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29. 주일 설교: 예수 시험, 내 시험(막1:12~13). 마가복음 4. 양은익 목사

 


말씀: 마가복음 4. 예수 시험, 내 시험(막1:12~13)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막1:12~13)

지난주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세례까지 함께 봤습니다.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음성이 들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세례의 장면을 큰 기쁨과 감격으로 봤습니다. 오늘은 분위기가 급반전됩니다. 먹구름이 잔뜩 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매 순간 긴장해야만 하는 주제가 오늘 나옵니다. 바로 시험과 유혹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시험과 유혹을 어떻게 이기셨는지 보고 배울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늘 시험과 유혹이 있으므로 오늘 받는 말씀은 나 자신뿐 아니라, 내 사랑하는 이들 모두에게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말씀 들어가기 전에 시 한 편 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문정희 시인의 ‘흔들림을 위하여’의 일부입니다. ‘이쪽과 저쪽이 금방 적이 되는 이 중증 폭력의 시대 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닐 때가 많다. 늘 사이에서 서성인다. 모두가 좌측으로 또 모두가 우측으로 가는 동안 나는 나의 측으로 갈뿐이다’ 좌, 우는 정치적 성향으로 보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의 쏠림의 모습으로 생각해도 됩니다. 유행 따라 사람들은 쏠리며 삽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쏠리면서 살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참 필요한 다짐입니다.

12절 예수님은 세례 후 곧장 광야로 들어가십니다. 요단강 물가에서 거친 광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시험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시험이라는 단어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예수님께서 시험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이 주님의 모습을 오늘 배우고자 합니다.

13절에 나오는 ‘시험’이 핵심 키워드입니다. 성경은 원어가 그리스어입니다. 시험이 헬라어로 ‘페라조’(πειράζω)입니다. 복잡한 단어입니다. 문맥에 따라 다르게 번역됩니다. 세 가지로 번역되는데 시험(test), 시련(trial), 유혹(temptation) 입니다. 주님은 이 세 가지 뜻을 광야에서 모두 다 겪습니다. 공생애 시작하시기 전 사탄에 의해 유혹을 받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금식인 낮 금식인 아닌 40일간을 밤과 낮으로 하는 온전한 금식을 하셨습니다.

신성을 가진 주님이시지만 이 장면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인성으로) 40일을 밤낮으로 광야의 바람을 맞으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십니다. 금식의 마지막 단계에 얼마나 약해지고, 힘드셨겠습니까? 이 약해짐을 틈타서 사탄이 등장합니다. 세례받으실 때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자신을 다듬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공격이 들어 옵니다. 사탄의 공격입니다. 메시아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자세한 유혹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사탄은 세 가지 시험을 합니다. 첫째 시험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을 떡 덩이가 되게 하라(마4:3), 둘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마4:6). 뛰어내려서 다치지 않으면 엄청난 갈채를 받지 않겠는가? 즉 명예의 유혹입니다. 셋째 시험은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마4:9). 만약 사탄에게 경배하면 힘, 권세 다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이 사탄의 제안을 덥석 물면 생명, 명예, 힘, 권력 다 얻을 수 있다는 제안이 들어 온 것입니다. 눈 한번 질끈 감고 하라는 대로 하면 정말 대박이 터지는 것입니다. 대단한 제안입니다. 사탄이 던지는 제안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 바보가 어디 있습니까? 다들 이렇게 하고 삽니다. 아주 잠깐 하나님의 뜻은 뒤로 두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엄청난 일이 내 수중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세 번의 연속된 유혹에도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담담함으로 무너지지 않으십니다. 이 모습을 오늘 꼭 배우고 받으셔야 합니다. 특히 청년 집사님들은 꼭 이 말씀에 반응하셔야만 합니다. 이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있게 되면 정말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살면서 시련, 시험, 유혹이 없으면 정말 좋습니다. 유혹이 자꾸 들어오면 정말 힘듭니다. 유혹의 자리는 피할 수 있다면 무조건 피해야만 합니다. 반복된 유혹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시험과 시련과 유혹으로 넘쳐납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지지 말아야 하고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왜 시험을 이겨야 합니까? 이유를 알아야 유혹도 이길 수 있습니다. 왜 유혹을 거절해야 합니까? 왜 유혹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까?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경이 이야기합니다. 첫째,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시험을 이겨라. 둘째,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시험을 이겨라. 시험과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결과는 참담합니다. 나는 절대로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주위에는 수많은 너가 포진해 있습니다. 아내, 남편, 자녀, 부모님 모두가 내 주위에 포진한 삶입니다. 시험이 오면 함께 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지지 말아야 합니다. 시험에 무너지고 유혹에 넘어가면 결과는 참담합니다. 목사가 유혹에 무너지면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처참한 상황에 부닥치게 됩니다. 이렇게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시험과 유혹이 오면 꼭 옆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내 옆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절대 무너지면 안 됩니다.

