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 우리가 지켜야 할 주일(막2:23~28)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막2:23-28)
마가복음 14번째 말씀입니다. 스크린을 보시겠습니다. 숫자가 쓰여 있습니다. 52, 104, 156, 208, 260, 520, 780, 1040, 1560. 이 숫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1년은 52주입니다. 2년은 104주. 그래서 위의 숫자는 1년, 2년, 3년, 4년, 5년, 10년, 15년, 20년, 30년간 남아 있는 주일의 숫자입니다. 많은 것 같으십니까? 남은 생이 긴 분은 저 숫자 채우며 예배드릴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은 우리는 천국에서도 예배할 자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따름도 신앙의 과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우리 앞에 놓인 저 많은 주일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십니까? 그냥 대충 보내시겠습니까? 힘겹게 겨우겨우 시간 내서 예배만 잠깐 드리시겠습니까? 억지로 마지 못해서 갈등하면서 교회에 겨우 나오는 식으로 보내시겠습니까? 그렇게 지내기에는 남아 있는 주일 수가 너무 많습니다. 드려야 할 예배 수가 너무 많습니다. 힘겹게 기쁨 없이 꾸역꾸역 부담감으로 하는 것은 지옥입니다. 그럼 그렇게 안 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예배를 드리는 주일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즐기십시오. 이것이 답입니다. 주일을 기대하고 큰 기쁨과 소망으로 기다리고 즐기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하고 축원 드립니다. 기쁨으로 여러분들이 탄성을 지를지 누가 알겠습니까?
반경환의 ‘때’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무릎이 구부러지는 건, 세상의 아름다운 걸 보았을 때 굽히며 경배하라는 것이고 세상의 올곧지 못함을 보았을 때 솟구쳐 일어나라는 뜻이다. 때를 가리지 못함이 무릇 몇 번이던가?” 우리의 주일이라는 시간과 때가 이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 무릎 꿇어 경배하고, 살아갈 힘을 받아 솟구쳐 일어나고. 이런 때를 우리가 얼마나 많이 놓쳤습니까!
오늘 본문입니다. 주님과 바리새인 사이의 논쟁 중심에 ‘안식일’이 끼어 있습니다. 우리도 안식일을 점검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안식일에는 안식일의 정신, 주일에는 주일의 정신이 있습니다. 그 정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주일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인식하여 온전한 주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예배 한 시간 드리는 것으로 주일에 대한 심리적 만족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참석하지 못할 때는 마음이 편치 않고 찜찜합니다. 하지만 예배 한 시간 드리는 것으로 내 할 도리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예배가 주일의 꽃이고, 정점인 것은 맞지만 예배가 주일의 전부는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대면한 분들은 주일 정신, 구약 용어로 안식일 정신을 삶으로 담아내야 합니다. 예전에는 주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주일에 돈 쓰면 안되고, 주일에 장사하면 안되고, 오락하면 안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열심히 지켜서 금하는 것들을 안 하게 되면 주일 성수(聖守) 했다고 해서 좋은 신자로 인정했습니다. 해 보시면 알겠지만, 상당히 힘들고 불편합니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이런 힘듦과 불편함에도 주일을 지키겠다는 열심과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엄숙주의는 사라졌지만, 목사로서는 이런 열심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금지 조항들이 없어지면서 주일에 대해 남아있는 관심, 성도와 불신자를 구분하는 마지막 한 가지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빼면 우리의 주일과 그들의 주일이 너무나도 똑같습니다.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안식일 규정을 만들어서 안식일의 정신을 훼손시킨 것과 예배만 드리면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거나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리새인에게 도전하시는 예수님이 나옵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안식일 법이 아니라 안식일이 품고 있는 근본정신임을 밝혀주고 계십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안식일에 주님과 제자들이 어딘가를 향해 가다가 밀밭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밀밭을 가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 비벼 먹는 걸 이 사람들이 본 겁니다. 이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건지 일부러 꼬투리 잡아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넘어뜨리려 따라 다니면서 지켜보다가 보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바리새인들이 보게 됐습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에게 현장에서 딱 걸린 겁니다.
안식일 법과 정결법을 중시하던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걸어 옵니다. 이때 주님은 다윗 얘기를 꺼내십니다. 다윗도 배가 고팠을 때 대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지 않았느냐? 제자들도 배가 고파 밀 이삭을 먹은 것이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그 유명한 안식일의 정의, 주일의 정의입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예수님)는 안식일에도 주인 이니라'(27-28절) 무슨 얘기입니까?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안식일(주일)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가 여러분들에게 확실하게 마음 깊이 새겨지시기를 바랍니다. 유대인이 지내는 안식일과 우리가 지내는 주일은 다릅니다. 그러나 정신은 같습니다.
