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4. 주일 설교: 아름다운 초대, 부활(엡1:16~23). 양은익 목사.

 

아름다운 초대, 부활 (엡1:16-23)

1.
올해도 꽃 소식과 함께 귀한 초대장이 어김없이 도착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낸 초대입니다. ‘오라’하는 부활의 아름답고, 귀한 초대, 거절하지 마시고, 한번 쓱 보고 넘기지 마시고, 기꺼이 응하셔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뜻 깊은 시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요16:33에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어려울 때일수록 세상을 이기신 주님의 필요한 법인데, 주님은 부활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하여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하면 담대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얼마나 귀한 초대입니까? 이런 초대는 거부하지 말고 받으셔서 겨울옷 갈아 입듯, 마음도 겨울의 마음에서 봄의 마음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계절이 봄이면 마음도 봄인게 어울립니다. 겨울의 마음은 차가운 마음이고, 죽은 마음이라면 봄의 마음은 희망의 마음이고, 부활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이 봄의 마음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2.
(1) 부활이 주는 봄의 마음
부활의 초대가 아름다운 초대인 이유는 부활은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 봄의 마음과 생명의 마음을 선물로 주기 때문입니다. 봄이 주는 마음은 믿음이고, 소망이고, 사랑인데, 삶을 지탱케 하는 귀한 힘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활에 참여하는 우리들에게 선물해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바로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분에게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희망을 두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써 마음이 깨끗해져서 꾸밈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충심으로 열렬히 서로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은 새로 난 사람들입니다’(벧전1:21~23. 공동)

부활이 준 봄의 마음들입니다. 삶의 겨울은 불신과 절망, 두려움과 적대감을 주지만 봄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줍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죽으심으로 겨울의 마음에 빠집니다.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어 버린 그리스도를 보면서 믿음, 소망, 사랑 다 잃어 버립니다. 하지만 잃어 버린 봄의 마음이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서 다시 생기게 됩니다. 죽으면 끝인줄 알았는데, 죽음이 죽고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겨울의 마음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믿음이 생기고, 꺾이지 않는 희망과 사랑을 품고 일어서게 됩니다. 부활이 준 선물입니다. 제자들만이겠습니까? 부활을 믿는 이들 모두는 동일한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세상에 주는 것은 한번의 위로가 아닙니다. 기독교가 세상에 주는 것은 위로와 위안을 뛰어넘는 생명입니다. 생명이 먼저고 위로는 나중입니다. 생명에서 위로가 나오고, 생명에서 희망과 사랑이 나옵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골3:4. 공동). 부활의 미래입니다. 마지막 때 우리는 마른 나뭇가지에 화사한 꽃이 피어나듯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처럼 궁극적인 생명인 존재의 변화와 변형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죽은 자의 형상이 아니라 꽃으로 피어나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생명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명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고, 우리의 실체를 보면서 놀라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미래를 믿을 수 없다 말하지만 우리는 부활이 만들어낸 사실과 사태에 집중해야 합니다. 부활은 우리의 판단과 해석을 넘어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사태고 사실입니다. 이 예수님의 부활 안에 우리의 미래가 숨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골3:1~2. 공동)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살아날 사람들이니 천상의 것을 추구하라. 방향을 정해주고 있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야 할 방향, 삶의 방향을 정해 줍니다. 부활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삶의 지침이고, 가이드라인입니다.

어떻게 해야될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헷갈릴때마다 부활과 부활의 미래를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방향이 나옵니다. 부활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믿음의 방향이고, 희망의 방향이며, 사랑의 방향입니다.

부활하신 님을 바라보고, 님의 말씀을 듣고, 님을 따라가다 보면 가야 할 길로 갈 수 있고, 그렇게 가다보면 마음은 어느새 봄의 마음으로 가득차 있게 될 것입니다. 봄의 마음을 주고 싶어하는 부활의 초대, 거절하지 말고 받으셔서 겨울의 마음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겠습니다.

(2) 부활이 주는 능력
부활의 초대가 귀한 이유는 부활은 부활을 믿고 소망하는 자들에게 능력을 준다는 것에 있습니다. 두려워하던 제자들의 가슴에 불을 붙혀 밖으로 뛰쳐 나오게 만든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무너졌지만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부활하신 예수라는 충격을 겪으면서 이전과 같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력했던 자들이 무력하지 않은자, 능력있는 자들로 변해 갑니다. 바울이 롬8:11에서 말한 것처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 그들 가운에 거하사 그들도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제자들로 하여금 무력함에서 벗어나 힘있는 자로, 무엇인가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의욕있는 자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능력보다 강한게 의지력이라고 하는데, 제자들은 ‘할 수 있는 힘'(능력)을 넘어서, ‘하고 싶은 힘'(의지력)을 가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고 싶어하는 걸 어떻게 막습니까? 두려움도, 죽음도, 어떤 권세도 부활을 알아 버린 제자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게 교회의 시작입니다. 교회는 부활의 능력을 알게 된 제자들, 그 제자들의 제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오늘 본문에서 에베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클라이막스에서 기도합니다. 죽음조차도 무력화 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해 달라고..

18절부터 다시 봅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자신이, 나의 자녀들이, 이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 안에 있는 축복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이루신 부활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하소서.

이걸 알면 어떻게 될까요? 강해질까요? 약해질까요? 봄의 마음이 될까요? 겨울의 마음이 될까요? 부활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강하게 만듭니다.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게하는 권세와 자유를 줍니다. 죽음도, 물질의 신도, 세상의 권력도 부활의 힘을 누를 수 없습니다. 두려워할 일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믿는 신앙이 제자들 처럼 우리 가슴에서 뜨겁게 살아나야 합니다.

마틴 루터가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할 때 쓴 공개서한이 있습니다. 피하라는 제후의 권고를 물리치고 집에서 환자들을 돌보때 쓴 편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피해 떠나도 되는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루터는 그렇게 씁니다. ‘떠날 수도 있고, 떠나지 않을 수도 있다. 각자 상황에 맞게 결정해야 한다. 타인의 결정을 정죄해서는 안된다’ 죽음을 피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본능적 성향이니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목숨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소중하다. 자신의 용기를 과시하려고 쓸데없이 목숨을 거는 것은 교만한 만용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전염병을 피해 떠남으로써 누구 하나라도 무방비 상태로 남는다면 생명이 소중하다는 동일한 가치로 남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약한 자들이 버림 받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인들이 떠남으로써 당신 가정이나 동네나 도시에 사는 아픈 사람들이 충분한 병간호를 받을 수 없다면 떠나서는 안된다. 죽음의 위험 앞에 끝까지 의연해야 한다. 각종 위험과 모든 재난이 닥칠때 지역사회 전체를 버리는 것은 중죄다’

그러면서 자신의 집을 야전병원으로 삼아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게 됐던 것입니다. 루터는 자신의 이런 힘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왔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두렵워하면서 삽니까? 사는 날 동안 두려움과 불안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 바울이 기도한 것 처럼 우리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케 하신 하나님이 선명해 질때 우리는 겨울의 마음을 벗어나 봄의 마음으로, 봄의 생명력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과 코로나로 고통 당하고 있는 이 땅 가운데 충만해 지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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