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10. 주일 설교. 마가복음 강해 19: 말씀,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막4:1~9). 양은익 목사.

 

말씀,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막4:1~9)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4:1-9)

오늘부터 그동안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성품을 살피느라 쉬었던 마가복음 강해를 다시 시작합니다. 오늘은 19번째 시간입니다. 마가복음은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길을 우리에게 선명하게 밝히 보여 줍니다. 많은 중보로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시대와 교회와 관련해서 마가복음은 특히 권력의 문제에 대한 답을 줍니다. 권력다툼의 틈바구니에 끼어 편할 날이 없이 살아갑니다. 권력은 없어서 그렇지, 만약 있게 되면 남을 지배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력적입니다. 현대사회의 권력의 세 가지 요소는 힘과 부와 지식입니다.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있어도 남에게 꿀리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 한 가지라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권력을 갖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권력의 정점에 살았던 이들이 우리는 하루아침에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음을 봅니다. 이 권력의 세 가지 요소를 얻고자 치열하게 살다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봐왔습니다. 마치 불 속에 뛰어드는 나방들처럼, 권력을 얻고자 우리는 달려갑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가복음을 통해 드러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우리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 줍니다.

마가복음에는 권력을 넘어서신(초월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옵니다. 1장부터 16장까지 예수님의 걸어가신 그 모습은 오직 한가지 목표인 십자가를 향하여 있습니다. 자기 파괴적인 권력의지를 포기 못 하는 이 땅의 현실 속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권력을 모두 갖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지배가 아닌 섬김의 모습을 살다 가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삶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한지 마가복음을 계속 보면서 우리는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백미는 권력과 권위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섬김의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이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의 삶도 정돈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각자 삶의 방향을 잡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삶의 문제들이 이 예수그리스도의 섬김의 모습을 통해 극복되고 답을 얻고 눈뜨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두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4절에 씨앗 비유가 나옵니다. 씨앗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비유입니다. 씨앗은 땅에 뿌립니다. 씨앗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영적 생명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의 생명이 우리에게 떨어져 뭔가를 맺으려면 잘 들어야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인 ‘여러분은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생명의 말씀이 뿌려질 때 잘 듣고 내 삶을 만들어 내라는 비유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모두 말씀을 잘 듣고 잘 반응 했다면 오늘 본문 말씀은 주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씨앗 비유 보시면 알겠지만, 씨앗 비유는 3절, ‘들으라’로 시작해서 9절 ‘들으라’로 끝납니다. 잘 듣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서, 잘 들어야 한다고 환기시켜 주고 있는 것처럼 들려집니다. 비유로 보면 말씀을 잘 듣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과 반응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은 1:3으로 나옵니다. 잘 듣는 사람보다 잘 듣지 않는 사람이 3배 더 많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여러분들의 현실은 어떤 쪽입니까? 말씀이 들릴 때마다 어떻게 듣고 계십니까? 이쪽입니까? 저쪽입니까? 안 듣고, 대충 듣고, 힘들다고 버리는 길가, 돌밭, 가시떨기 쪽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서 열매를 맺고, 반응하는 쪽에 꼭 서 있으십시오.

2.
이사야 66:2절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declare)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볼것이다’ 하늘과 땅을 존재케 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하고 계십니다. 뭘 선포하십니까?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듣고 떠는 사람, 그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시며 그런 이들을 응시하시며, 돌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릴 때마다 이런 마음의 울림과 떨림이 여러분들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들을 찾으시고, 돌봐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합니다. ‘들어라’. ‘이스라엘은 들어라’ ‘귀있는자는 들을찌어다’. 왜 들어야 합니까? 듣는 자들은 하나님이 돌봐 주시기에 들으라는 것입니다. 들을 때 하늘과 땅을 존재케 하신 생명의 근원 되신 이와 관계 할 수 있기에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주장, 가장 큰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God said.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디를 펴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이고, 말씀을 통해 우리와 communicate, 소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겠다는 인정입니다. 신자와 신자 아닌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신자는 성경이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고, 신자 아닌 사람은 말씀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과 길을 알리는 수단으로 말씀을 택하셨고, 그 말씀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이들,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이들에게 말씀은 없으면 안 되는 ‘생명’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반응하여 살아갈 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반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들을 때 신앙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를 이해(Comprehension)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때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Confidence)이 생기고, 이러한 확신 속에서 삶의 변화와 변혁(Change and Transformation)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이래로 계속해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시고, 이 신호를 우리가 붙잡기 원하십니다. 지금도 보내고 계신 데, 이 하늘의 주파수를 찾아내서 들어야 합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말씀, 어떻게 듣고 계십니까?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3.
말씀에는 선포되는 말씀이 있고, 기록된 말씀이 있는데, 이 둘 다를 다 잘 들어야 합니다.

