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론 10: 충성(갈5:22~23.룻1:6~18)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1:16~17)
1.
오늘은 7번째 성품을 보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품은 충성입니다. 충성인데 이 성품도 역시 만만한 성품은 아닙니다. 특별히 점점 더 보기 힘들어지는 성품이 충성입니다. 스피노자가 350년 전에 남긴 말이 있습니다.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이런 말을 했는데, 우리가 본사랑도 그렇고, 자비, 양선, 오늘 보는 충성까지 글쎄요, 고귀하기에 점점 더 보기가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느끼시겠지만 우리는 충성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충성해’ 그러면, 그게 뭐가 됐든 우선은 기분이 안 좋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충성하세요. 교회에 충성하세요라는 말도 선뜩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권위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복종의 문화가 남겨놓은 병폐일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충성하면 ‘쪼다’ 소리 듣고 있습니다. 성실하면 ‘조롱’ 받을 위험성이 상당히 높아집니다. ‘회사 일 혼자 다 하냐. 충성하면 누가 알아줘. 대충해!’ 이런 소리 종종 들으실 겁니다. 그래서 충성에 관한 생각을 우리가 더 깊게 해야 합니다. 왜 충성이 귀한지, 충성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얼마나 다른지!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2.
충성이라는 단어를 보면 아시겠지만, 충성은 대단히 귀한 성품이고, 없어서는 안 되는 삶의 태도입니다. 충성을 한 자로 한번 보세요. 忠 자는 가운데 중과 마음 심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충입니다. 誠은 정성: 성입니다. 그러니까 충성은 마음 한가운데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다하는 정성이 충성입니다. 영어로는 faithfulness로 쓰고 있습니다. 믿을만하다. 한결같다.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뜻이 얼마나 좋습니까? 나라는 존재에서, 내 삶에서 정성이 사라진다. 믿음이 사라진다. 그러면 뭐가 남겠습니까?
저는 겨울밤이 되면 아궁이 불 꺼트리지 않으려고 애쓰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식은 밥 먹이기 싫어서 언제나 구들 한가운데 담요로 덮어 놓고 따뜻하게 데워 놓으시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고, 사랑이고, 신실함입니다. 적당히, 대충이 없습니다. 늘 한결같게 신실하게 그렇게 해 주셨어요. 어느 어머니인들 안 그렇겠습니까? 사라지면 안 되는 모습들입니다. 불 꺼져서 떨고 있는데도 잠이나 자. 이러면 얼마나 상처가 되겠습니까!
저는 지금부터 충성을 정성으로 바꿔서 쓸 겁니다. 많은 이들이 충성을 꺼려서 내린 고민의 결과이지만, 충성이나 정성이나 다를 거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성이라면 정성은 충성이고, 정성을 다할 때 거기서 신실함과 믿음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3.
여러분들 오늘 아침, 정성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꼭 담고 가시기 바랍니다. 정성은 생명의 단어입니다. 순도 높은 정성은 자신과 주변을 변화시켜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습니다. 정성은 자신과 싸우는 힘든 길이지만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숭고한 삶이고, 거룩으로 가는 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11:28). 이런 정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근데도 오라는 겁니다. 에고로 가득 찬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모습입니다.
신앙은 결국 정성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성, 나에 대한 정성, 타자에 대한 정성이 신앙입니다. 자기만족으로는 온전한 신앙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정성이라는 헌신을 통해 신앙은 익어가는 것입니다. 사랑도 정성이고, 믿음도 정성입니다.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삶, 충성을 다하는 삶만큼 위대한 삶은 없습니다. 이름 없는 삶, 대단한 삶이 아니라도 정성을 다하는 삶은 복된 삶이고, 가치 있는 삶입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정성이 있으면 많은 것이 살아납니다. 살려내고 싶은 일, 회복시키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정성’,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4.
오늘 우리가 룻기서를 읽었는데, 룻이라는 과부가 여자 주인공입니다. 룻을 보는 시각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쪼다 아니면 대단한 사람. 여러분들은 룻을 어떻게 보고 싶으세요. 룻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룻이 세상 물정 모르고 시어머니 따라갔다고 보는 겁니다. 남편 죽고 시어머니, 고향으로 가겠다고 하면 가라고 하고 자기 나라에서 새 출발 하면 되지 ‘시’자 붙은 데를 왜 굳이 따라가느냐는 것입니다. ‘시’자에 많이 덴 분들이 주로 이런 주장을 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보지 말라고 룻기를 주고 있는 겁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자기는 죽어도 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그때 나온 기막힌 고백이 16절에 나옵니다. ‘어머니, 가라 말하지 마십시오.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니 백성이 내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입니다’ 초지일관, 한번 시어머니는 영원한 시어머니. 충성입니까? 정성입니까? 시어머니가 가진 게 많으면 이럴 수 있습니다. 근데 나오미는 무일푼입니다. 따라가 봤자 나올 게 하나 없고, 기댈만한 어떤 것도 없습니다. 실제로 룻은 어머니 따라가서 거지 같은 생활을 합니다.
꽃으로 치면 시어머니는 시든 꽃입니다. 근데도 보십시오. 한 마디로 ‘지극 정성’입니다. 이런 정성, 이런 신실함. 바보 같다고 말하기 전에 이런 정성이 없는 우리의 모습을 먼저 보는 게 순서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라’ 무시하면 큰코다치는 말입니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라는 겁니다. 작은 일이 뭡니까?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일 것이고,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일이 작은 일일 텐데 지금 룻은 그런 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룻의 정성 다한 작은 일에 감동하셨는지 이방 여인 룻에게서 다윗이 나오고, 다윗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룻4:21~22)
물론, 세상이 만만치 않아서 정성의 결과가 룻처럼 언제나 좋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주는 충격적인 결말이 뭡니까? 85일 만에 잡힌 엄청난 고기, 목숨 걸고 싸워서 항구까지 가지고 왔지만, 상어라는 놈이 어떻게 합니까? 다 먹어 버립니다. 싸워 이기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겁니다. 정성과 노력을 다했지만, 노인에게는 남은 건,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허무합니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이런 인생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고, 그럼에도 삶은 정성을 다해 싸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시만 앙상하게 남은 고기를 통해서 말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라고 노인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정성을 쏟았지만 생각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성을 다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배신 일 수 있고, 고통 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성이며, 충성이며, 신실함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별종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꿈을 꿀 수 있고, 이들을 통해서 망가진 세상을 고쳐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성은 포기하면 안됩니다.
5.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우리도 맡겨진 내 삶에, 내 일에 끝까지 정성을 다하며 살아 가십시다. 온통 계산하느라 ‘정성’이 엉망진창이 돼버렸지만 계산을 뛰어넘는 우직한 정성스러움이 살아나야 삶이 살아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정성을 담아내고, 정성을 심으셔서 여러분들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에 ‘정성’이라고 찍혀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말이 정성이고, 하는 일이 정성이고. 아마 이러면 만나는 이마다 ‘뿅’하고 넘어갈 겁니다.
정성. 충성. 신실함은 내가 타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존중이고, 예의 바름입니다. 해볼 만합니다. 정성의 대상 한번 정해 보십시오. 정성의 대상은 일보다는 존재가 되는 게 좋습니다. 하나님도 정성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어떤 누구도 정성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가장 필요한 정성의 대상을 정하셔서 후회 없는 정성, 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인가 남는 게 분명히 있을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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