말씀하신 것 처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우리는 후히 주시고, 부족하다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고(약1:5), 그때 주시는 말씀이 있다면, 거부하지 말고 온유함으로 받아(약1:21), 내 안에 쌓아 갈 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어떤 이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공의와 정의, 정직 가득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해 볼만합니다. 전해져 오는 랍비의 말입니다. ‘지혜의 말을 백 번 반복하는 자와 백 한 번 반복하는 자는 다르다’.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4.
지난 주에 말씀 드린 것 처럼 신앙인의 삶에는 ‘성찰’이 있어야 하고,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의 양 날개는 묵상과 기도입니다. 묵상과 기도로 신자는 날게 됩니다. 여기서 먼저 와야 하는 것은 기도보다 묵상과 성찰입니다. 말씀으로 자신을 살핀 후에 하는 기도가 온전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묵상없이도 기도할 수 있지만 묵상없는 기도는 자신의 원함과 욕망만을 드러내는 수단이 될 위험성이 농후해집니다. 기도가 답답하고, 안되는 분들 계십니까? 묵상 후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묵상이 있는 기도는 평안합니다. 간절해 집니다. 기도가 됩니다. 기도가 있고, 기도를 하는데 변하지 않는 이유는 말씀의 내면화, 지혜의 성찰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10절.11절.12절에 보면 지혜가 내면화 될 때 일어나는 현상 3가지가 나옵니다. 기쁨과 보호와 구원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절실한 세 가지입니다. 10절. 지혜가 마음에 들어가면 내 영혼이 즐거워지고, 11절. 지혜가 나를 근신하게 하여, 분별력을 줘서 지키고, 보호해주고, 12절. 악한자의 유혹에서 구원하게 해 준다고 지혜자는 설득하고 도전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혜자의 설득을 받으시겠습니까? 거절하시겠습니까? 거절하지 마시고 받으시고, 부지런히 찾으셔서 기쁨과 보호와 구원, 누리며 사는 여러분의 인생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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