사탄의 공격은 무궁무진합니다. 사람마다 약한 곳이 있습니다. 사탄은 미혹하는 자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자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귀신같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약한 곳을 알고 우리가 특히 약해진 틈을 타서 정확하게 치고 들어옵니다. 영에 약한 자에게는 미혹하는 영으로, 돈에 약한 자는 돈으로 유혹합니다. 대표적 성경 인물이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돈을 만지던 자입니다. 돈에 약해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버렸습니다. 또한, 성품과 기질과 환경으로 치고 들어 옵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교회의 일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존귀한 자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유혹과 시험에 무너지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 전체에 아픔을 주고 먹칠을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무너지고 넘어짐은 나 혼자인 것 같아도 그 파급 영향은 대단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영광이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먹칠을 당하면 어떡합니까?

지금 교회는 브랜드 파워가 땅에 떨어질 정도로 떨어져 약해져 있습니다. 완전 밑바닥입니다. 교회가 하는 얘기가 관심을 끌기 힘들고 전도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소수의 무리는 더더욱 이상한 모임으로 의심하며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교회의 브랜드 파워가 높았다면 사람들은 교회가 전하는 얘기를 듣고 믿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교회는 교회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질, 명예를 우선으로 하는 세상 가치와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고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자신들의 모습과 교회가 비슷한 노선을 취하기에 이제 사람들은 더는 교회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세 가지 제안을 물리쳤는데, 지금의 교회는 그 마귀의 제안을 받아들여 성도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다고. 물질의 축복, 명예, 출세, 권세를 쫓고 그것을 주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는 지적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으면 됐지. 눈 한번 찔끔 감으면 되지!’ 하십니까?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교회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려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인다워져야 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물질, 명예, 권세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지 않아야 교회의 브랜드 파워는 높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말씀드리는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주님의 이야기가 전적으로 수긍 되어야 변화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시험을 이기셨습니까? 그냥 교회에 다니다 보면 시험이 올 때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며 사탄의 시험을 받는 장소는 광야 한복판입니다. 들짐승(wild animal)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광야에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공생애 시작되기 전에, 저 거친 세상에 나가기 전에 마음을 잘 가다듬고 자신을 이기는 준비를 하셨습니다. 이 40일 중에 언제 사탄의 공격을 받으셨습니까? 40일 금식 끝 무렵입니다.(마4:2) 금식 끝 무렵이라 육신은 비록 약해졌지만, 영적으로는 상당히 강력해지셨습니다. 시험을 이길 영적인 힘을 가지게 되신 것입니다. 40일을 자신의 육체의 한계를 온전히 하나님께 내려놓고 하나님께 집중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생명을 담보로 한 처절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한 주간만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를 마쳐도 영광스러움이 넘쳐나지 않습니까? 주님은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주님은 일거에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시험을 이기려면 어떻게 얼마나 집중해야 합니까? 또 어떤 이들이 시험에 강합니까? 목사입니까? 장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듣고, 말씀에 내 인생을 걸고, 겸비한 이들, 믿음으로 겸손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이들이 시험에 강합니다. 두 구절의 말씀 기억해 두십시오.

‘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엡6:10-11, 새번역) 이 말씀을 받으십시오. 영적인 갑옷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묵상입니다. 시험에 여러 번 무너졌던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이야기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벧전5:8, 새번역) 사탄은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노립니다. 약한 이들을 노립니다. 기도 안 하는 이들, 말씀 안보는 이들을 노립니다. 사냥감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다지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넘어뜨리려는 존재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강하면 사탄은 나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약해지셔서 악마의 표적이 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 중 AA라는 유명한 단체가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치료하러 오면 외우게 하는 표어가 있습니다. ‘당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은 지금 여기에 와 있다.’ 중독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옵니다. 유혹도 그렇습니다. 사탄의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는 유혹도 시험도 오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나의 우상입니다. 너무 좋아서 하나님의 절대성조차도 무너뜨립니다. 이렇게 될 때 나 자신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 가지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입니다. 가장 먼저 물어야 하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입니다. 이 질문이 가장 basic 한 근본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잘못되면 나머지는 다 잘못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 없으면 세상이 주는 것을 덥석 덥석 물며 따라가게 됩니다. 지금 자신에게 물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원하는 것을 모르면 유혹과 시험에 무너집니다. 원하는 것이 잘못되어도 무너집니다. 내가 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수단과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하면 안 됩니다. 신앙이란 나를 구원하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구도의 과정입니다. 무엇을 얻으려는 수단으로써의 신앙은 반드시 위험에 봉착합니다.

자녀들에게 무엇을 해 주려고 하십니까? 이 험한 삶 속에서 끝까지 아름다운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욕망과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신앙의 유산을 남겨 주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공부 잘하고 출세하기만을 부추기면 자녀의 인생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40일간 고통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던 시험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막1:13)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4:11) 이 모습입니다. 유혹은 정말 어렵고 힘들지만 지지 않고 이기면 이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시중드는 복된 삶이 결론입니다. 이것은 시험을 이긴 자의 특권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2:18) 고 쓰고 있습니다. 주님의 시험을 시험당하는 우리를 돕기 위한 시험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많은 유혹에 노출된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면 넘어지지 않고 이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셨으니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구호 외치겠습니다. ‘예수 시험, 내 시험’, ‘예수 승리, 내 승리’. 주님과 함께하셔서 모든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축복하고 축원 드립니다. (정리:김화영)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