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9. 주일 설교: 울지마세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시42:1~11). 양은익 목사.

 


말씀: 울지 마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시42:1~11)

1.
‘울지마세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제목이 마음에 들면 좋겠습니다. 1년을 시작하는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저의 마음이고, 주님께서도 하시고 싶은 말씀일 것입니다. 하는 일 모두가 잘되면 좋겠지만 삶이라는 게 만만치 않아서 올 해도 눈물 흘릴 때가 있을 것이고, 뜻대로 안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들려 오는 소리, ‘울지 마세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소리가 힘든 순간마다 들려서 다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겪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라서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아무것도 아닌게 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 두 문장 사이에 한 문장이 더 들어가야 합니다. ‘울지마세요. 주님이 함께하세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2.
중요한 사실은 이런 고백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심 잡고 삶에 무너지지 않으려는 단단한 마음과 믿음을 가질 때 할 수 있습니다. 주야로 눈물이 나고, 마음이 상하고, 영혼이 낙심되고, 비방과 불안이 가득 할 때 지금까지 어떻게 해오셨습니까? 앞으로는 시편 42편의 시인처럼 하시기 바랍니다. 시인은 지금 자신을 향해 선포하고, 선언하고, 다짐합니다. 5절과 11절이 시인의 다짐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낙심하는 자신을 꾸짖고, 자신에게 명령합니다. ‘그러지마, 하나님이 있잖아. 하나님 바라봐. 찬송해’ 시인이 무슨 일로 힘들어하는 지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설상가상, 시인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주변에 안 믿는 이들, 또는 믿는 이들이 이런 시인을 보면서 조롱하고 비웃고 있습니다. 3절 보세요.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빈정거림입니다. ‘하나님 어디 가셨어.하나님 믿는데 왜 그래, 왜 아퍼, 왜 망했어!’ 10절에 보면 시인은 이런 사람들의 빈정거림이 너무 아파서 ‘내 뼈를 찌르는 칼 같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습니다.

지금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가셨나봐! 하나님 믿는데 왜 그래’ 이런 말 들으실 때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이래저래 낙심이 되고, 힘이 빠져있습니다. 바로 이런 때 자신에게 선언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울지마. 주님이 함께하셔. 아무것도 아니야. 별거 아니야’. 그러면서 다짐합니다.

시인이 다짐하는게 보이십니까? 2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겠다. 5절. 하나님께 소망을 두겠다 5절 끝. 주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여전히 찬송하겠다. 8절 끝.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겠다. 세 가지 다짐을 합니다. 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겠다. ②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③ 하나님께 기도하겠다. 여러분들도 울음이 찾아오고, 낙심이 되고, 불안이 엄습해 올 때마다 이 세 가지 다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신자에게 눈물과 고통의 때는 위기도 될 수 있고, 기회도 될 수 있습니다. 위기도 기회도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힘을 이 시인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어느 정도 다짐했을까요? 3절에 보면 ‘종일’과 ‘주야’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루 종일, 밤과 낮으로 힘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짐도 그에 걸맞게 해야 됩니다. 아침에도 하고, 낮에도 하고, 밤에도 하고. 그래야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낙심과 아픔은 시간 정해 놓고 오는 게 아닙니다. 하루 종일 떠나지 않고 힘들게 합니다. 이런 세력에 대처하려면 다짐도 하루 종일 해야 되고, 늘 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억하기 좋으라고 말을 만들어 봤습니다. ‘울지마, 아무 것도 아니야’의 실천 사항입니다. ‘아침에는 소망, 낮에는 찬양, 밤에는 기도’. 이것 만큼 울음의 때,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는 때를 이기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울지마, 아무 것도 아니야’ 이게 됩니다.

(1) 아침에는 소망.
아침에 일어나서 뭐부터 하십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아침에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면 좋겠습니다. 아침을 불안과 한숨으로 시작하면 하루 종일 불안합니다. 아침은 한숨과 염려로 시작하지 말고 고백으로 시작하십시오. 한숨거리 있다고 한숨으로 시작하면 한숨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없어지지 않고 더 깊어집니다. 아침은 한숨보다 고백이 좋습니다. 어떤 고백이 좋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시인처럼, 2절. 살아 계신 하나님, 8절, 생명의 하나님, 9절 내 반석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사슴이 시냇물을 애타게 찾는 것 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물, 생수를 시원하게 마시면 한숨보다 백배 천배 좋습니다. 귀한 아침을 낭비하지 말고 아침에는 물을 마시세요. 아침 물 한잔은 보약이라는데, 아침에 먹어야 할 물은 정수기 물만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물, 이 물을 그리스도인들이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해갈이 됩니다. 영혼의 기쁨이 생기고, 위로가 나오고, 힘이 나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황량한 사막을 보면서 한마디 합니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뭐가 아름답습니까? 하지만 어린 왕자의 눈에는 사막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유를 아십니까?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샘이 숨어 있어서 그래’ 아무리 사막같은 세상, 눈물나는 삶 한 복판을 살아가지만 그 안에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고, 갈한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생수의 근원되신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이 우물가 사마리아 여자에게 한 말씀 기억나십니까? 그 허전한 여인, 남편이 5명이나 됐던 팔자 센 여자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7:14) 우물 물만 마시지 말고 생수인 나를 마시라는 것입니다. ‘나를 마시면 목마르지 않아!’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면 그 물이 생수가 되서 다시 내 안에서 솟아나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8)

