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8. 주일 설교. 성품론 1: 시대의 요청, 성품(갈5:22~23). 양은익 목사

 

 

말씀. 성품론 1:시대의 요청, 성품(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오늘부터 약 두 달간 성품을 주제로 함께 말씀을 나눌 것 입니다. 오늘은 첫 시간입니다. 제목이 참 거창합니다. 성품은 개인의 됨됨이를 일컫는데, 개인적인 문제를 시대의 요청이라 하면 너무 거창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시면서 이것이 개개인의 문제만은 아니구나! 하는 문제 인식과 또한 깨달음에 대해 도전하는 큰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대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개혁이 요구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1주년이 되는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또한, 초창기 기독교처럼 순교를 요청하는 시대도 우리는 지내왔습니다. 또 전도가 집중적으로 요청되는 시기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우리에게 시급하게 요청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신앙인들이 보여줘야 하는 시대의 요구는 무엇일까요?

개혁과 전도 모두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우리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품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성품’은 시대도 그렇고, 하나님께서도 요청하고 계시는 중요한 요청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거칠고, 싸워야 하고, 분노해야 합니다. 삶은 아픔에 처해 있고 그들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이 성품이 무너지며, 그들 속에서 같은 모습으로 싸우며, 지독해지며, 미움 가득한 모습을 지닐 때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의 삶은 우리 신앙인의 자부심과 명예를 스스로 깨는 삶입니다. 그렇게 안 하면 살 수 없다고 항변할 수는 있지만, 이 항변조차도 우리에게 주어진 엄청난 자부심과 명예를 스스로 깨는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와 성도가 성경이 요구하는 성품을 가졌다면 교회는 지금처럼 욕을 먹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로부터 ‘교회 다니는 당신들이나 우리나 똑같다’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 가운데 나누고자 하는 이 ‘성품’은 윤리나 도덕의 차원으로 끝나는 성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꼭 가져야 하는 삶의 모습으로서의 성품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선택 사항으로의 성품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내 성품, 내 기질 가지고 내 마음대로 살면 되지, 누가 뭐라 하냐?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자의 성품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신앙의 내용이며, 신앙의 과정이며, 신앙의 완성입니다. 성품은 신앙인의 삶 자체입니다.

신앙생활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은 왜 합니까? 신앙생활에서 무엇을 얻는 것입니까? 신앙생활은 하나님 사람다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고, 내 삶의 모습이 주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바로 바울이 말한 아홉 가지 열매를 맺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 아홉 가지 됨됨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 열매들이 삶에서 묻어 나오기를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보고 싶어 하십니다.

이 성품을 통해 하나님은 놀랍게 일하십니다. 세상을 치유하시고 화목의 직책으로 원수가 되어 서로 담을 쌓고 있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에게 이 성품이 없다면 우리는 이 막중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때로는 입으로만, 또 몸으로 선한 행동을 함으로써 때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입으로, 몸으로 주님을 위해 일해도, 내 성품 됨됨이가 되어 있지 않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누구나 성공을 좋아합니다. 신자의 성공은 무엇입니까? 신자의 성공은 성품의 성공입니다. 돈, 건강 모두 우리를 떠납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성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 된 자들이 이 열매를 맺는 성품을 보여 주기를 바라십니다. 자기만 알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보기 시작하고, 못 참던 사람이 서서히 참기 시작하면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자의 성품으로 각자 자기 삶의 터전에서 서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신자의 책임입니다.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이 시대가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신자다운 성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내 성품으로 보여 줘야 합니다. 영생을 믿는 자는 다르구나 하는 것을 내 성품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행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성령을 쫓아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놀라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품을 이루고자 하는 부단한 싸움을 계속 싸워나가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주님의 영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다가오는 길은 4개의 루트가 있습니다. 첫째, 성령 세례, 둘째, 성령 충만, 셋째, 성령 은사, 넷째, 성령 열매입니다. 성령 세례는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쳐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한 구원은 이렇듯 내가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인침을 통해 일어납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이 충만하게 거하시며 늘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정말 필요하기에 교회마다 성도들의 성령 충만을 위해 구하고 기도합니다. 성령 충만은 삶을 힘차게 살 수 있도록 합니다. 성령 은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선물이기에 종류도 대단히 많습니다. 각 개인에게 필요한 은사를 선물로 주십니다. 이 성령 은사에는 우월의 개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이끄시는 대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갈라디아서에서 아홉 가지로 나옵니다.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과 성령의 은사를 통해 맺어지는 결과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이 성령의 열매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세례를 받아 구원받았다고 그 단계에서 안심하고 살면 안 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 나 혼자 만족하며 신나게 사는 것으로 끝나도 안됩니다. 성령 은사를 받아 성령의 임재 속에서 개인적인 삶으로 끝내서도 안 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에 유익을 끼치라고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세례, 성령 충만, 성령 은사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수준까지 가야만 합니다.

