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25. 주일 설교: 참으면서 달려갑시다(히12:1~3). 양은익 목사.

 

말씀: 참으면서 달려갑시다(히12:1~3)

1.
‘참으면서 달려갑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을 새번역에서 그대로 따온 제목입니다. 지난 주에 봤던 ‘어설픈 자의 변신’과 연결된 말씀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어설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참으면서 달려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본 여자 마라톤 계주 영상]

대단한 참음을 보여주는 영상입니다. 그럼에도 다 좋게만 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안스럽기는 하지만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경험상 참음이 힘들고, 좋을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견딤과 인내를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인내는 필요하지 않은 곳, 필요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난관에 이르기까지, 가정에서, 직장과 교회에서 매순간 필요합니다. 참아야 할 순간은 쌓이고 쌓여있습니다.

‘1분만 참으면 10년이 평온하다’는 말처럼 한번 잘 참고, 인내하면 결과는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인내는 여전히 버릴 수 없는 카드고, 버려서는 안되는 선택지고, 가져야만 하는 삶의 보화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더욱 필요한 성품입니다. 인내가 있을 때 믿음, 소망, 희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내가 없으면 믿음, 소망, 사랑은 물 건너 갑니다.

2
오늘 히브리서를 읽었는데, 히브리서는 13장 전체가 하나의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의 청중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상황이 대단히 안 좋은 사람들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끌려가 죽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살벌하고 두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인데 이런 이들에게 들려지는 말씀입니다. 자신들도 머지않아 죽을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격려와 소망, 위로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위로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을 보여주면서 너희들만 힘든게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들도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지만, 심지어 약속한 것을 받지지만 그들은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길을 갔다고 합니다.

그 길을 간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너희를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으니 지금의 현실이 힘들고 암담해도 포기하지 말고 견뎌내 ‘달려갈 길을 달려가라’. 너희들도 갈 수 있다. 위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가장 중요한 단어는 후포모네(ὑπομονή)입니다. 인내, 저항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에 세 번 나옵니다. 1절에는 인내로 나오고, 2절, 3절에는 참으사로 나옵니다. 참기 힘들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지지 말고 저항하여 이겨 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12:1-3절까지 다시 한번 읽습니다. 1.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2.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내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새번역)

히브리서 기자는 참아낼 수 있고, 저항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말입니다. 어떻게 저항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를 참으신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깊게, 생생하게 마음에 담을 때, 놀랍게도 ‘지치지 않고 달려갈 수 있다’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저항과 반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도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셨고,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랑도, 희망도 믿음도 버리지 않고 견디고, 참아내셨습니다.

주님은 주님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 보셨다고 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은 당면한 눈 앞의 현실이 아니라, ‘그 너머’입니다. 우리의 선택과 의지, 판단과 경험 너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이상,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이상을 내다 보면서 수치도, 십자가도 참아내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나를 섬어서는 내 앞에 있는 실체를 보면 참아내고 인내 할 수 있습니다. 인내가 절실할 때 주님 처럼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크게 열리면 좋겠습니다.

3.
인내가 주는 열매는 귀합니다. 지난 주에 잠깐 봤던 문장 다시한번 보십시오. ‘다른 이들을 참아 주는 것은 사랑이요, 자신을 참고 견디는 것은 소망이며, 하나님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믿음이다’

인내가 있어야 믿음도 있고, 사랑도 있고, 소망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으면 믿음, 소망, 사랑은 증발해 버립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증발해 버리면 남는 것은 불신과 의심, 절망과 질시와 부정과 냉소만이 남지 않겠습니까? 인내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본능의 세계, 동물의 세계로 전락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우리 삶의 중심이고, 사회를 지탱해 주는 힘입니다.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사방에서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이겠습니까? 사랑이 있는 사람, 희망과 믿음이 있는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만이 아닙니다. 팬데믹으로 고생하고 있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도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타자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없이, 자신에 대한 희망없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없이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백신으로만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불의하고, 공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누구든, 저항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가득찬 인내와 참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복과 복수로 끝나지 않고 전진과 개선과 회복으로 함께 나갈 수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한 말입니다. ‘인내가 모든 것이다’. 어려서 부터 힘든 삶을 살았던 기도의 사람 릴케의 통찰력 있는 고백입니다. 야고보 사도도 한 마디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약1:4. 새번역). 인내는 성숙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인내하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인내하라 하면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라 하면 하시겠습니까?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합니다. 구름 떼 같은 인내의 수많은 증인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을 보라고, 그리고 저 너머에 있는 기쁨을 보면서 십자가를 참아내신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생각하라고.

우리도 받아서, 참을 수 없다, 견딜 수 없다 말하기 전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바라 본 후에 다시 생각하고, 다시 말하고,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참아내야 할 게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참으면서 달려 가십시다.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게 보여도 성실히 달려가다 보면 힘을 주셔서 인내하게 하시고, 보람되고 복된 기쁨, 결론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런 인내의 축복이 있는 여러분의 생애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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