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잊지말고 기억하라 (시106:13~48). 2018.4.24, 25일.

매일 성경: 중보자가 되라(시106:13~31).
2018 .4. 24. 화.
새벽을 깨우는 말씀. 

‘기억이 영성이다. 기억이 믿음이다’

어제부터 시편 106편을 보고 있습니다. 106편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기록한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은 실패의 연속입니다. 이 이야기는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며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실패한 자들의 실패를 분석해서 다시 실패하지 않도록 하는 학문을 ‘실패학’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실패학의 관점에서 살필 것입니다. 어제도 그들의 실패를 살폈고 오늘도 살필 것입니다. 그리고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시106:13)

이것이 그들의 실패한 원인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기억하지 않음),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 실패의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고 인도하셔서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에 대한 망각입니다. 잊어버리면 또 실패합니다. ‘기억이 영성이고, 기억이 믿음이다!’라는 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모든 일을 기억함이 나의 영성입니다. 기억은 나의 믿음을 강화해 줍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한 기억이 강화될수록 나의 찬송과 찬양이 더욱더 울려 나옵니다.

왜 기억을 잘 못 하는 걸까요? 이스라엘 백성도 나도 왜 이렇게 쉽게 망각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기다리지 아니하고(13절 끝), 욕심을 크게 내며(14절 처음)’ 이 두 가지 때문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사랑….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급해지며 망각의 늪으로 빠집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급하더라도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한, 욕심이 생기면 믿음을 막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도 욕심을 냈습니다. 사람은 있으면 있는 대로 욕심을 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욕심을 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도 욕심을 냈습니다. 욕심의 끝은 감사가 아니라 불평과 원망입니다. 욕심이 들어오면 하나님은 사라집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에 대한 감각도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시106:15)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불만과 불평 속에서 물을 달라,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만나도 주시고 메추라기도 주셨고 물도 주셨습니다. 달라고 졸라서 주셨는데, 즉 기도 응답은 받았는데….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된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 됐으나, 그 응답이 오히려 독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빠지는 함정입니다. 물질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더 중요합니다. 한국 교회도 물질을 달라! 물질의 축복을 구하는 일에 매달리다 오히려 더 쇠약해졌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급할 때 어떤 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 초조해지면 안 됩니다. 욕심내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교훈입니다. 16절~31절을 보면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네 가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고라의 반란사건(민 16장):16절
출애굽 후 일어난 큰 반란 사건입니다. 모세와 아론만 인정받는 것에 대한 질투 때문에 일어난 실패입니다.

2. 금 송아지 사건(출 32장):19절
모세가 호렙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기다림에 실패하며 우상을 만듭니다

3. 가나안 정탐사건(민13~14):24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셨는데 정탐꾼들은 아낙 자손의 강대함에 자신들을 메뚜기에 비교합니다. 들어가면 죽는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백성들은 울고불고 난리를 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신뢰의 실패, 믿음의 실패입니다. 이 실패로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묻히게 됩니다

4. 바알브올 사건(민25):28절
이방 신을 믿는 여사제에게 빠져 이방 신의 제사에 참석하게 되는 죄를 짓게 됩니다. 이것은 말씀과 율법이 금하는 것입니다. 즉 말씀의 실패입니다.

이 네 가지 모두 기억하지 못해서 생긴 실패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 구원하심. 이 모든 것을 아무리 급한 일이 닥쳐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실패하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실패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는 늘 중재자, 중보자가 있었습니다. 이 중재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하나님을 설득하여 진노로 백성을 멸하시지 않도록 해줬습니다. 모세(23절), 비느하스 (30절)가 중재자로 나옵니다

한 인간이 철들기까지 중보자,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중보자, 중재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우리가 멸망 당하지 않도록 하고 계십니다. 각 개인 사이에도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부부가 싸울 때는 아이들이 중재자입니다. 중보자의 역할은 훌륭한 것입니다. 아픔이 있는 곳에서 중보자의 역할은 큰 힘을 발휘합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중보자로 쓰임 받는 큰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매일 성경: 원망과 교묘한 거역(시106:32~48).
2018.4.25. 수
새벽을 깨우는 말씀 

시편 106편은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 역사를 다루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3부 중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건은 므리바 사건(원망)이고 두 번째 사건은 가나안 입성 후 가나안 문화와 동화됨을 합리화시키다가 저지른 죄로(교묘한 거역) 인한 실패입니다.