주일과 안식일의 본질 세 가지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로 중지와 기억과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주일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육체의 쉼을 통해 돌아올 새 주간에 더욱 일을 효율적으로 잘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주일은 육체의 쉼과 더불어 나의 생명과 영혼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1. 중지(Stop)
주일은 중지하고, 멈추는 날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출20:8~10, 새번역)
안식일의 유래는 창조 때부터 입니다. 하나님은 6일간 일하시고 마지막 날 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노동으로 시달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출애굽 한 후 이 쉼의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단비와 같은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하루 쉬면 죽을 것 같고 망할 것 같다는 생각 버리고 과감히 믿음으로 쉬라는 것입니다. 일과 상황이 도무지 쉴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도 쉬라는 것입니다. 이 쉼에 대한 명령은 ‘노동, 염려, 갈등, 실망, 성공, 수많은 자랑과 자부심’ 모두를 포함합니다. 이런 모든 것에서 ‘중지’하라는 것입니다.
바쁘면 사람이 안 보입니다. 하나님도 안 보입니다. 오로지 일만 보입니다. 일에 매몰되면 장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멈춤을 통해 보라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을 살펴보고 그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깊이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남녀 노예조차도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안식일 만큼은 주인도 종에게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안식일은 종이 사람대접 받는 날입니다. 스팩이 보잘것없으십니까? 상관없습니다. 안식일은 대접받는 날입니다. 이 얼마나 혁명과 같은 계명입니까?
일은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너무나 소중하기에 자칫 잘못하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조절하는 것이 신앙인의 과제입니다. 일이 우상이 되면 자신도 보지 못하게 하고 옆 사람도 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렇듯 모든 소중한 것들이 과하게 되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오, 요새이시며, 나의 힘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일로 대치되는 것입니다. ‘일이 나의 반석이며 요새이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일을 통해 으스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멈춰라. 영적인 시간을 가져라. 쉼을 통해 네 옆 사람을 돌아 봐주고, 하나님을 보라 하십니다.
살면서 우리가 의지하던 소중한 것들은 모두 때가 되면 힘을 쓸 수 없습니다. 바로 그때 주일마다 잘 멈추고, 잘 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던 이들은 하나님이 끝까지 나의 반석, 나의 요새가 돼주시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유대 사상가 아브라함 혜셀의 말입니다. ‘안식일이 평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평일이 안식일을 위해 있다. 안식일은 삶의 막간이 아니라 삶의 절정이다.’ 우리의 평일은 우리의 주일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주일에 우리는 이 우주를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고 살펴주는 것입니다. 일 때문에 너무 바쁘십니까? 듣고 이해는 되는데 도무지 시간을 내실수 없습니까? 꼭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이 멈춤의 정신을 지켜나가시기 바랍니다.
2. 기억 (Remember)
주일은 기억하는 날입니다.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신5:15, 새번역)
안식일을 지킬 때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기적들을 통해 강한 손과 편 팔로 애굽에서 구원하셨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날은 일하느라고 바빠서 기억 못 해도 안식일에는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기억할 사건이 출애굽의 구원 사건이면, 우리가 기억할 사건은 주님의 십자가 구원 사건입니다. 그들이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듯 우리는 매 주일 십자가 구원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늘 새롭게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를 계속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십니다. 바로 구원, 부활, 죽음을 이기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주의 구원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주일마다 세상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입하는 온갖 종류의 불안과 불안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강요에 저항해야 합니다. 주일마다 불안에 저항하십시오. 그리고 불안해서 안 하고 못 배기는 그 수많은 강요에 저항하십시오. 내가 이렇게 질 수 없지…. 하십시오. 무엇이 그토록 불안하게 합니까? 대부분 사는 것, 노후 문제, 자녀 문제들입니다. 불안은 탐욕이 주는 나쁜 선물입니다. 탐욕은 나쁜 욕망을 말합니다. 옆집 아이가 학원 다니면 불안해서 우리 아이도 보내야 합니다. 불안으로 아이들을 몰아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안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불안이 주는 강요는 정말 놀랍습니다. 저항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내려오자 불안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지만, 하나님은 다 부숴버립니다. 불안해서 만들어 놓은 것들은 하루아침에 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다 깨버리십니다. 끊임없이 불안만을 만들어 내는 세상에 편승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불안에서 우리를 구해줄 분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내 모습이 비록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내 인생에서 하나님께 겸손히 예배하며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모습이 세상에 대한 가장 큰 저항입니다. 여러분들이 드리는 이 예배를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이 예배는 여러분들이 세상을 향해 저항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양보하거나 소홀히 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구원은 정말 기적처럼 찾아옵니다. 정말 기적처럼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찾아오셔서 구원을 이루십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또한 여러분들의 내면에 깊이 찾아오셔서 그 아름다운 찬란한 빛을 비춰 주시고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3. 회복 (Recover)
우리는 모두 주일을 통해 조금씩 회복돼야 합니다. 조금씩이라도 수리하시고 회복하는 날로 만드셔야 합니다. 찢어진 상처를 한 땀, 한 땀 꿰매줘야 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이라는 말은 예수님 없이는 안식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회복된 대가는 예수님입니다. 부끄러움도 회복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도 회복하십시오. 상처 준 마음도 회복하시고, 상처받은 마음도 회복하십시오.
이 안식일, 주일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얼마나 많은 주일이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된 안식과 구원의 기쁨과 회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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