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7. 주일 설교: ‘어차피’의 신앙적 용법(약5:7-11). 양은익 목사

 

‘어차피’의 신앙적 용법(약5:7-11)

당분간 ‘용법’에 관한 말씀을 계속 드리려고 합니다. 이번에 살펴 보려고 하는 용법은 ‘부정어’에 관한 용법들입니다. 부정어(否定語)는 어떤 현실과 현상과 상황을 인정하지 않을 때 쓰는 말입니다. ‘아니다. 못한다. 싫다’ 이런게 다 부정어들입니다.

부정어는 감정상태와 긴밀하게 연결되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기분이 나쁘게 되면 부정어가 나오게 됩니다. 부정어는 부정적인 상황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부정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상황이 많다는 것으로 봐도 됩니다.

지금은 부정어가 대세입니다. 코로나로 많은 이들이 힘들어지면서 곳곳에서 부정어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여 나오게 되는 말이 부정어입니다. ‘어차피, 하필이면, 억지로, 끝났어, 없어, 못해, 아니야’라는 이런 부정어들이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이들의 마음과 생각과 신앙을 장악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이 부정어를 얼마나 많이쓰고 있는지 한번 살펴 보시겠습니까?

부정어는 부정어가 뿜어내는 독이 있기 때문에 쉽게 넘겨서는 안되는 현상입니다. 사소한 말에 불과 한 것 같지만 이런 말들 하나 하나에 우리의 마음과 감정과 신앙의 상태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잘 살펴 봐야 하고, 쓰는 말의 용법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부정어를 쓸 수 밖에 없는 삶의 힘듬과 어려움을 함께 공유하고, 기도했으면 좋겠구요, 쓰던 부정어를 신앙적인 용법으로 바꾸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새롭게 바라보고,인식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어차피’의 용법
오늘 말씀 드릴 부정어는 ‘어차피’라는 부정어입니다. 정철이라는 작가가 쓴 ‘파리 잡는 주방장 이야기’라는 글 보겠습니다.

탕수육을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뱃속에 들어가면 어차피 똥이 된다며 처음부터 똥냄새 나는 탕수육을 만드는 주방장이 있었다. 그 주방장의 탕수육 맛을 본 비행기 조종사가 어차피 땅에 내려올 것을 뭐하러 이륙하느냐며 비행을 거부했다. 그 비행기에 탑승한 임신부의 뱃속에 든 태아가 어차피 죽을 것을 뭐하러 태어나느냐며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했다. 이 황당한 태아의 소식을 들은 신문기자가 어차피 잊혀질 뉴스를 뭐하러 알리느냐며 기사쓰기를 거부했다. 결과에만 집착한던 중국집 주방장은 지금 기사 한 줄 없는 텅 빈 신문지를 둘둘 말아 하루 종일 파리만 잡고 있다.

어차피 똥이 될 거 탕수육 맛있게 만들면 뭐해. 어차피 내려 올 것 왜 올라가. 어차피 죽을 목숨 살면 뭐해. 어차피 잊어버릴 뉴스 기사는 뭐하러 써. 그러다가 전부 망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를 맨 처음 외쳤던 주방장은 하루 종일 파리만 잡고 있습니다.

‘어차피’라는 말을 쓸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뜻한 대로 되지 않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주로 나옵니다. 해줄 만큼 해 줬습니다. 해 볼만큼 했습니다. 하지만 뜻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때 튀어나오는 말이 ‘어차피’입니다.

어차피는 어떤 일의 결론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안되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부정적인 결론으로 ‘어차피’가 나옵니다. 어차피는 실망이 배여있는 아프고 힘든 말입니다. 가볍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래 시간 견디고 견디다가 쓰게 되는 ‘어차피’도 있습니다. 이런 어차피는 정말 힘든 어차피입니다.

어차피의 깊이가 깊을수록 허무해지고, 깊은 냉소가 배여 있습니다. 어차피 죽을 걸, 어차피 실패할 걸, 어차피 떠날 걸, 어차피 자기만 알 것. 달관의 경지에 이른 초인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현실을 바꿀 의지가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를 한번이 아니고, 상습적으로 계속 쓰게되면 잠시 힘든 현실에 대해서 위안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꼬여 있는 삶은 더 꼬이게 되고, 갈등은 더 깊어지고, 용기, 인내, 사랑 같은 삶의 바탕이 되는 귀한 것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더 나가서 신앙인들이 어차피라는 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주님을 거부하고, 신앙을 거부하는 지경에 까지 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차피’를 신자인 우리도 쓸 수 있습니다. ‘어차피’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믿음 없다’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신중하게, 잘써야 합니다.