시인은 1절에서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절) 찬양으로 시작했고, 오늘 마지막 절에서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48절)로 찬양하며 끝마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실패한 역사를 보고 있고, 우리도 살면서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의 길로 여전히 이 순간에도 눈동자처럼 살피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패의 역사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고 계시는지, 어떤 은혜로 함께 해 주고 계시는지 늘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통해 하나님과 늘 함께 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실패를 줄일 수 있음을 봤습니다. 기다리지 못해 초조해하는 것과 욕심은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우리의 기억을 붕괴시키는 독소임을 살폈습니다. 오늘 볼 실패의 사건은 므리바 사건과 가나안 입성 후 실패한 사건을 보겠습니다.

1. 므리바 사건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시106:32)

모세는 온유하기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런 모세를 분노케 만들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만들어서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들어가지 못하는 징계를 받게 만든 사건입니다. 한 사람으로 시작된 원망이 퍼지고 퍼져, 지도자를 무너뜨린 사건입니다. 원망을 시작한 당사자야 실컷 화풀이하며 원망을 해서 속 시원해졌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망의 파급력은 놀랍습니다. 40년간 그들을 위해 중재자 역할을 하며 온갖 고생을 다 했던 그들의 지도자를 실패의 길로 이끈 것입니다.

물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광야에 물이 없는 것은 상식입니다. 목이 너무 말라서 시작된 불평이지만 너무 심하게 나갔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므리바 사건입니다. 첫 번째 므리바 사건은 광야 생활 초기에 일어났습니다.(출17장) 그때도 물이 없자 ‘여기까지 끌고 와서 목마르게 하여 죽일 셈이냐? 애굽생활이 좋았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이 맞기는 하냐?’ 하면서 모세를 향해 난리 난리 하던 그들입니다.

우리도 뜨끔해야 합니다. 평탄하다가 일이 좀 어려워지면 하나님이 계신 것은 맞냐?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큰 능력을 애굽에서 나올 때 직접 경험했던 그들입니다. 은혜는 다 잊었습니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다 잊어버립니다. 물 없음을 원망하며 므리바사건을 경험했던 그들이,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자 물이 터져 나오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또 물이 없게 되자 4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같은 장소입니다. 40년간 광야에서 연단을 받았으나 그들이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물을 돈으로 바꾸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광야에서 절실한 것이 물이듯, 우리의 삶에서 돈의 중요성은 실로 막강합니다. 물은 그 당시의 생존이고, 돈은 지금의 생존입니다. 돈 없으면 살 수 없으니, 돈 없으면 원망합니다. ‘하나님 도대체 계시기는 하신 겁니까?’ 우리의 원망과 불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전 사건을 기억했다면, 그들은 모세에게 나아와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요청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 없음과 그로 인한 초조함이 이번에도 40년 전과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모세는 굉장한 상처를 받습니다. 그의 누이 미리암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그의 마음은 아팠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보인 태도가 40년 전과 다름이 없이 같자, 그 온유한 성품의 모세가 발끈하여 욱하고 터집니다.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33절) 아주 싫은 말, 엄한 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석에 명해서 물을 백성에게 주라고 하셨는데, 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도자를 화나게 만들어 실패의 길로 이끈 백성들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나 혼자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의 원망이 너의 원망으로, 또 그 사람의 옆 사람에게 자꾸자꾸 파급됩니다. 그리고 상처를 만들며 분노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실패로 이끌게 됩니다. 정말 마음 아픈 장면입니다. 원망 하나라도 쉽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을 극복하는 비법을 각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비법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믿음을 잃지 않고 유지하면서 원망을 극복해야 합니다. 시인의 찬양처럼(1절, 48절) 울적해 하거나 초조해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믿음에 대해 ‘믿음이란 여기저기를 주시하거나, 여러 가지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아니고, 한 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연합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주 귀한 정의입니다.

2. 교묘하게 거역하기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시106:43)

교묘하게 거역하는 무서운 죄악을 피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께만 매달릴 때 우리는 이 죄악을 피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입성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자신들의 죄악을 합리화시키다 실패합니다. 우리도 비슷한 모습으로 합리화, 정당화시키다 실패합니다. 이 세상과의 구별을 분명히 명령받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세상과 융화되어 섞이며 구분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구별 됨이 없습니다. 이는 교묘한 거역이며 죄악입니다

우리는 3일간 시편 106편을 함께 보면서 이스라엘 역사의 실패를 살폈습니다. 같은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실패의 원인과 극복하는 방법을 살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귀중하고 큰 교훈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 드립니다. (정리: 김화영)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