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서로 문안하라(롬16:1~23)
2020.11.1.
1.
로마서 16장을 읽었는데 좀 지루하셨지요! 이름이 많이 나오는 장은 설교하지 않는 게 설교자들에게는 불문율인데 신약에서 족보 빼고 가장 이름이 많이 나온 장을 다 읽었습니다.
16장에 보면 26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름을 나열한 이유가 분명합니다. 그들에게 문안하라고 하는 권면 내지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 26명의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 호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설명드리겠지만 ‘문안하라’고 하는 바울의 마음은 상당히 절박하고, 간절합니다.
바울이 지금 문안하라 하는데 누가 누구에게 문안하라는 것입니까? 3절에 보면 ‘너희’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너희’가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바울이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로마 교회 성도들, 그 ‘너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도 문안하고, 마리아에게도 문안하고, 암블리아에게도 문안하고, 우르바노와 스다구에도 문안하고.
2.
문제는 서로 문안해야 할 로마의 성도들이 문안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반목하고 있고, 마음이 멀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편이 갈라져 있습니다. 한쪽은 보수파, 다른 한쪽은 진보파. 보수파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고, 진보파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두 진영이 심각하게 갈등하고 있는 중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쓸 때의 로마 교회 주도권은 이방파가 잡고 있었습니다.
49년까지는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로마교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지만, 49년에 클라우디스 황제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시킵니다. 그 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뿔뿔히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54년 네로 황제가 추방령을 풀어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 귀환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추방되지 않았던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교회의 주도 세력이 되있었습니다.
강자가 된 이방파 그리스도인들은 약자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방식에 대해서 폄하하고,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약자가 된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정결법과 안식일 법에 대해서 무시하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면서 갈등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26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로마 교회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6명 중에서 유대인이 5명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체 로마 교회 명단은 아니지만 전체로 따져도 15%~2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방 당한 사이에 교회의 주도권이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로 넘어가 있는 게 확연히 나타납니다.
사람 있는 곳에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는 숱한 갈등이 있습니다. 보수파와 진보파의 갈등이 있고, 오래된 교인과 새로 들어온 교인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갈등이 있는게 교회 현장인데 이 갈등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바울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로마 교회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온 말이 바로 ‘주 안에서 서로 문안하라’ 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그들을 만나, 스페인 선교의 후원자가 되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그토록 중요한 로마 교회가 갈등 가운데 있는 것을 보면서 방문하기 전에 그들이 하나되어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살아 가기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이런 뜻에서 보면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장은 16장입니다. 갈등하고 있는 그들에게 ‘주 안에서 서로 문안하라’는 이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1장에서부터 15장까지 서술했다고 봐도 됩니다.
사람은 웬만하면 화해하지 않습니다. 숱한 사람들을 만나본 바울은 문안을 말하기 전에 문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너희들이 누구인지 아느냐? 너희들은 행위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부활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이다. 너희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성령의 은혜가 있으니 갈등과 혐오로 상처 가운데 살아가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 (롬12:1~2)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우해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라.(12:10). 할수 있거든 모든 사람들과 서로 화목하라(12:18).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으면 받아주고, 비판하지 말라(14: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자의 약점을 담당하자(1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7)
16장과 로마서를 연결해 보면 그대로 맞아 떨어집니다. 바울은 갈등하고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중재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문안은 마음에도 없는 겉치레 문안이 아닙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고, 복음 안에 있으니 그만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welcom. 환영하라. 평화하라. 사랑하라. 연합하라. 긍휼을 베풀라.
4.
‘문안’은 깊이 들어가면 사랑이고, 격려고, 인정함이고, 관심입니다. 이러한 문안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살아있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바울은 ‘문안에서’ 부터 그들의 갈라지고, 갈등하는 마음이, 주도권에 매여 있는 세상적인 마음이 없어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문안은 관계를 시작하게 만들고, 유지하게 하고, 풍성하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문안의 마음과 정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문안이 어렵고, 힘들수록 살아있어야 합니다. 문안이 없는 삶은 위험한 삶이고, 위험한 사회입니다. 환영하는 마음이 있을 때 사회와 가정과 교회는 온전히 설 수 있게 됩니다.
한 문장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내 정원에 증오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지난 10월 20일에 85세로 정계를 은퇴한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이 남긴 말입니다. 증오가 있을만한 사람인데 증오를 키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분은 게릴라 출신으로 우루과이의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민주화 투쟁을 하다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52% 지지율로 당선된 사람이지만 퇴임할 때 지지율은 65%였다고 합니다. 궁금하신 분은 한번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분이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했는지.
13년간을 감옥에서 고문당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도 자신을 고문한 군부에 보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숙인들에게 대통령 궁을 내주고, 자신은 농장 주택에서 살면서 가장 가난하고 친근한 대통령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마음 한 구석에 증오를 키웠다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문안을 하는 사람이 큰 사람이고, 문안을 거부하는 사람이 작은 사람입니다. 문안 속에 함께 하려고 하는 마음이 살아나게 됩니다. 이 마음을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처럼 살려내야 하고, 우리 자신이 살아내야 합니다.
5.
문안에도 때가 있습니다. 문안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힘들어도 문안하고, 감사하고, 환대하는 마음으로 살게되면 그게 밑천이 되서 내 마음의 정원에 꽃 피듯, 사랑이 피고, 감사가 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 귀하고 복된 마음이 여러분들 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세상은 뭐라해도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바꿔야 하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사랑이고, 환영이며 포용입니다.
이정록 시인이 한 마디 남긴 게 있습니다. ‘교회나 절간에 골백번 가는 것보다 동네 어르신께 문안 여쭙고 어미 한번 더 보는게 나은 거다’(이정록, 가슴 우물) 문안의 마음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설 수 없다는 것, 기억하십시다.
요즘, 여러분들의 문안은 어느 정도이십니까?
문안하고, 문안받고, 또 문안하고 문안받으며 코로나 시대를 힘차게 이겨 나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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