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7. 주일 설교. 마가복음 29: 문제 해결의 방식(막6:30~44). 양은익 목사

 

 

마가복음 29: 문제 해결의 방식(막6:30~44)

1.
잘 아는 오병이어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떡 5개,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의 남자가 먹고 남은 신비한 사건인데, 너무 신비해서 어떤 이들은 구라다. 뻥이다 라고 하는 사건입니다. 구라 같은 사건은 다음 주에 보게 될 물위로 걷는 사건에서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예전에는(계몽주의 이후) 교회가 정신나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이런 사건들을 상당히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한 아이가 자신의 먹을 것을 내 놓자 감동 받은 어른들이 꿍쳐놨던 도시락을 풀어서 함께 먹은 거다. 물 위를 걸은 게 아니라 그 밑에 바위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비신화화’(非神話化)해서 말했는데, 어떠세요. 이러면 교회가 정신 나간 사람 같지 않고 전혀 부담이 없지요.

부담을 없애 주려고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렇게 되면 초대 교회 신앙 공동체가 경험했던 예수님의 사건들은 정말 다 구라가 되고, 뻥이 되 버리는 겁니다. 예수님 사건 뿐이겠습니까? 성경 전체의 역사와 사건이 부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오늘 드릴 수 없지만, 이런 사건은 합리적으로 푸는 게 아니고, 상상력으로 푸셔야 됩니다. 어떤 상상력입니까?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는 상상력, 물리적인 법칙에 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비가 작동되고 있다는 아이같은 상상력. 이게 믿음이고, 이런 상상력과 믿음에서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는 여러분들의 마음에 ‘구라네’ 라는 마음이 사라지고, ‘놀랍네’ ‘대단하네’ 라는 마음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2.
오병이어의 기적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온 사건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예정에 없던 엄청난 모임이 빈 들에서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있는 곳을 알아내서 찾아 갑니다. 작은 수가 온게 아니고 남자만 5천명 정도, 부인들과 얘들까지 합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집결하게 돱니다. 간절하게 찾아온 사람들, 가라 할 수 없어 주님은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훌쩍 저녁이 됐습니다. 진행을 맡고 있는 제자들의 걱정이 시작됩니다. 야영을 하든, 집으로 가든 끼니는 때워야 할 것 같은데 빈 들 한 복판이라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급기야 주님께 말하게 됩니다. 그들 나름의 문제 해결을 시도한 겁니다.36절입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먹을 거 주면 좋겠지만, 형편이 안되니 ‘각자 알아서’ 먹게 하자는 것입니다. 제자들로서는 이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37절에 보면 주님은 다른 얘기를 하십니다. 각자 해결하게 하지 말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줄게 없어서 각자 먹게 하자는 말을 한건데, 그런 상황을 모르지 않았을텐데도 ‘너희가 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들이 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 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모한 요청이고, 상식적이지 않은 요청같아 보이는데 주님은 왜 이런 요청을 하셨을까요?

3.
이미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주님의 입장에서 볼 때 제자들의 문제 풀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습니까? 계산으로 풀고 있다는게 보이실 겁니다. 계산기 찍자마자 답을 내 버립니다. ‘각자 먹게 하면 된다’. 이 이상의 답이 없었던 것입니다. 계산 잘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은 계산만 하는 겁니다. 계산 이외의 것이 있다는 것을 잘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계산이라는 현실에 묶이게 됩니다.

주님은 이런 제자들의 문제 풀이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겁니다. 지금 이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둘씩 둘씩 짝지어 훌륭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이 계산만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다른 해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어떤 모습을 보여 줬는지 한번 보십시오. 주님의 문제 풀이 방식입니다. ① 먼저 가지고 있는 떡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보게 하십니다. ② 그리고 사람들을 다 앉게 하십니다. ③ 그리고 새롭게 발견한 오병이어, 보잘것 없는 거지만 그 오병이어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④ 제자들을 통해 나누어 주십니다.

알아보기, 앉기, 감사하기, 나누기(함께하기) 입니다. 이게 주님께서 보여주신 문제 해결 방법입니다. 주님은 이 방법으로 계산으로 풀지 못한 저녁 급식 문제를 풀게 되는데, 이 방법을 오늘 좀 보고 싶습니다.

(1) 알아 보기(38절): 다시 한번 살펴보라.
주님께서 돈 없다고 발끈한 제자들에게 요구한 첫번째 요구가 38절에 나옵니다. 뭐라하십니까? 다시 가서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계산 다 끝내고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제자들인데 주님은 다시 가서 알아보고, 살펴보고, 찾아 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한번의 계산을 절대화시키지 말라는 겁니다. 계산 한 번 해 놓고, ‘안돼. 더 이상은 없어. 이제 끝이야’ 우리가 잘 쓰는 말인데, 이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번의 계산, 한번의 판단으로 안된다. 하지 말고 다시 한번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새겨 들어야 하는 해법입니다.

