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6. 주일 설교: 주의 길을 나에게 가르치소서(시86:11~17). 양은익 목사. 신년 주일

 

 

 

                                         말씀: 주의 길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시86:11~17)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12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13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7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시86:11~17)

1.
오늘은 2019년도 1번 주일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인도하심이 올 한해, 가정과 하시는 일 가운데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시작했으니 올해도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길 떠났으니 함께 손잡고 잘 가십시다.

길 갈 때 주의할 것 한 가지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길의 방향을 잘 정해야 합니다. 방향 잘못되면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만, 고생이 만만치가 않기에 잘 정하고 가는 게 좋습니다. 길은 항상 선택입니다. 길에는 항상 ‘기로’(岐路), 갈림길이 있습니다. 갈림길은 항상 애매합니다. 모든 기로는 언제나 고민입니다.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으므로 기로에 서면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모르면 묻고 가야 합니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알만한 사람들,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서 가는 게 현명합니다. ‘어디로 가는 게 좋습니까? 어떤 결정을 해야 합니까?’ 기로에 설 때마다 해야 하는 경건한 의식입니다. 나이 들어도 선택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지혜와 조언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잠12:15절에서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권고를 듣는 사람, 조언을 듣는 사람이 지혜로운 겁니다. 우리도 모르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서로에게 물어보십시다. 삶의 문제도 물어보시고, 영적인 삶도 물어보기 바랍니다.

2.
오늘 시편 86편을 읽었는데, 86편의 시인에게서 참 귀한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 시인은 물으면서 살고 있는데, 누구에게 묻는가 하면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11절 보십시오. 기도 한 대목이 나오는데 뭐라고 기도합니까?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Teach me Your way. 하나님의 길을 자신에게 가르쳐 달라는 겁니다. 늘 듣는 듯해서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주의 도를 가르쳐 달라는 것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천기누설입니다. 하늘의 비밀을 자신에게 가르쳐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뜻을 받들어 살겠다는 겁니다.

86편 전체를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시인은 지금 매우 간절한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는 중에 나온 마음의 토로입니다. 가야 할 길, 주의 길을 가르쳐 주면 내가 살 수 있으니 ‘그 하늘의 뜻’, 천기를 누설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이런 고백을 했을 겁니다. 15절과 17절에 보십시오. 시인은 하나님을 가상의 존재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정말 신뢰했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십니다’(17 절하). 15절에도 보십시오.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16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힘을 주소서. 구원하소서.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아름다운 고백이고 바람입니다. 이런 순결한 믿음이 1년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마음에도 깊게 있기를 바랍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을 이렇게 믿으니 ‘하늘의 뜻’ ‘주의 길’을 가르쳐 주면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주의 길’ 입니다. 많은 이들에게는 없는 사고 체계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함께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시인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나의 길’을 말하지 않고 ‘주의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도전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내 길, 내 뜻, 내 생각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데 내 생각, 내 길이 아니라 주의 길, 주의 마음을 주시면 내 길 버리고, 내 주장 버리고. 주의 뜻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갈림길에 서고, 기로에 설 때 마다 기억해야 할 중요한 신앙적인 태도가 이 한 마디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주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신앙의 길을 가는 이들이 주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묻기는 하는데 정말 주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을 이루어주는 수단으로 주님의 뜻을 구할 때가 의외로 많이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까 봐 걱정까지 합니다. 혹시 손해 보는 것 아니야.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

3.
저는 주님의 길을 가르쳐 달다는 시인의 기도가 입에 발린 기도라고 보고 싶지 않습니다. 가르쳐 주시면 가르쳐 주시는 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섬기라 하시면 섬기고, 용서하라 하시면 용서하고, 포기하라 하시면 포기하고, 절제하라 하면 절제하고, 참으라 하시면 참고. 가라 하시면 가고. 이런 게 순종입니다. 내 마음은 아니지만 ‘하라’ 하시니까 기꺼이 내 뜻을 접고 주의 뜻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에서 가장 아름답고, 그러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인지 아세요? 자기 포기의 순간입니다. 자신을 포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를 따르라’가 아니고, ‘주를 따르는’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겁니다.

자기 포기가 없는 신앙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포기가 있을 때 비로소 섬김과 순종과 희생과 사랑과 평화와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가 있게 됩니다. 주의 길과 주의 뜻은 생각만큼 모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다 밝혀져 있습니다. 따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럴 만한 용기와 각오가 부족하니까 패싱해 버리는 겁니다.

내 길을 기꺼이 포기하고 주의 길을 따르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런 때 필요한 용기가 엑소도스의 용기입니다. 엑소도스는 출애굽입니다. 출애굽은 뭡니까? 새길 가기 위해 박차고 일어서는 겁니다. 용기입니다. 다 버려야 하는 용기고, 희망을 바라보는 용기입니다. 출애굽을 영어로 Exodus 라고 하는데 두 단어가 합해진 겁니다. EX+hodos의 합성어입니다. Ex는 밖으로고 hodos 는 길입니다. 가던 길 벗어나 새길 가는 것. 이게 Exodus 입니다. 이런 용기가 새길 열어 주는 것입니다.

4.
최승호 시인의 [자동판매기]라는 시가 있는데 한번 보세요.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눌러버렸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 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 다닌다. 정신 좀 차려야지, 고정관념으로 굳어가는 머리의, 자욱한 안개를 걷으며, 자, 차린다, 이제 나는 뜻밖의 커피를 마시며. 돈만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를, 매춘부라 불러도 되겠다. 황금교회라 불러도 되겠다.

자판기에서 매번 커피 마시던 사람이 오랜만에 오렌지 주스 마시려고 버튼을 눌렀는데 오렌지 주스 버튼을 누른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커피 버튼을 눌러 버린 겁니다. 습관이 그렇게 하게 만든 겁니다. 이처럼 습관의 힘은 큽니다. 습관은 내 안에 둥지를 틀고 나를 지배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도 긴장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충분히 습관으로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습관도 있지만 안 좋은 습관, 우리에게도 많이 있습니다. 가장 안 좋은 습관은 ‘나’ ‘내가 중심’에 있는 신앙입니다. 하나님 보다 높이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무의식. 깨야 진정한 출애굽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86편의 시인은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힘들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1절, 가난하고 궁핍하며, 14절. 교만하고, 포악한 사람들이 그의 목숨을 노릴 정도로 위험합니다. 위기 앞에서 비명을 지르는 우리와 다를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인은 이런 상황에서 Exodus, 벗어나 새길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내 길이 아니라, 주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런 간구가 기로에 설 때마다, 갈림길에서 망설일 때마다 저와 여러분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과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길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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