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5. 주일 설교: 소망과 인내와 기도로 한 해를(롬12:12). 양은익 목사. 신년 주일

 

소망과 인내와 기도로 한 해를(롬12:12)

1.
2020년 첫 주일에 주시는 말씀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하는 로마서 12:12절 말씀입니다. 한자 한자 꾹꾹 눌러서 마음에 담아 두시기 바랍니다.

K.Barth는 그의 ‘로마서’에서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희망과 인내와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에토스다’. ‘윤리’다. 윤리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그렇타면 희망(소망)과 인내와 기도는 신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하는 도리고,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없음과 있음의 차이가 꽤 날 것입니다.

2.
(1) 환난과 참음
12절을 보면 5개의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소망, 즐거움, 환난, 참음. 기도입니다. 이 다섯개의 단어 중에서 다른 단어와 구별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환난입니다. 다른 단어들은 듣기에도 좋고, 부담이 없는 단어들이지만, 환난은 부담스럽고, 힘든 단어입니다.

환난은 다른 것과 다르게 강압적입니다. 싫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고 밀고 들어옵니다. 피할 수도 없게 들이 닥칩니다. 환난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입니다. 환난이 상수라면 관건은 환난이 올 때 어떻게해야 하는가? 이게 될 것입니다. 환난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환난으로 무너질 수도 있고, 환난으로 인해 더 영성 깊어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표 보십시오.

같은 환난을 겪지만 한쪽은 환난 때문에 절망하고, 분노하고, 조급하다가 무너지게 됩니다. 하지만 한쪽은 어떻게 대처합니까? 어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꺾지 않고,분노 대신에 은혜에 감사하면서 기쁨을 잃지 않고 기도로 견뎌냅니다. 그래서 성경은 환난을 말할 때 마다 늘 ‘참으라’ 말하고 있습니다.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면 더 무너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칼 바르트의 로마서에 나오는 표현 한 대목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환난은 인간의 내몰림이고, 하나님의 나아오심이다’ 환난은 우리를 내몹니다. 건강으로 내몰고, 돈으로 내몰고, 불화로 내몰고, 실패로 내몰고.. 환난의 스펙트럼은 너무나 넓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고통을 주고,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바르트는 환난의 내 몰림 한 복판에 하나님의 나오심도 있다는 것, 그것도 놓치지 말고 보라고 합니다. 환난은 믿음 품고, 참고, 견디기 시작하면 막강한 힘이 소멸되기 시작합니다. 환난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환난을 참고 견디는 겁니다. 견디는데 지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견뎌내야 할 거라면, 믿음으로 견디고, 참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아내는 능력과 잠재력을 주셨기 때문에 많은 것을 참아낼 수 있습니다.

(2) 희망
이렇게 힘을 다해 견뎌나갈 때 희망의 서광이 비쳐 오기 시작합니다. 환난은 희망을 죽이려고 하지만 견딤은 희망을 방어하고, 죽어가던 희망을 살려냅니다. ‘다시 일어나야지!’ 이 마음 놓치지 말고 꼭 가지십시다.

희망의 루트는 두 방향입니다. 희망은 기대를 통해서 오고, 믿음을 통해서 옵니다. 내가 소원하고, 바라는 것이 기대입니다. 기대를 통해 희망이 생깁니다. 하지만 기대는 이루어질 때 보다, 무너질때가 많습니다. 결혼에 대한 기대, 자녀에 대한 기대, 미래에 대한 기대. 직업에 대한 기대. 한번 보십시오. 기대가 무너진 사람들의 탄식으로 넘쳐 나고 있습니다. 기대에서 오는 희망은 상당히 취약한 희망입니다.

이 취약한 희망인 기대가 무너질 때 사실은 진정한 희망이 시작됩니다. 자신의 기대와 꿈이 무너질 때 다가오는 희망. 어떤 희망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희망입니다. 이 희망이 우리를 살려내고, 일으켜 세우는 희망입니다. 희망의 뿌리가 믿음이 될 때 흔들리지 않는 희망 가운데 설 수 있습니다. 기대가 무너진 곳에서 하나님은 희망을 주셔서 새 일을 하게 만드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1~6)

이 시편 23편의 하나님을 올 한 해도 깊게 만나시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희망은 하나님에게서 나올 때 무너지지 않습니다. 무너졌던 제자들이 절망과 실망에서 일어날 수 있던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이 생생하게 만나 후부터 제자들은 폭발적인 희망의 사람들도 변해 버립니다. 어떤 환난도 어떤 고난도 제자들을 무너트리지 못합니다.

성령은 그런 그들에게 힘을 주셔서 희망을 잃어 버린 사람들, 희망이 필요한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 희망이 우리에게 있는 희망입니다. 다시 기억하십시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구원하신 성부 하나님, 부활하사 생명의 능력을 보여주신 성자 예수님, 지금도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희망할 수 있고, 희망해야 하며, 이 희망을 전하는 자로 살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고, 꿈이고, 희망입니다. 이 희망을 마음에 품고, 올 한 해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의 삶을 꼭 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힘들어 할 때마다 희망의 꽃 한 송이 전해주면 그게 최고의 삶 아니겠습니까? 남편에게도 주시고, 아내에게도 주십시오. 자녀들에게도 기대가 아니라 참된 희망을 선물해 주십시오. 상처와 욕망과 낙심을 주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나을 것입니다. 희망을 주는 게 사랑하는 겁니다.

(3) 기도.
희망은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희망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을 어디서 받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 12절 다시 보십시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 바울은 기도를 마지막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아내는 희망이 나오려면 ‘기도’를 통해 받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가 주는 힘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의 힘은 응답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기도의 힘은 기도 자체에 있습니다. 기도가 위대한 것은 기도는 기도하는 자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만들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환난을 이겨내고, 희망 가운데 살고 싶으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에토스입니다. 가져야 하는 도리고, 특성입니다. 바울은 이런 기도를 항상 힘쓰라고 말합니다. 항상 힘쓰라. 꾸준히 하라는 말인데 저는 이 말을 ‘선택’으로 보고 싶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의 선택지는 많습니다. 그 많은 시간의 선택지에서 기도를 선택할 때, 기도를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자유지만, 그 선택의 자유에 ‘기도’가 들어가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삶은 선택의 누적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쌓이고 쌓여서 삶이 만들어 집니다. 처음에는 차이가 나지 않지만 일년 되고, 십년이 되면 선택의 차이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선택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힘을 주실 것입니다. 환난을 이겨내는 힘도 주시고, 희망 할 수 있는 힘도 주실 것입니다.희망과 인내와 기도의 축복이 있는 2020년의 삶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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