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좀 들어라!(잠1:1~7)
1.
오늘은 예고한 대로 미련한 자가 아닌 지혜자에 대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제목은 ‘철 좀 들어라’로 강하게 잡았습니다.철 들라는 말은 지혜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철들라는 말을 하는 화자는 잠언의 지혜자입니다. 듣는 사람들은 당시의 聽者들은 물론이고, 잠언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聽者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자가 청자에게 듣기를 원하는 것은 잠언의 기록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 철든 인생 살라’. 이렇게 정리 할 수 있습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바르게 살고, 바르게 판단하는 삶의 지침들입니다. 이런 지혜를 배워서, 거절하지 말고 받아서 ‘철든 인생’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잠언이 철든 인생을 강조하는 것은 철들지 않은 모습, 다른 말로 하면 ‘철부지’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강조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철부지는,‘철’을 ‘모르는 사람’(不知) 입니다. 철을 모르니 철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철’은 ‘때’라는 말입니다. 선조들은 24절기를 제대로 모르면, 철부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때를 알면 그 때에 맞춰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그때 철든 사람으로 대우해 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때를 잘 맞춘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농사도 그렇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하면 ‘철들자 망령난다’는 말까지 하겠습니까!
철든 것과 철들지 않은 것, 때를 알고 사는 것과 때를 모르고 사는 것. 너무 다르기에 지혜자는 자신이 처한 때와 상황, 형편을 알고 사는 철든 인생을 살라는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잠언의 도전입니다. 우리의 상황이 철든 지혜가 필요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격변이 지금 얼어나고 있습니다. 아감벤이라고 하는 철학자가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얼마 전에 한 말입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현재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일이다’. 백신을 맞고 있지만 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때를 아는 철든 지혜, 철든 이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2.
오늘 읽은 본문에서 철든이의 조건을 볼 수 있습니다. 1절부터 7절은 잠언서 전체의 도입부입니다. 여기서 잠언서 전체의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잠언의 기자는 말합니다. 철든 인생 살고 싶으면 첫째, 지혜를 받아 들여라. 둘째. 하나님을 받아들여라. 이것입니다. 지혜와 하나님. 철부지 같은 인생을 철들게 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입니다.
(1) 지혜를 받아 들여라.
4절과 5절 보시기 바랍니다. 4절에는 어리석은 자와 철부지들에게 주는 지혜의 선물이 나오고, 5절에는 지혜자들이 받는 선물이 나옵니다. 어리석든, 지혜롭든 지혜와 훈계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① 4절 입니다.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잠언의 말씀과 훈계가 어리석은 자와 젊은자들, 철부지들에게 그 말씀을 받으면, 슬기와 근신을 준다는 것입니다. 슬기는 판단할 수 있는 힘, 판단력입니다. 근신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힘, 분별력입니다. 없어서는 안되는 귀한 지혜가 생기게 됩니다.
판단과 분별은 훈계를 통해서 받게 되는 공의와 정의, 정직으로 인해서 가질 수 있습니다. 3절 보십시오.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하며’ 공의는 옳은 것입니다. 정의는 공정한 것, 사사로움이 없는 것입니다. 정직은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이 귀한 가치들이 지혜와 훈계와 잠언의 말씀들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이 바탕 위에서 판단하고 분별할 때 철든 인생의 삶이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바르게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철부지의 문제는 근시안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깊게, 넓게, 멀리’ 보지를 못합니다. 철부지를 영어로 childlike라고 하는데 아이들 처럼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철부지들이 많으면 철부지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철부지 사회의 특징 역시, 근시안적이고, 유아적입니다. 만사가 자기 위주, 자기 편 위주로만 돌아갑니다. 그름도 옳음이 되고, 사사로움이 넘쳐납니다. 떳떳하지 못한 일들이 가득차게 됩니다. 지혜와 훈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지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악인을 부러워하지 말고 못된 사람을 시기하지 말아라. 악한 사람은 앞날이 없고 나쁜 사람의 등불은 꺼진다’(잠24:19,20. 공동). 지혜를 구하면서 더 길게 봐야 합니다.
② 5절 입니다. 5절은 지혜자들에게 주는 지혜의 선물입니다. ‘지혜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지혜가 있어도 계속 지혜를 받게 되면 더 나아진다는 것입니다.
지략은 공동번역에서 ‘남을 이끄는 힘’으로 번역해주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남을 이끌 힘을 얻어’. 영어로는, ‘receive (get, obtain, acquire) guidance’로 나옵니다. 자신이 가진 슬기로움-좋은 판단력과 분별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인도하는 안내자(guidance)가 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가 걱정스럽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 ‘지략’이 풍부한 사람, 남을 이끄는 선한 힘을 가진 이들이 많이 나와 퍼즐처럼 꼬여있는 문제들을 풀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좌고우면하지 않는 슬기로운 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2) 하나님을 받아 들여라.
잠언 기자는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을 깊게 받아들이라. 철든이, 깊이 철든이는 신앙 안에서 나옵니다.
철부지를 벗어나게 하는 슬기와 근신, 판단과 분별력은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믿음 안에서 나옵니다. 우리 만이라도 고수해야하는 포기 할 수 없는 진리고 진실이고, 믿음입니다.
이유가 7절에 나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이 말하고 싶은 최고의 메시지입니다.
‘때를 분별하고, 때를 처신하는 철든 삶을 살고 싶은가? 여호와를 경외하라’ 왜요? 여호와을 경외하는 그 떨리는 마음, 그 존재에 대한 외경심에서 바른 판단과 지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떨림이 있으면 그릇된 판단과 결정을 견제하고, 많이 막아준다는 것을. 아십니까? 경외함이 살아 있으면 보는 이 없어도, 듣는 이 없어도 공의롭게 하고, 정의롭게 하며, 정직하게 한다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 지혜의 시작, 출발이 되는 이유입니다.
시대가 힘들고,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할수록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그 말씀과 훈계를 상수(常數, 기준)로 놓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거기서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가 가치있고, 복된 삶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부분)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떨림이 얼마나 살아있습니까? 시인 처럼, 아침 저녁, 마음의 구름 닦아서 살아있게 만드십시다. 이 신적 떨림이 우리를 바르게, 지혜롭게 만들어서 철든이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철든 인생으로 이 난세를 힘있게 헤쳐 나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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