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16. 주일 설교: 나는 스승이다(요13:12~15). 양은익 목사.

 

나는 스승이다(요13:12~15)

오늘은 스승의 주일로 지키면서 스승의 뜻을 새기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1.
스승은 바르게 이끌어 주고, 가르쳐 주는 소중한 분들입니다. 무엇을 하든 배우고, 자라기 위해서는 가르쳐 주는 이, 스승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친구 아니면 스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는 위로하라고 보내 주신 사람이고, 스승은 배우라고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입니다. 둘 다 삶의 동반자고,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들입니다. 스승이 스스로를 이긴 사람이라면 스승은 자기를 이기고, 극복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승이 될만한 사람입니다.

시141:5에서 시편 기자는 이런 기도를 합니다. ‘의인이 사랑의 매로 나를 쳐서 나를 꾸짖게 해 주시고, 악인들에게 대접을 받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새번역). 악인의 길로 갈 때 꾸짖어 주는 그런 의인, 그런 사람, 그런 스승을 달라고 합니다. 이런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수의 기도고, 삶을 아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스승을 가지고 사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스승의 권위는 시대와 상관없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권위주의는 없어야 하지만 권위는 있어야 합니다, 권위가 사라지면 가르침이 사라집니다. 아쉬운 것은 권위주의를 없애려다가 권위까지 없어지고 있습니다. 스승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기대하지 않고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스승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선생님들, 스승들은 그냥 쌤 아니면, 꼰대가 되 버렸습니다.

18세기 성해응이라는 사람이 쓴 [師說](교사의 말)이라는 글에 나온 한 대목 읽어 드리겠습니다.

‘백 년 사이에 풍속이 나날이 떨어져서 꼭 제 집에다 스승을 데려와 먹여 살리면서 그 자제를 가르치게 한다. 저 자제들은 평소에 교만한 데다 그 먹여 살린다는 위세를 믿고 스승에게 군림하려 든다. 스승도 또한 이 때문에 권위를 세울 수가 없으니, 꾸짖거나 책망할 수도 없고, 종아리를 치거나 회초리를 들 수도 없으며, 다만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이다. 자제들도 이미 스승을 낮추어 보면서 가르침을 받게 되니 학업에 진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또 이에 대해 스승이 힘쓰지 않는다고 책망하고 있다. 이것은 썩은 고삐를 주고서 사나운 말을 길들이는 것과 다름없다. 이 때문에 현명한 이들은 스승이 되려고 하지 않고, 스승 노릇 하는 이들은 다만 무언가 바라는 사람만 있을 따름이다’(성해응, 1760-1839, 師說)

조선은 군사부 일체의 시대인데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스승의 권위가 바닥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스승이 필요하다면 스승의 권위는 살아있어야 하고, 세워줘야 합니다. 존중하고, 따를 때 배우고 가르칠 수 있지, 고용인 처럼 하대하고, 군림하면 망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2.
우리에게는 확고하게 따라야 할 권위있는 스승이 있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선생 또는 주라고 부르는 제자들의 호칭이 맞다고 하신 후에 자신이 선생이요, 주님이심을 강조하십니다.

13절.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나는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선생이시기도 합니다. 선생됨을 강조한 예수님의 의도와 뜻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스승이니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스승이니,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따라야 하는 것이겠지요! 스승을 따르는 이들, 스승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스승인데 그 스승의 가르침대로 하지 않으면, 스승이라 할 수 없고 스승을 따르는 자라 할 수 없습니다.

‘진리가 있는 곳이 바로 스승이 있는 곳’(道之所存 師之所存)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처럼, 진리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습니다. 진리가 말씀이라면 말씀이 있을 때 스승이신 예수님이 계신 것이지, 말씀이 없고,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스승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제자가 되야 하는가? 제자에 대한 색다른 정의가 있습니다. ‘제자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어제 알고 싶었던 것과 오늘 알고 싶은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스승에게 가르치는 사람. 어제 알고 싶었던 것을 오늘 가르치면 제자들이 다 도망간다는 사실을 스승에게 가르치는 사람. 새로운 접근, 새로운 태도를 고민하지 않으면 도망간 제자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승에게 가르치는 사람. 스승은 더 이상 존경을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아픈 현실을 스승에게 가르치는 사람. 제자는 스승의 스승’ (정철)

스승을 안주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따르는 제자가 좋은 제자고, 발전이 있는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이 꼰대셨다면 이런 당돌한 도전은 거부하셨을텐데 예수님은 꼰대가 아니셨습니다. 꼰대는 ‘라떼’(나때) 밖에 없다고 합니다. 자신의 과거 경험과 생각에 묶여 있는 게 꼰대고, 꼰대질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막혀 있지 않고 열려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경계를 허무는 유연함이 있습니다. 스승 예수님에게서 놓치지 말고 봐야 하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가르침에 놀랐지만 정작 예수님은 창녀들, 간음하는 여자들, 일급 죄인이라 여기는 세리들, 만나서는 안되는 병자들에게 경계를 풀고 다가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 발 씻어 주는 모습 보십시오. 제자들의 권력 다툼 욕망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슬쩍 와서 정권 잡게되면 한 자리씩 달라고 요구했던 것(막10:35-37), 기억해 보십시오. 다른 제자들이 이를 알고 화를 냅니다. 이같은 높음을 추구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딴 말씀 하지 않고 스승되신 자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입니다.

당시 문화에서 제자들이 스승의 발을 씻겨주는 것은 있어도,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법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목적하는 바가 있기에 고정 관념에 묶이지 않고 기꺼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 주는 주님의 부드러운 손만큼 유연한 모습입니다. 유연함으로 가르치시는 것이고,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꼰대의 모습이 아니고, 스승의 모습입니다. 15절에 보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다’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가르침 중의 최고의 가르침은 ‘자기 반성’입니다. 자신을 돌아 보며 반성하다 보면 묻게 되고, 묻다 보면 고민하게 되고, 고민하는 마음 가운데 내압(내적인 압력)이 생겨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서 성장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무릎 꿇고 발을 씻기는 스승을 위에서 바라보는 제자들은, 정상이라면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었고, 부족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4.
진짜 스승은 창조를 원하지 모방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반성하고, 새롭게 보면서 새로운 삶과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원하는 게 스승입니다.

자기 반성을 하게 만드는 스승 예수님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봤습니다. 사명에 대한 확신, 흔들리지 않는 믿음, 목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가는 추진력, 난관을 돌파하는 힘과 담대함, 섬세한 사랑, 모든이들에게 열려있는 개방성과 친화력, 편견에 매이지 않는 포용력, 죄에 대한 단호함과 용서에 대한 뜨거움, 언제나 어디서나 하늘 아비지을 향하는 기도자의 모습. 자기 반성을 하게 만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을 주님은 보면서 배우기 원하고, 각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난제와 어려움을 풀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스승이다’ 하신 스승 예수님께 좀 더 집중하십시다. 막막할 때마다, 막힐 때마다 ‘진리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다’(道之所存 師之所存)고 했으니, 말씀을 보면서 스승 예수께서 주시는 해법, 꼭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 아이디어, 길 발견하게 하셔서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자녀들과 가정과 교회와 세상의 제일 스승, 최고의 스승이 예수님이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꼰대가 아니십니다. 여전히 시대와 호흡하는 참신하고, 깨어있는 열려있는 스승이십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배우고-익히고-기뻐하고. 스승 예수를 따라가는 여러분의 길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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