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14. 주일 설교: 상처 넘어서기, 받듦의 시작(창45:1~15). 양은익 목사.

 

상처 넘어서기, 받듦의 시작(창45:1~15)

1.
오래 가서는 안되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빚, 불, 상처입니다. 빚은 빨리 청산하고, 불은 신속하게 끄고, 상처는 빨리 아물게 해야 합니다.

오늘은 ‘상처’에 대한 얘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처는 바늘 가는데 실 따라 가는 것 처럼 항상 따라 다니는 게 상처입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상처를 주면 안되는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상처가 많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상처를 다룬 임성구 시인의 시입니다. “이른 아침, 독사 같은 년!하고, 접시 하나 깨졌다. 독꽃 제가 꺽어놓고, 가시돋힌 말, 쏟아내는 그 사내. 혀끝에 칼을 꽂는, 긴 겨울날, 결빙의 말”(말의 균열)

따뜻하고, 희망이 넘쳐야 할 이른 아침에 해서는 안되는 말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편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독사같은…. 시인은 사람마다 뱀같은 독꽃이 있다고 봤는데, 꺽으면 안되는 독꽃을 꺽어버렸습니다. 독꽃을 꺽으니 독이 나와 ‘독사 같은 년’ 하면서 독이 나왔던 것이지요. 부인은 졸지에 독사가 됐습니다. 독사가 된 이 부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독사가 됐으니 똑같이 독을 쏟아내지 않았을까요!

좋은 아침에 독사로 우글거리는 집안이 되 버렸구요, 독사가 내뱉는 가시 돋힌 말로 접시(마음)란 접시는 다 깨져 버리고 그 시간부터 긴 빙하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랑도 믿음도 받듦도 다 꽁꽁 얼어 버립니다.

사람 마음은 무쇤가요, 아닌가요? 사람 마음은 아주 섬세하고, 여려서 말 한마디에도, 몸짓, 눈짓 한번에도 흔들릴 수 있고, 상처가 날 수 있습니다. 상처가 나면 많은 것들이 망가집니다. 미움과 섭섭함은 물론이고 분노와 복수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아물지 않으면 사랑, 존중, 받듦 같은 것들은 꿈도 꿀 수 없게 됩니다. 넘어서야 합니다. 상처를 극복하고, 상처를 넘어서는 것은 상처로 얼룩진 깨진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삶의 과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상처를 넘어설 수 있습니까? 오늘 읽은 요셉을 보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오늘 읽은 창 45장의 본문은 참 아름다운 본문이고, 부러운 장면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서로 상처를 주고 받던 형제들이 서로 안아주면서 눈물 바다를 이룹니다. 요셉은 대성통곡하면서 울고, 형들도 울고, 요셉이 사랑했던 막내 동생 베냐민도 웁니다. 거의 21년 만에 이루어진 기적같은 일입니다.

서로 ‘독사같은 새끼’ 하면서 칼을 꽂고 살았던 긴 겨울이었는데, 봄 눈 녹듯 녹아내리면서 그들을 아프게 만들었던 상처로 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상처를 극복하는데는 요셉의 역할이 컸습니다. 요셉이 상처에 매여서 형들을 받아주지 않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요셉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을 해했던 형들의 상처까지 치유하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어떤 원망도, 어떤 불만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7~8)

해석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상처가 힘들기는 했지만 기막힌 해석으로 넘어서고 있습니다. 상처를 원망과 복수로 닫아 놓지않고,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라는 관점으로 승화시켜 자신의 상처도 치유하고, 형들의 상처도 치유하고 있습니다. 형들이 이 말을 들을 때 얼마나 마음이 놓이고, 평안해졌겠습니까?