(1) 선포되는 말씀 잘 듣기: 설교
선포되는 말씀은 우리 현실에서는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가 뭡니까? 설교는 하나님께서 대언자를 통해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회중들에 주시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목사를 통해서 설교가 나오지만, 설교 가운데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이 있어서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 가르치고, 책망하고, 교훈하고, 바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설교가 이루고 있지만, 오늘의 이 설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설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간에 있는 게 무엇입니까? ①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자가 있고, ② 말씀을 듣는 회중이 있고, ③ 말씀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처럼 설교는 하나님과 설교자와 회중이라고 하는 삼위가 일체가 될 때 만들어지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말씀의 능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교가 되려면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고,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와 말씀을 듣는 회중 모두가 신실할 때, 설교자도 진실하고, 듣는이들도 진실할 때, 그 말씀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더 진실하게 말씀 전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더 깊게, 마음 닫지 말고,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선포되는 말씀은 목사와 회중의 공동 책임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 160번에 보면 이런 물음을 던집니다. ‘선포된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요구됩니까?’ 어떤 모습으로 말씀을 들어야 할지를 묻고 있습니다. 답은 이렇게 나옵니다. ‘선포된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부지런함과 준비된 자세와 기도로 그 설교를 경청해야 합니다. 자기가 들은 것을 성경을 통해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그 진리를 믿음과 사랑과 겸손함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고 주위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자신들의 삶 속에서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보면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세 가지 마음이 나옵니다. ① 길가와 같은 마음, ② 돌밭과 같은 마음, ③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이 있는데 이런 마음들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도 매 순간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돌밭과 같은 마음,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는 뒤에 보십시오. 주님께서 다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지는 그것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고 싶으면 ① 말씀에 마음을 열어라, ② 말씀에 뿌리를 깊게 박아라, ③ 말씀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걱정. 돈. 쾌락 같은 나쁜 기운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막아내랍니다. 이렇게만 되면 살아나게 될 겁니다. 말씀이 들려질 때마다 이런 놀라운 말씀의 역사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축복하고 축원 드립니다.

(2) 기록된 말씀 잘 듣기(읽기) :성경
또 하나 잘 들어야 하는 말씀은 기록된 말씀, 성경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읽다 보면 귀한 열매가 맺어지게 됩니다. 성경은 어떻게 읽는 겁니까? 눈으로 읽고 끝나는 건 성경 읽기가 아닙니다. ① 읽고, ② 읽은 말씀을 되새기고, 묵상하고, ③ 되새겨 품은 말씀으로 기도하고, ④ 마지막으로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는 말씀대로 읽고, 되새기고, 기도한 말씀이 내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질 때, 실천될 때 성경을 읽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읽기-묵상하기-기도하기-실천하기)

성경 읽기의 출발은 읽기고, 마지막은 실천입니다. 말씀은 행할 때 말씀 읽기가 완성되는 겁니다. 야고보 사도가 한 말씀 있습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약1:22. 새번역) 신앙의 길에서 말씀은 없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다가오시고, 말씀으로 힘주시고, 말씀으로 세상을 바꾸십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 잘 들으셔서, 생명을 누리는 복된 믿음의 삶 살아 내시기를 바랍니다.(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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