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집중 기도회 5: 죄와 죽음을 이기게 하는 십자가 (롬5:12, 19). 양은익 목사. 2018.3.23

 

 

말씀: 죄와 죽음을 이기게 하는 십자가(롬5:12, 19)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우리는 어제 십자가는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하기 위해 속죄 제물로 드려진 예수님의 희생 제사라는 말씀을 함께 나눴습니다. 끔찍하게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처형당하신 이유를 살펴봤었습니다. 피해자 코스프레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 따라 동물의 피로 제사 드리는 것을 죄와 타락에 빠진 인류의 죄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는 희생제물로 대속하기 위해 드려졌다는 것을 우리는 어제 봤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모든 인류에게 ‘나의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제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은혜에 감격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구나 사랑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느끼며 십자가를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얼마나 귀하고 고맙고 감사합니까? 이 십자가의 하나님 사랑을 많이 정말 풍성히 느끼시기 바랍니다. 로마 시대와 지금과는 시공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런데도 그 크신 십자가의 사랑을 많이 느끼셔야 합니다. 십자가 은혜와 사랑이 한없는 감동으로 다가오시기 바랍니다.

집중 기도회 첫날 장교가 한 말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이렇게 십자가에 무감각한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측정기가 있어서 가슴에 측정기를 대면 성도가 십자가 사랑을 얼마나 느끼고 감사하는지 측정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은혜, 심판의 자리에서 죽을 우리를 천국으로 구원하시고 영생을 약속하신 그 은혜, 우리는 눈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죄악 가득한 세상에서 죄 가운데 신음하느라 우리의 가슴은 굳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부드럽게 변화시키셔서 은혜를 은혜로 알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령께서 이 두 가지를 깨닫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죄와 죽음’ 입니다. 이 두 문제를 깊이 깨달아야 우리에게 십자가는 큰 축복과 은혜로 다가올 것입니다. 요즘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와 죽음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신 이유도 이 두 가지 때문입니다. 이 두 세력이 얼마나 대단하면 주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겠습니까? 죄와 죽음의 문제는 우리가 풀어낼 수 없는 문제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만이 해결책입니다. 이 영원한 문제를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완전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일을 하셨음에도 우리가 이 죄와 죽음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으면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죄의 심각성을 우리는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죄의 문제가 인류에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을까?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보기 시작할 때 나에게 십자가는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알면 구원을 갈망하게 됩니다.

죄는 어떻습니까! 죄를 만만하게 보면 큰일 납니다. 죄는 굉장히 질기고 뿌리 깊고 강력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절대로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죄는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또한 죽음은 어떻습니까? 죽음은 허무하며 슬픕니다. 이 죄와 죽음은 우리 인간 앞에 놓인 거대한 산입니다. 이 거대한 산이 우리를 가로막습니다. 사람은 죄로 인해 무너집니다. 또 죽음 때문에 무너집니다. 죄를 우습게 봤다가는 평생 이루어 놓은 것들 모두 일장춘몽으로 날리게 됩니다. 똑똑함, 직위, 거룩해 보이는 것이 모두 죄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고 역사에서 봐 왔습니다. 모두 죄 앞에서 무너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탄식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본문 12절은 죄의 출발을 얘기합니다. 죄는 언제, 어디서 시작됩니까? 죄 없던 에덴의 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시작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따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죽는다’ 하시면서 피조물로서 지켜야 할 한계를 분명히 정해주셨는데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따 먹게 됩니다. 아담이 조금만 잘했으면 후손들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볼 때마다 아쉬운 장면입니다.

이때부터 모든 게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죄는 하나님을 향한 거역인데, 이 거역으로 인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게 됐고, 에덴에서 누리던 모든 평화로운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 나와의 관계, 나와 너와의 관계, 나와 자연과의 관계 모두가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로 죄는 퍼지고 퍼져서, 악해지고 악해져서 죄 아닌 데가 없고, 죄의 지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죄는 바울의 말대로 왕 노릇(롬5:21) 하면서, 우리를 죄의 종(롬6:6)으로 부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죄에 완전히 잡혀 있습니다.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하고, 그게 죄의 무서움인데 벗어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죄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동하게 하는 어떤 영적인 세력입니다. 대단히 강합니다. 죄의 출발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데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모든 육신의 정욕들, 욕망, 탐심, 교만, 자랑, 무자비, 배신, 모함, 증오, 강간, 추행 같은 것들이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샘솟듯 솟아 나옵니다.

죄는 내 마음에서부터 가정과 사회와 모든 직장과 문화 속에 아주 강하고 사납게 들어가 모든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죄는 없지 않고 있고, 살아있는 실체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약1:15)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는 말씀,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죄 있는 곳에는 죽음밖에 없습니다. 몸의 죽음, 영의 죽음 다 있습니다. 미래가 없는 죽음은 얼마나 허무합니까? 모든 것을 두고 떠나는 죽음은 슬픔뿐입니다.

이 엄청난 죄와 죽음의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떠난 세상에는 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죄와 사망의 근원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답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9절 보십시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순종하지 않은 사람은 첫 사람 아담입니다. 순종한 한 사람은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순종하지 않은 아담으로 인해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지만, 하나님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제물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죄의 권세를 깨고 모든 이들에게 매여있던 죄의 짐을 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의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에 허무하게 당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사실에 여러분들, 감사하고, 기뻐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슬픈 죽음의 허무와 질기고도 강한 죄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주신 겁니다. 피 흘림을 통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만하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로 이루어주신 구원의 능력을 반드시 받아내서 죄에 지지 말고, 죄를 이기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영화에 보면 악한 영을 쫓고, 죄의 유혹에 올 때 십자가를 내미는 것 보셨을 겁니다. 이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사는 게 힘들어서 허무해질 때가 있습니다. 맨날 설거지, 맨날 빨래. 맨날 회사. 살다 보면 마음의 죄들이 요동을 쳐서 온갖 안 좋은 감정들이 튀어나올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내 죄를 사하기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십자가의 주님이 우리 가슴에 나타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람들은 모든 죄의 세력을 이겨내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 십자가가 필요한 때 아닙니까? 사람들이 죄로 인해 무너져 내립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삶이 무너지고.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서는 죄 용서로 만족하지 말고, 주님과 같이 십자가 지고 세상을 구원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부족하더라도 내가 처한 자리에서 질 수 있는 십자가라면 져서 십자가를 모르고 죄와 죽음 가운데 있는 이들을 구원의 십자가로 이끄는 소명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 바라보면서 오늘도 감사가 넘치는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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