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2. 주일설교. 성품론 5: 기쁨(빌4:4, 갈5:22). 양은익 목사.

 

 

성품론 5: 기쁨(갈5:22,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1.
12월 대림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4주에 걸쳐 촛불을 하나씩 더 밝혀갈 것입니다 4개의 촛불 중 오늘은 첫 번째 보라색 촛불 ‘희망’을 상징하는 촛불이 불을 밝혔습니다. 앞으로 평화의 촛불, 기쁨의 촛불, 사랑을 촛불을 밝혀갈 것입니다. 매주 촛불을 응시하는 여러분들의 가슴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혜의 빛이 스며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이런 감성은 아름다운 감성입니다. 촛불로 여러분들의 가슴이 주님의 은총의 빛으로 밝아지는 은혜로운 대림의 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귀한 주일 아침 오늘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아홉 가지 성품 중 가장 밝은 성품이 기쁨입니다. 기쁨의 성품을 가지고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되면 밝아집니다. 내가 밝아지고, 주변이 밝아집니다. 기쁨은 있을수록 좋습니다. 아픔 중에 있는 분들에게도 기쁨은 있어야 합니다. 슬픔 가운데 있어도 기쁨은 있어야 합니다. 기쁨이 있으면 아픔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쁨이 있는 이들과 없는 이들의 삶을 비교해 보십시오. 천양지차입니다. 기쁨은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는 큰 선물을 줍니다. 기쁨을 기(氣)가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기는 만물을 만들어 낼 정도로 강한 기운을 말하는데 그러한 강한 기운에 솟구쳐 나오는 상태가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기뻐할 때 이런 강한 기운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교회 현장에서 기쁨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힘들어 죽겠는데 또 기뻐하라 하네’ 입니다. 여러분들은 힘든데 기뻐하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반감도 생기고 속상한 마음도 들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쁨이 기가 뿜어져 나오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힘들 때 기뻐하는 것이 더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2.
기쁠 때도 있고, 기분 나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기쁘십니까? 언제 기분이 나쁘십니까?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지 않으셨습니까? 사전적 기쁨의 정의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흐뭇하고 흡족해하는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정의합니다. 기쁨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나오는 만족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를 일으킵니다. 뜻대로 돼서 만족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더 난감한 것은 성경은 그럼에도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만 오면 듣는 소리가 돼버렸습니다. 기쁜 것 같지도 않은 이들이 마지 못해 기뻐하라 하니 억지로 기뻐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잘해야 합니다. 오늘 빌립보서 본문에서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바울의 상황이 좋아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갇혀 있는 상태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도 기뻐할 만한 만족함이 없습니다. 이런 순간에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이 딜레마(곤란한 상황, 궁지)를 해결하셨습니까? 기뻐해야 하는데 기뻐할 게 없습니다. 이 궁지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면 기쁨은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확인해야 합니다. 기뻐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항상 기뻐하는 것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가능한 이유가 뭔지? 알아야 합니다. 가능하기에 이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항상 기뻐하라고 요청한 이유는 바울의 명령 안에 답이 있습니다. ‘주 안’입니다. 기쁨의 근거, 기뻐하는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고 그분 안에 있게 되면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하여, 기뻐할 만한 조건이 안 보여도 ‘주 안에 있으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을 이루어진 일에 대한 만족으로 보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 기쁨은 어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만족에 대한 반응도 아닙니다. 주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확신에 대한 반응이 기쁨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
기쁨에 접근하고, 기쁨을 정의하는 방법 모두 다릅니다. 우리는 기쁨을 얘기할 때 전제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통의 부재와 어려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야 기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은 이루어진 일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주 안에 있다는 안도감입니다. 만유의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쁨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기쁘고 든든하기에 상황이 나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울더라도 나의 내면은 기쁨으로 웃을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주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 확고한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녁에 눈물 흘려도 아침이면 기쁨(시30:5)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 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시90:15) 하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고난이 많으셨습니까? 똑같이 기쁨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과 혜택만 기뻐합니다. 기도를 할 때도 혜택받는 것과 선물 받는 것만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래서 선물이 없으면 신앙도 기쁨도 뚝 떨어집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만을 원하고 기뻐하지 마시고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성급하게 서두르지 마십시오. 앞서가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다 보면 섭섭함만 남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완전히 망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있어서 여전히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단히 미쳤군’이라고 말하지 말고, 흔쾌히 받아들이는 자리까지 좋겠습니다.

4.
‘조금만 더’라고 하는 강한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기쁨을 누리고, 기쁨의 성품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기뻐하는 연습과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의 열매도 키워야 합니다. 두 가지 연습이 필요합니다. ① 가장 중요한 연습입니다. 주 안에 있는 훈련.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받으려는 선물, 내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안 됩니다. 선물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게 먼저입니다.

시34:8절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고, 시51:12.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듣기만 하지 말고 생각하고, 묵상하십시오. 묵상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구원의 즐거움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될 때 내 안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뻐할 때 가장 크게 기뻐하고, 가장 크게 영광 받으십니다. 기쁨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도 좋아하시고, 내 옆에 있는 모든 사람이 좋아합니다. 내가 웃는 환한 웃음, 기뻐하는 모습이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통로가 됩니다.

② 두 번째 연습해야 할 것은 기쁨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기쁨의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경쟁과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기쁨은 적어지는데, 우리가 그런 사회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승자들은 쾌락을 누리고, 패자들은 억울해합니다. 감사도 없고, 사랑도 없고, 기쁨도 없고, 평화도 없습니다. 기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아픈 현상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냉소와 질투입니다. 냉소와 질투는 기쁨을 죽이는 암 덩어리들입니다.

냉소는 말 그대로 냉소(冷笑), 차가운 웃음입니다. 비웃는 것입니다. 냉소하게 되면 누구도 인정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무서운 병입니다. 냉소를 품게 되면 기쁠 수가 없습니다. 냉소는 하면 할수록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서 냉소하는 자신이 망가지게 됩니다. 질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질투는 남 잘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질투가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칭찬이 없게 되고요, 인정도 없게 됩니다. 싸우게 되고, 갈라지게 됩니다. 기쁨이라는 가치가 나올 수 없게 됩니다.

아쉽게도 우리 주변은 냉소와 질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기뻐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성도들부터 이겨내야 합니다. 냉소하지 않는 삶, 질투하지 않는 삶만 잘해도 훨씬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질투하지 않고 기쁨을 선물해 보십시오. 엄청난 기쁨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얘기 들었습니다. 식구들이 겨울옷을 꺼내 입을 때 공돈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려고 식구들 옷마다 지폐 한 장씩을 넣어 두었다고 합니다. 멋진 얘기입니다.

5.
기뻐하는 게 어려워 보여도 기쁨은 곳곳에 깔려 있습니다. 기쁨은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찾아와 준 것들에 대한 발견입니다. 이해인 수녀의 작은 기쁨이라는 시 한번 읽고 마칠 텐데 대림의 계절에 기쁨을 발견하고, 기쁨이 영글어가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밤에 눈을 감으며 작은 기쁨을 부르고. 자꾸만 부르다 보니 작은 기쁨들은, 이제 큰 빛이 되어 나의 내면을 밝히고 커다란 강물이 되어 내 혼을 적시네. 내 일생 동안 작은 기쁨이 지어준 비단 옷을 차려 입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고맙다고 말하면서, 즐겁다고 말하면서. 자꾸만 웃어야지.(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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