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 주일 설교: 좋은 삶(시1:1~6) 양은익 목사

 

 

좋은 삶(시1:1~6)
2020.1.12.

1.
오늘 말씀의 Key Word는 좋은 삶입니다. 좋은 삶은 신년을 맞아 기도하는 제 기도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1년의 삶을 살 때 좋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제 바램과 기도를 담아서 축복합니다. 1년 동안 좋은 삶 사십시오.

좋은 삶에서 방점은 ‘삶’에 있지 않고 ‘좋은’에 있습니다. 좋은 삶은 어떤 삶입니까? 좋은 삶이 뭔지 말해 줄 수 있으십니까? 좋은 삶이 뭔가? 이게 좀 애매합니다. 사람마다 좋다 나쁘다의 취향이 달라서 딱 뿌러지게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는 좋지만 너는 나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삶에 대한 바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좋은 삶과 나쁜 삶에 대한 결정은 내 취향대로 해서는 안되는 신앙적인 접근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삶이 있고, 그 삶을 살아내는 게 좋은 삶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삶은 Well-being입니다. 잘 사는 삶. 무탈하고 편안한 삶. 이게 대부분이 생각하는 좋은 삶입니다. 가족들 건강하고, 필요한 거 있으면 살 정도는 되고, 적금도 좀 하고, 사이 좋게 살고. 이 정도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삶입니다.

신앙인들도 대부분 이런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삶을 사는 것을 더 원하고 있습니다. 잘사는 삶 보다 좋은 삶이 더 좋기 때문에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이 끊임없이 주입하려고 하는 좋은 삶에 대한 교정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2.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시편 1편의 메시지는 6절에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악인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인정이라는 말은 보살펴 주신다는 말이니까, 하나님은 의인은 보살펴 주시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악인들은 자신들의 악으로 인해 스스로 망할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악인은 망합니까? 건재합니까? 망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지만 악을 꾸미고 오만한 삶을 사는 악인들은 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정하며 의롭게 살려고 하는 의인들은 하나님이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는 보살펴 준다는 개념을 항상 물질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게 부족하면 보살펴 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자꾸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순간에도 당신의 사람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삶은 잘사는 것만이 좋은 삶이 아니고,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 하나님이 언제나 어디서나 이 땅에서나 죽은 후에도 보살펴 주고 있다는 것, 그것을 믿고, 의지하고, 기뻐하고, 든든해 하는 것. 그것이 좋은 삶입니다. 오늘 아침 마음에 다시 깊게 박아 놓으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하나님이 보살펴 주는 삶이 그 어떤 삶보다 좋은 삶이다.

1.2절 다시 볼테니까 좋은 삶이 무엇인지, 좋은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않고, 죄인들과 함께 하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을 조롱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사람.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인데, 이런 사람이 복되다는 것입니다.죄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다 아시지요. 하지만 그 죄를 거부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없이 좋은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악인과 의인이 의지하는 게 나옵니다. 악인이 믿는 것은 꾀고, 의인은 말씀을 믿습니다. 꾀는 꾸미는 것입니다. 조정하고 조작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꾀의 특징은 임기웅변입니다. 기준이 없습니다. 기준이 있다면 자신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 그것 하나입니다. 그때 그때 변합니다.

하지만 말씀은 항상 똑같습니다. 말씀을 Canon이라고 하는데 대나무자가 바로 캐논입니다. 말씀이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기준은 있어야 합니다. 신자는 기준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기준이고, 말씀이 기준입니다. 그 기준 되는 말씀 안에 좋은 삶이 들어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2절에서 말하는 것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좋은 삶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습니다.

한번 살펴 보시겠습니까? 꾀로 살때가 많은가? 말씀으로 살 때가 많은가? 말씀이 없으면 남는 것은 자신의 꾀, 자신의 머리 밖에 없는데, 그렇게 믿을게 못됩니다. 단언합니다. 좋은 삶은 여러분의 말씀 묵상과 비례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시간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이 묵상하게 되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좋은 삶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평안과 믿음과 은혜가 충만한 좋은 삶이 말씀을 통해 샘솟듯 솟아나오게 될 것입니다.

3.
말씀은 좋은 삶을 만드는 최고의 길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거듭 거듭 생각하는 동안 말씀으로 육화되신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말씀이 없던 나와 전혀 다른 새로운 나로 빚어가고 변화시켜 가십니다.