주님의 말에 제자들이 마지 못해 알아 본 것 같습니다. 알아 본 결과가 뭡니까? 오병이어입니다. 그야말로 코끼리 비스켓입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를 내밀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요? ‘ 보시라고. 다시 알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이걸로 누구 입에 풀칠하겠냐고?’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한계입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밖에’ 없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카드를 보고 한번 골라 보세요. ‘오병이어 밖에 없다. 오병이어나 있다’. 어떤 거 고르시겠습니까? 한 글자 차이지만 엄청난 인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병이어 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인식은 삶을 막아 버립니다. 하지만 ‘오병이어나’를 받아들이면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작아도 없는 게 아니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나라는 존재가 작고 부족해도 없지 않고 있습니다. 들풀교회가 작고 부족해도 없지 않고 있읍니다. 여기서 부터 문제를 풀어 나가면 됩니다. ‘있는 거’ 제대로 볼 줄 아는 거룩한 눈을 가지고 있으면, 보이지 않던 것이 새롭게 보일 겁니다. 이걸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2) 앉기(39절): 자신을 살펴보라
두번째 문제 해결의 방법은 앉음입니다. 주님은 오병이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사람들을 앉히십니다. 저녁 때 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을 그룹으로 질서있게 앉히십니다. 이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넓은 광야에 수 천명의 사람들이 노을지는 석양 빛을 받으면서 삼삼오오 평화롭게 모여 있습니다. 무엇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평화로운 광경입니다. 평화라는 말을 한자로 보세요. 평(平)자는 골고루라는 뜻의 平자고, 화(和)는 쌀 화(禾)와 입 구(口)가 합한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밥이 입으로 골고루 들어 가는 게 평화라는 것입니다. 이런 평화를 주님이 주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앉음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중요한 상징입니다. 문제를 풀어내고, 은혜를 누리는 자로 살려면 서서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먼저 앉아 자신을 살펴야 됩니다. 계획하고 계산한 것을 이루려면 서서 열심히 뛰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앉아서 차분하게 나를 보고, 하나님을 보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자신 안에 있는 교만과 열등과 분노와 허영을 가라 앉혀야 됩니다. 그래야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요즘 어떠세요. 많이 앉아 있습니까? 아니면 서있기만 합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찾으십니까? 계산만 하지 말고, 이런 앉음의 모습 깊게 가져 보십시오. 특별히 일이 잘 안 풀리고, 계산 대로 잘 안 되는 분들이 있으면 더 앉으십시오. 앉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찾아옵니다.

(3) 감사하기(41절)
주님께서 세번 째 보여주는 행동이 41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제자들 조차 하찮게 봤던 오병이어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참 장엄하고, 귀한 광경입니다. 감사와 기도가 합쳐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공간, 사건이 만들어 집니다. 힘을 주고, 방향을 주고, 길을 보여 줍니다. 문제를 푸는 최고의 상태는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거, 기억하면서 불만과 원망과 싸움으로 문제를 푸는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4) 나누기(함께 하기, 41절 下)
41절 끝에 보면 주님께서 하신 마지막 장면이 나옵니다. 하늘을 향해 축사하신 다음에 주님은 떡을 떼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누구를 통해 나누어 주십니까? 제자들을 통해서 나누어 주십니다. 오병이어를 하찮게 보고, 각자 해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항변하던 사람들인데 주님은 그들을 통해 빵과 물고기를 나누게 하신 것입니다.

반대했지만 멀리하지 않고 함게 하고 있는게 보이십니까? 우리는 한번 싸우면 상종도 안할려고 하는데, 주님은 기꺼이 함께 하세요.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삶의 문제, 삶의 기적은 좁은 마음으로는 일어나지 않는 다는 거, 보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던 제자들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손이지만 잡고, 그 손에 빵과 물고기를 떼어서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많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교회는 불가능한 일,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어나야 하는 불가능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크고, 멋있는 교회를 짓는 일은 가능한 일입니다. 병 고치는 일도 가능한 일입니다. 성공하는 것, 출세 하는 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 기도하는 것, 감사하는 것, 함께 하는 것. 낮아지는것, 욕심을 줄이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깊음으로 들어가는 일은 점점 더 불가능한 일처럼 되가고 있는데, 이런 일들이 교회와 신앙인들 가운데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해결 안되는 문제로 힘들어 하시는 분 계시면 오늘 주시는 말씀에서 돌파구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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