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3.주일 설교: 깊고, 뜨거운 고백(행27:18~26). 양은익 목사.

 

말씀: 깊고 뜨거운 고백(행27:18~26)

1.
두 달 만에 모인 뜻 깊은 예배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만져 주심과 위로와 은혜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친 부부가 밤에 손 마주잡고 한 말이라고 합니다. 오랫만에 만난 우리에게 주는 말로 삼고 싶어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부인이 한 마디 합니다. ‘무사하지 다행이야’ 그러자 남편이 그랬대지요. ‘응, 바다가 잠잠해져서’

정끝별 시인의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정끝별, 밀물)

가까스로 살아가는 힘든 삶 가운데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모습이 따뜻합니다. 오늘 이 시간 저도 똑같은 말 드리고 싶습니다. ‘무사하게’ 이 자리에 나와 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다행입니다’

두 달간 참 많은게 변했지요? 가까이 하는게 미덕이 아니라 멀어지고, 말 걸지 않는 게 미덕인 시대가 되 버렸습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들을 겪고 있는데 아직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슬아슬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슬아슬할 때는 더 잘 살아야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끝부분 말씀 읽었는데, 이 말씀을 보면서 코로나의 시대, 성도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보셨겠지만 오늘 본문에도 만만찮은 재난이 나옵니다. 로마를 향해 가던 그 당시 타이타닉급의 거대한 배가 풍랑을 만나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276명이 탄 것으로 나오구요, 이 안에는 로마로 압송되는 미결수 바울이 타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바울의 경고가 나옵니다. 지금 가면 위험하다. 항해의 경험이 많은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가다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14일간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게되는데 암흑 천지의 바다 한 복판에서 일엽편주, 배 한척이 떠밀린다 생각해 보십시오. 20절에 나오는 것처럼 살 생각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풍랑이 만들어 내는 게 뭔지 잘 보십시오. 밀어냄이고, 두려움입니다. 가야할 곳이 있고, 계획한 것들이 있었지만 재난이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으로 이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바람 부는 대로, 파도 치는 대로 끌려 갑니다. 공포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모든 재난에 있는 모습입니다. 재난은 우리를 원하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고, 끌고 갑니다. 코로나가 세상을 몰고 가는 거 보세요.

1.11일에 중국에서 코로나 첫 사망자가 나왔는데 4개월도 안된 시간에 3백만명 이상이 감영되고, 20만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실직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때 웃는 사람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두렵고 힘듭니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통해서 들어올지 모르는 공포와 두려움이 있습니다. 밀어내고 있고,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3.
하지만, 본문에 보면 이런 와중에 무너지지 않고, 끌려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수로 호송당하고 있는 바울이 등장하더니 외치기 시작합니다. ‘안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 두려워하고 있는데 바울 한 사람만 무너지지 않고 두려움 가득한 현장에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중에 얼마나 이 말을 희망으로 받았는지 모르지만, 바울은 그런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말씀을 믿고, 그 상황에서 쉽게 말할 수 없는 ‘안심하라’는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 속에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교회가 가져야 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나 보십시오.

바울 빼면 275명인데 이 중에 27:2절에 나오는 아리스다고 빼고, 1절에 나오는 ‘우리’에 들어가는 사람, 학자들은 이 ‘우리’에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가 들어 있는 것으보 보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타면 276명 중에 273명은 장사하는 사람들, 군인들, 죄수들, 뱃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이 이방인들이고, 불신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틈에 서서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면서 안심하라, 죽지 않는다, 이겨냅시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도전입니다.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왔습니까? 뭘 믿고 이런 선포를 할 수 있었습니까?

(1) 재난에 때에는 시선을 하나님께 두십시오.
첫번째 단서가 23절에 나옵니다. 바울의 시선을 보십시오. 바울은 재난만 보지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성도들은 가볍게 넘기는 안되는 장면입니다.

23절 입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지금 바울은 공포와 두려움 가득한 재난의 현장 한 복판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고, 그런 바울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말씀)으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마. 안심해’ 이 음성을 받고 사람들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죽지 않는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재난의 때에 절실한게 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재난의 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음성이 있고, 절박히 붙들어야 할 메세지가 있는데, 이 메시지를 귀 기울여 잡아내야 합니다. 그 말씀 속에 구원이 있고, 재난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자만합니다. 정신적으로도 자만하고, 영적으로도 자만합니다. 이러한 자만이 재난 때에 주시는 말씀으로 치유 받아야 합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자만해서 듣지 못했던 주의 음성과 뜻을 발견하고, 고쳐 나가야 합니다. 그 음성이 들리고, 깨달아질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해 집니다.

재난의 때는 모든 이들이 뿌리 깊은 자만을 버리고 주님과 더 깊게 교제하고,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할 소중한 때입니다.

코로나도 지나 갈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게 올 것입니다. 자만할 수도 없고, 자만해서도 안됩니다.

재난은 하나님이 없음을 증명하는 때가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절실히 하나님이 필요함을 고백해야 하는 때입니다. 이 사실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모르면 성도들 만이라도 자만하지 말고, 주님을 찾아서 주께서 주시는 구원과 위로의 길을 바울처럼 선포하고, 전해야 합니다. 이 믿음의 대열에 여러분들 모두 합류 하시기 바랍니다.

(2) 재난의 때에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십시오.
25절에 바울이 담대할 수 있었던 두번 째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4절에 말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바울이 풍랑으로 바다에 수장되는 게 아니라 로마에 도착할 것이고, 거기서 재판을 받을 것이며, 그러므로 바울과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도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바울은 그렇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바울을 담대하게 했던 근원적인 힘입니다. 모두가 절망할 때, 모두가 포기할 때 바울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깊고 뜨거운 고백’으로 되 있는데, 25절에 깊고 뜨거운 고백이 나옵니다. 깊고 뜨거운 고백을 한 이는 재난 속에 있는 바울이고, 그 고백의 내용은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입니다.

Credo in Deum. 사도 신경의 첫 구절입니다. Credo는 cred(믿는다)의 라틴어 1인칭 현재 단수 능동태입니다. 다른 이가 아니라 내가 믿는다는 것입니다. 믿었다도 아니고, 믿을 것이라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믿은 것도 아니고, 남편이 믿은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현재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Credo in Deum.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자신을 묶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나는’ 믿습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으면 됩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깊고 뜨거운 고백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이거면 됩니다.

뭘 믿으면 안심이 될까요? 뭐가 있어야 재난 속에서 든든할 수 있을까요? Nothing.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게 이것 아닙니까?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우리의 토대가 얼마나 약한지를 절감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라는 분의 말입니다. ‘힘있는 자는 자기 안에서 살고, 즐거운 자는 자연 안에서 살지만 슬퍼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산다’ 슬퍼할 때, 힘들 때는 하나님 안에서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재난을 통해 세상이 더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영적으로 깊어지고, 성품으로 선해지고,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자들이 곳곳에서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렘29:11) 이 믿음으로 재난의 때를 담대하게 헤쳐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무사하구나”다행이야’. 주 안에 있는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무사하고, 다행한 사람임을 믿으시고 재난의 때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늘 백성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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