나의 신앙생활이 성령세례, 성령 충만, 성령 은사를 받았어도 열매가 없다면 나를 돌아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보다 중요한 것이 열매입니다. 은사는 받았는데 열매가 없으면 안 됩니다. 은사에는 섬김, 방언, 병 고침, 말씀의 은사 등. 아주 많은 은사가 있습니다. 은사를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은사를 못 받아도 열매는 맺을 수 있습니다. 성도라면 열매는 반드시 맺어야 합니다. 많은 은사를 받았음에도 열매가 없고 늘 자기만 알고 살고 있다면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충만함과 은사를 주신 이유는 열매를 맺으라는 선물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열매를 맺기 위해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성품을 갖고 계십니까? 각자 묻고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열매의 크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열매의 크기가 여러분들의 신앙의 수준일 것입니다. 사람됨의 수준일 것입니다. 이 지적은 지적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잘하기 위함입니다.

열매의 크기가 직분대로, 교회 다닌 연수대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열매가 겸손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무럭무럭 커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의 성격과 기질은 신자가 된 후에도 거의 그대로 두십니다. 나쁜 성격은 물론 고쳐나가야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의 기질은 유전적으로 주셨기에 거의 그대로 두십니다. 베드로는 급한 그대로, 바울은 바울의 기질 그대로 두십니다. 그러나 성품은 회복시키고 고쳐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육의 성품은 거룩한 영의 성품으로 고쳐 나가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들은 이 과정에 열심을 품고 참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변화의 씨앗을 두셨습니다. 이 씨앗을 품고 싹틔워야 합니다. 그리고 열매 맺어야 합니다.

신자는 성품이 나쁘면 변명할 수 없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우리는 계속 끊임없이 성장하고 내 성품이 자라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품으로 열매 맺어야 합니다. 늘 똑같다면 어떡합니까? 느리더라도 발전해야 합니다. 벧후1:4~9절 말씀입니다.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면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닌,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아들까지 내어주신 그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여러분들은 얼마나 깨닫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이 놀라운 성품의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닮아내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또한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따르는 신자들입니다. 이 성품을 닮아내지 못해 입으로만 하는 신앙생활이 바로 외식입니다. 내 성품이 사랑이 없고 참아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합니까? 위선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자라가야 합니다. 내 신분이 어떤 신분인 줄 알고 거룩하게 성품의 열매를 맺어 자라나야 합니다. 그렇게 자라갈 때 어떤 잔혹한 일조차도 받아낼 수 있는 자로 자라나게 됩니다. 단호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육의 성품(죄의 성품)을 끊고 버려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도우십니다. 충만함과 은사로 도우십니다. 반드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유익과 내 삶의 수단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합니까? 신의 성품으로 자라나십시오. 신앙의 성숙과 자람은 나의 성품이 신의 성품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랄 때 빛으로 소금으로 세상에 존재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나로 인해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품에 헌신하십시오. 성품의 결여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그 대가는 깨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로 서기 위해 반드시 성품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이 성장해 갈 때, 나의 문제, 나의 아픔은 눈 녹듯 해결되고 치유되는 신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신의 성품에 헌신하는 것을 부담스러워서 하거나 억울해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나 할 수 없기에 성령을 받은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랑스럽게 여기며 받으셔야 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몇 주간에 걸쳐 함께 나누게 될 성품에 대한 말씀들이 우리 모두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