어차피가 가는 뱡향은 결국 하나님을 불신하는 쪽입니다. ‘어차피’라는 말을 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인정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2. 어차피의 신앙적 용법: 최선, 끝까지.

어차피는 결론의 말입니다. 성급하게 쓸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가 급하게 가슴에서 올라오면 쉽게 동조하지 마시고 심호흡하고 다른 말을 찾아 보십시오.

‘어차피’ 대신이 어떤 말을 쓰면 좋을까요? 제가 찾아낸 말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입니다. 최선은 어차피에 지지 않는 마음이 최선입니다. 어차피, 그러면서 결론화 하고, 포기하기 전에 끝까지 최선(온 힘과 정성)을 다해 보겠다는 마음의 각오와 다짐이 신앙인들이 써야 할 용법입니다.

힘들 때 마다 어차피를 반복하면서 모든 게 결정되고 끝난 것 처럼 자포자기 하면서 허우적 거리는 것 보다, 어차피를 넘어서서 일하시는 주의 손길을 인정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백번 천번 낫습니다.

3. 끈기있게 참아내라(약5:7-11): 최선을 다하는 자세.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 말입니다. ‘참고 견디십시오’(새번역) Be patient. 참고 기다리십시오.(공동번역). 길이 참으십시오(개역개정) 길이, 끝까지, 오래오래 참으십시오. 어차피, 그러면서 성급하게 결론내리지 말라는 겁니다. 사도의 이 말 깊게 받으십시다.

요즘 여러분들의 삶을 허무하게 하고, 냉소하게 하며, 우울하게 하며, 두렵게하고, 실망하게 하며, 일어섬을 방해하는 ‘어차피’가 있다면’, 믿음을 구하셔서 길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원망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참고,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7절에 ‘참는다’(patient. μακροθυμέω 마크로쒸메오)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주구장창’, 끝도없이 ‘버티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어떤 사태에 대해서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판단이 성급하게 되면 참아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입니다. 힘든 일을 왜 겪는지 잘 모르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고, 하나님은 결코 무력하지 않다는 것을 신뢰하면서 용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끈기있게 참아내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신앙적인 이유가 8절에 나옵니다. 8절. 주님이 오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참으십시오. 마음을 굳게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새번역)

주님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도 오시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며, 우리에게도 오시고,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주님의 함께 하심과 주님의 임재하심이 우리가 참을 수 있는 힘이고 이유며, 어차피하면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근거입니다.

어차피라는 말을 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지금 여기에 함께 하시는 주님의 임재하심을 예민한 영적인 감각을 가지고 포착하십시오. 그래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눈코입 다 막아놓고 느낄 수 없다고 말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함께 하심이 내 허전하고, 두려운 마음에 깊게 들어오고,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고, 깊은지 느껴지기 시작할 때 비로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참고 기다리는 가슴 벅찬 믿음의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0절,11절에 보면 야고보 사도의 도전이 나옵니다. 뭐라고 도전합니까? ① 엄청난 고난을 이겨낸 예언자들을 보았소. 끝까지 견디어낸 사람이 행복한 사람들이오. ② 참아내고 견뎌낸 욥의 결론을 당신들은 보았소! 뭐라 대답하시겠습니까?

끈기있게 참아낸 욥의 가슴 벅찬 결말을 보았다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동일한 결론을 여러분들의 결론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어차피의 난감하고, 두려운 상황은 주 안에 있으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시편 40편에 나오는 시인의 고백 보고 마치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40:1-3)

어차피를 이겨내고 노래하는 기쁨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이 부르는 승리의 새 노래를 듣고, 힘들어 하는 많은 이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어차피는 ‘어차피’라는 냉소와 도피와 중단으로는 이겨 낼 수 없습니다. 어차피를 이길 수 있는 길은 동행하시는 주님 신뢰하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습니다. 어차피의 냉소와 허무함을 이겨내는 아름다운 결론이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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