3.
요셉의 삶을 상처라는 관점에서 보면 ① 상처를 주는 시기 ② 상처를 받는 시기 ③ 상처를 치유하는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상처를 주는 자였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사랑 믿고 상처를 남발합니다. 집안의 밉상이었습니다. 말을 얼마나 상처스럽게하고, 얄밉게 하는지 모릅니다. 형들이 미워할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상처를 받게 되는 법인데 요셉은 상처를 주는 사람에서 상처를 받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상처를 받습니까? 형들에게 살해 당할 뻔한 상처로 시작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던 부잣집 아들이 외국에 노예로 팔려 나가게 되고, 주인집 마님의 모함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꿈 해몽 잘해줘서 옥에서 풀려 날줄 알았는데 배신 당하고. 이 세월이 13년입니다.상처의 댓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요셉은 상처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많은 상처를 받지만 상처에 끌려 다니지 않고 형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까지 가게 됩니다. 여기까지 21년이 걸렸습니다. 상처가 많아도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처는 꺽일 수 밖에 없습니다.

4.
요셉은 어떻게 상처를 주는 자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자가 될 수 있었는가? 요셉이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에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결정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형들에 의해 자행된 구덩이 사건(창37:24) 입니다. 요셉은 구덩이라고 하는 절체 절명의 장소와 시간에서 자신을 보게 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철이 드는 법인데 어린 나이지만 요셉이 그런 것 같습니다. 구덩이 안에서 아버지 믿고 철없이 굴던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형들이 이 정도로 이를 갈고 있었구나!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찾지 않던 하나님을 깊게 찾았을 겁니다. 구덩이에서 철없던 요셉의 정신적 유년기는 끝나게 됩니다.

요셉의 기록을 보면 구덩이 사건 이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구절이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덩이 사건 이후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로 나옵니다. 이것은 요셉이 구덩이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상처를 남발하던 오만한 요셉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경험이 준 대단히 큰 변화입니다.

5.
한 사람의 일생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만큼 중요한게 어디 있겠습니까? 짧게 왔다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누리고 사는 것,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을 경험하는게 더 가치있고, 중요합니다. 삶은 하나님을 얼마나 진실되게 깊게 경험하는 가에 따라 달라지고, 깊어지고, 풍성해지고, 애뜻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생명으로 경험한 사람과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삶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상처라는 주제에 한정해서 말하면, 하나님을 삶에서 경험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그 생명 안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상처라는 인간의 경험에 쉽게 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기에 나아닌 너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상처를 받아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분에 못이겨 전전 긍긍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를 주는 사람의 아픔과 처지를 바라보면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여유, 내지는 넓음을 가지고, 상처를 치유하는 자로 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누리는 행복이고 특권이고, 아름다움입니다.

6.
하나님 경험을 특별한 사건을 경험하는 것으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건에만(기적, 병고침, 소원을 이룸같은)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매일 매순간 평범한 내 일상의 삶에서 느끼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신비를 느껴 보십시오. 존재하고 있는 내 생명의 경이로움을 깊게 받아 들여 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고, 이 우주의 생명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새롭게 받아 들여 보십시오. 잠시 이 땅 가운데 왔다가 가지만 우리의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 안에 편입되어 살아간다는 영광스러운 계시를 받아 들여 보십시오.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신비에 참여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릴 때 오는 해방과 자유함입니다. 이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삶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세상과 시간을 대하는 개념이 달라집니다. 사랑이 살아나고, 존중이 살아나고, 이해함이 살아나서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5절 보십시오. 요셉이 형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의 섭리과 인도하심을 마음에 담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이고, 넉넉함입니다.

상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많이 참아 보고 인내해 보셨겠지만 오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처에 대한 근원적인 해법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생명 속에 있는 자이며,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끈신다고 하는 신앙에 열려 있을 때 상처의 위력은 가라 앉게 됩니다.

수 많은 상처가 가정마다, 사람마다 득세를 하면서 우리의 존중과 사랑과 희망과 믿음을 막고 있습니다. 무너지지 말고 이겨 나갑시다. 우리에게는 생명의 하나님, 지금도 신비 가운데 존재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구원과 생명의 하나님, 크게 발견하셔서 상처에 무너지지도 말고, 상처를 주지도 말고, 상처에 무너진 이들을 치유하는 자로 살아가는 영광을 누리는 여러분들의 복된 인생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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