배는 누구 배입니까? 내 배입니다. 배는 내 존재의 가장 깊은 곳, 생명의 근원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이 배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채우면 불안할 수 밖에 없고, 이곳을 주의 성령으로 채우면 만족과 평안이 흘러나올 수 밖에 없는데, 생명수 되신 주님으로 배를 채우게 되면, 내 배에서 생수의 강, 생명과 소망과 평안함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사58:11입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아침에 물을 마시면 됩니다. 생수 되신 주님을 마시면, 사라졌던 희망이 돌아오고, 힘이 돌아 옵니다. 아침을 한숨으로 시작하는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부지런해져야 낙심도 사라지고, 눈물도 사라집니다.

(2) 낮에는 찬양.
아침 지나고 낮이 됐습니다. 낮에는 뭐해야 합니까? 일만하고, 놀기만 하면 됩니까? 낮에는 찬양해야 합니다. 아침에 생수 먹고 바삐 움직이다 보면 슬며시 나쁜 마음이 들어 옵니다. 지면 안됩니다. 이때는 찬송하고, 찬양해야 됩니다.

5절 끝에 보면 시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면서 힘들지만, ‘여전히’, ‘오히려’ 더 찬송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찬송은 마음 편할 때 하는 게 아닙니다. 일반 노래는 기분 날때 하지만 찬송은 전천후로 하는 거고, 힘들 때 더 해야 하는 게 찬송입니다.

교회에서 말고 집에서, 삶의 현장에서 찬송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사43:21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찬송은 하나님 백성의 존재 이유가 되기 때문에(‘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찬송하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기쁨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 옵니다. 찬송하면 하나님의 영이 임해 상한 내 마음을 만져주고, 위로해줍니다. 그래서 시인은 다짐합니다. ‘오히려’ 더 찬송하겠습니다. 성도들은 수시로 찬양해야 됩니다.

이어령 선생의 글에서 봤습니다. 낙타가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낙타는 사막을 다니는 거친 동물이기 때문에 대단히 매정하다고 합니다. 새끼를 낳아놓고 돌보지 않는 이기적인 낙타가 많다고 합니다. 사막이라는 거친 환경이 만들어낸 부작용입니다. 이런 낙타를 몽골 사람들이 길을 들입니다. 낙타를 앞에 놓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악회를 엽니다. 마두금이라는 현악기의 반주에 맞춰, 자식들과 손자들을 오래동안 키워온 마을의 할머니가 나서서 자장가와 같은 가슴을 울리는 사랑 노래를 불러 줍니다. 놀라운 것은 그 노래를 듣고 낙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린 낙타들은 감동을 받아서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정을 들여 키운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낙타까지 감동을 줍니다.

힘드시면 찬양 하십시오. 낮에 찬양 그랬지만, 아침에 해도 되고, 밤에 해도 됩니다. 찬양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막같은 세상 한 복판에서 사막같이 변해 버린 황폐한 우리 영혼을 찬양이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감동을 줘서 ‘아무것도 아니네’하는 힘을 줍니다. 무지개는 뭐가 와야 돋습니까? 비가 와야 돋습니다. 영혼의 무지개는 눈물이 흘러야 돋습니다. 마음을 적시는 찬양이 우리 마음을 무지개로 만들어 줍니다. 낮에는 찬양. 잊지 마십시오.

(3) 밤에는 기도.
이제 밤이 됐습니다. 남자건 여자건 밤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도 밤에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해 보겠다고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귀함을 언제쯤 알게 될까요? 울음이 있고, 마음이 사막 같을 때 기도가 없으면 안됩니다.

기도의 장면이 8절에 나옵니다.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기도하겠다는 선언이고 다짐입니다. 2절에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고백하던 시인이 여기서는 생명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그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생명의 하나님은 이 몸 살려 주시는 하나님(공동번역)이고, 내 인생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얻음의 수단이 아니고, 승리의 수단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무너지지 않고 이깁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아말렉 전투 기억하십니까? 어떻게 이겼습니까? 모세가 기도의 손을 올리면 이기고, 내리면 집니다. 기도에 대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기도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감격적인 시간입니다. 승리하는 법이 이미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기도는 시간이 남는 사람들이 하는 영적인 사치, 고상한 취미가 아닙니다. 매일 매일의 전쟁터 한 복판에서 행해지는 긴박한 사건입니다. 하는 자가 승리하고, 하지 못하는 자는 진다는 게 성경의 선언입니다. 기도로 자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세상과의 전쟁에서 이기시기 바랍니다.

밤에 기도.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40대가 50대 보다 낫고, 50대가 60대가 보다 낫고, 60대가 70대 보다 낫습니다. 70대는 죽기 전보다 낫습니다. 아침에는 소망, 낮에는 찬양, 밤에는 기도. 여러분들의 삶 속에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울음을 이겨내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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