묵상은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는 길이고, 과정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 같지만 묵상을 하면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고통 중에 묵상하면 고통을 나누시는 하나님이 찾아 오십니다. 슬픔 중에 묵상하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찾아 오십니다. 성공 중에 묵상하면 기뻐하시는 하나님, 겸손케 하시는 하나님이 찾아 오십니다.

말씀 묵상 없이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생각하고 살아내는 것이 신앙의 삶입니다.

말씀과 말씀에 대한 묵상이 있을 때만 신자는 밝아질 수 있습니다.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역경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환대 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 좋은 삶이 만들어 집니다.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제가 대충은 알고 있지만, 말씀 묵상 정말 열심히 하십시오. 이 묵상이 여러분들의 모든 것을 살려 낼 것입니다.

묵상의 시제는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는것 다 아실 겁니다. 과거에 좀 했었지가 아니라 지금 해야 하는 게 묵상입니다. 현재 진행형의 말씀 묵상이 주는 선물이 바로 좋은 삶입니다. 3절 보십시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찾아 올 때 누리는 형통의 축복이 최고의 복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요즘 주로 묵상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씀이 여러분들의 묵상 순위 1번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들으시고, 말씀을 나누시고. 말씀으로 기도하십시오. 좋은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것을 못하게 막는 것들이 만만치 않게 많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게 뭔지 아십니까? 시간도 아니고 환경도 아닙니다.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불신과 부정이 턱 하고 막고 있을때가 많습니다. 무너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드로 사도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5:8~9)

4.
좋은 삶을 위한 지침 몇가지 드리겠습니다.
(1) 돌아보라
좋은 삶을 이루시기 원하시면 가끔이라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돌아본다는 것은 반성한다는 것이고, 두루두루 살펴 본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 살펴 보십시오. 그래야 좋은 삶을 지속 할 수 있습니다.

돌아봐야 할 것 많습니다. 마음의 결, 생각의 방향, 관계의 태도, 무심코 드러나는 표정, 말의 온도, 신앙의 자세같은 것들을 말씀을 묵상하면서 돌아보면서 고칠 것 있으면 고치고, 바꿀것 있으면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삶이 만들어 집니다.

(2) 불운과 대결하라.
또 하나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일어나는 불운들, 힘든 일들에 물러서지 말고 맞서 싸워시기 바랍니다. 불행한 일들은 대처하지 못하면 열의 아홉은 삶을 나쁘게 끌고갑니다. 막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막아낼 힘을 주십니다. 그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 안에 있습니다.

말씀 안에 감수의 힘이 있습니다. 감수(甘受)가 뭡니까? 쓴 것을 달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쓰지만 받아들여서 이겨내는 것입니다. 가져야 되는 중요한 힘입니다. 감수해 내지 못하면 죽지만, 감수하면 새로운 싹이 나서 극복 할 수 있습니다.

불운과 대결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있습니다. 신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수단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교제인데, 이 세가지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우리는 불운과 대결할 수 있고, 감수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존귀하고 복된 내 삶을 일그러지게 만드는 힘든 일이 올 때마다 물러서지 마시고 싸우셔서 좋은 삶을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3) 연합과 연대의 삶을 살라.
세번째 좋은 삶의 지침은 연합과 연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몽테뉴(1533~1592.프.사상가)가 한 말이 있습니다. 적도 친구처럼 대하라. 새겨들을만한 말입니다. 하수는 적을 적으로 대하는 사람입니다. 고수는 적을 친구로 대하고 친구로 만들어 버립니다. 좋은 삶은 연합과 연대, 함께 하는 삶에서 나옵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동료 교우들과 함께 할 때 좋은 삶이 만들어 집니다. 홀로, 혼자서는 안됩니다.

가끔은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 안에, 주가 내 안에 있는지,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말씀으로 연대하고 있는지. 서로에게 좋은 친구, 동료가 되어 줄 때 좋은 삶이 나옵니다. 사소한 일로 주께서 만들어 주신 소중한 연합의 관계를 깨면 안됩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이 보살피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좋은 삶이 여러분들과 가정과 교회와 이 땅 가운데 가득하기를 바라겠습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