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라, 고요하라(막4:35-41)
1. 피곤하고 두려운 삶에서
글 한편 읽고 시작하겠습니다. 시인이 눈이 올것만 같은 겨울 밤, 집 앞 골목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힘겨운 삶을 말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피곤한 채 죽으면, 영원히 피곤할 것만 같아서, 그것이 두려워서, 죽고 싶도록 슬프다는 친구여, 지금 해줄 애기는 이뿐이다. 내가 켜 든 이 옹색한 전지 불빛에, 生은, 명료해지는 대신, 윤기를 잃을까 또 두렵다’(황인숙, 묵지룩히 눈이 올 듯한 밤, 부분)
피곤한 채 죽으면 영원히 피곤할까봐, 작은 불 빛 보며 힘 내 보지만 여전히 두렵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늘 부정어에 대해 마감하려고 하는데 부정어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피곤하고, 두렵기 때문에 나오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코너에 몰릴수록 부정어는 강해지고, 많아집니다.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강하다’(Bad is stronger than Good)는 말이 있습니다. 욕 먹는 것 하고, 칭찬 받는 것 하고 어떤게 더 오래갑니까? 욕 먹는 게 오래 갑니다. 좋은 기억은 금새 사라지지만 나쁜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나쁜 게 좋은 것 보다 훨씬 세고, 강합니다. 우리의 선택과 기분을 좌우합니다. 지배 당하지 않도록 대항해야 됩니다. 감사와 기쁨, 사랑과 믿음으로 충분히 대항 할 수 있습니다.
2. 풍랑이는 바다에서
오늘 본문에 우리 신앙인들이 부정성의 상황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장면이 나옵니다. 본문에는 자세히 묘사되고 있지 않지만, 광풍이라고 하는 부정성에 제자들이 완전히 지배 당하고 있습니다. 점점 세지는 바람 앞에서 역부족을 느꼈던 제자들의 입에서는, 상상하건데 그동안 우리가 봤던 부정어들이 나왔을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우리가 배에 탔을때 바람이 부는가? 살기 위해서 ‘억지로’ 물을 퍼내 보지만 점점 세지는 바람과 기울이지는 배를 보면서 ‘어차피’, 이제 ‘끝났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상황이 이 지경인데 ‘선생님’은 왜 안보이시는가?, 이 시간에 잠이 올 수 있는가? ‘선생님 싫다!!’
38절 보십시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한 마디에 제자들의 감정과 반응과 불만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인생의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 때 신앙인들이 자주하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원조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버텨보던 제자들은 주님을 깨우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위협하던 부정적 상황인 허리케인급의 바람을 질책하면서 상황이 종료됩니다. 명령하십니다. ‘잠잠해’.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이고, 필요한 말입니까? 그 말을 주님이 대신 하고 있습니다.
잠잠하라(siopao)는 말은 Keep silent, Say nothing. Stop speaking. 침묵하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요하라'(phimoo)는 재갈로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순한 양처럼 잠잠해지고, 고요해집니다.
성경에 나오는 배와 관련된 광풍 이야기는 전부 동일한 구조로 되있습니다. 노아의 배와 대홍수(창7장), 도망가는 요나의 배와 광풍(욘1장), 로마를 향해 가는 바울의 배와 유라굴로 광풍(행27장). 전부 다 풍랑이는 바다 위에서 위기를 만나게 되지만 노아도, 요나도, 바울도, 제자들도 무사히 바다를 건너게 되고, 광풍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똑똑히 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풍랑이라고 하는 인생의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은 풍랑을 잠재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Sign 입니다. 너희에게도 풍랑이 있을텐데 그러한 순간에 해야 할 일은 풍랑이라고 하는 한계와 두려움만 보지 말고, 풍랑을 지배하는 하나님도 보고,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주님께 가, 흔들어 깨우라는 것입니다.
40절에서 한 마디 하십니다. ‘왜 그렇게 무서워하고, 믿음이 없어’. 무슨 말입니까? 겁먹지 말라는 것이고,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믿음을 가져라. 믿음만은 잃어버리지 말라’. 여러분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길을 막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막지만 열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함께 하시는 이같은 주님을 깊게 신뢰하고, 뚝심있게 믿는 것입니다.
3. 믿음과 통념.
(1) 믿음은 통로이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중요한 이유는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과 내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나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다리고, 통로입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이 통로를 통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경험으로 존재와 삶과 생각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보이는 세계, 논리의 세계, 경험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던 내 생각의 확장이 일어나고, 삶이 확장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과 기쁨과 사랑과 희망 가득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보고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히11:6).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신뢰(trust)는 신념(Belief)을 넘어서는 행위입니다. 신앙도 신념과 지식으로 가질 수 있지만 그 신념이 지식으로 끝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믿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온전한 헌신과 따름이 일어나기는 힘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믿음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하기에 하나님의 사랑에 끌려 기꺼이 순종하고, 따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신뢰의 믿음이 우리를 삶의 부정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끝까지 지향(指向)하게 하고, 자신에게 능력 주시는 자가 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절실한 믿음입니다.
(2) 통념을 깨야 믿음이 가능하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많은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꾸짖고, 잔잔하게 만드셨다는 이런 대단한 본문과 역사를 보고 있지만 놀랍고, 강하게 다가오지 않고 있습니다. 많이 들어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런 사건을 보는 우리의 눈이 통념(通念)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통념은 말 그대로 널리 통하는 생각입니다. 많은 이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어떤 믿음인데, 우리에게 들어와 있는 통념은 신앙적인 통념이 아니라 다분히 세속적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신화 정도로 여기는 통념, 보이는 것,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이 진리라고 하는 통념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한 말입니다. ‘군대의 침공에는 저항할 수 있어도, 사상의 침공에는 저항할 수 없다’.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입니다.
통념이 진실이 아닙니다. 통념이 집단의 편견으로 밝혀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통념은 깨지면서 발전하는 것인데, 우리는 신앙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통념에 저항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통념, 신앙에 대한 통념,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반갑지 않은 통념들. 이런 통념에 교회와 신앙인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흡수되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오늘 같은 본문을 보면, 이런 본문은 사실과는 상관없는 기독교의 교주가 행하는 마법 같은 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 더 많은 말씀 드리지 못하지만 우리 마저 이 놀라운 본문을 이렇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 풍랑을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면서 당신의 권세로 잠잠케 하셨던 주님은 지금도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며, 주님이십니다. 나의 풍랑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고, 우리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시며, 흔들어 깨울 때 돌봐 주십니다.
통념을 깨야 믿음이 가능하고, 이런 믿음만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성을 믿음으로 이겨 나갈 수 있게 합니다.
요일5:4-5.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세상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공동번역). 우리가 가져야 할 통념입니다.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성령께서 오늘 아침 도전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을 이겨 내라고. 마음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심을 믿으라고. 이런 믿음의 상상력으로 부정적인 상황을 깨고 나가는 은혜가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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