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집중 기도회 4: 십자가, 화목을 위한 희생제사(히9:27~28). 양은익 목사. 2018.3.22

 

 

말씀: 십자가, 화목을 위한 희생제사(히9: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7-28)

십자가를 생각하며 계속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누구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고 귀하게 여길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예수님의 구원이라는 성경에서 말하는 기본 틀을 믿고 고백할 때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27절에 죽음, 심판 이란 단어가 두드러집니다. 성경은 죽음과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안 죽는 사람이 없으며 심판받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십자가가 귀한 것입니다.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다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돌아가심입니다. 인간의 죽음과 심판 사이에 주님의 십자가(구원의 십자가, 죄 사함의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시 오실 주님까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인들의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틀입니다.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앞날에는 죽음과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하심으로 죄 사함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창조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방치된 채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창조된 후 인간은 계속 죄를 짓고 타락합니다. 죄와 타락은 이 세상에 만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창조-타락-구원의 이 틀을 이해하고 믿을 때 우리 앞에 놓인 십자가는 그 귀함과 그 은혜와 그 뜻을 우리가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세 가지 상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타락하기 전의 에덴에서의 인간의 상태입니다. 하나님과 단절 없이 친밀하게 교제하는 인간입니다. 둘째는 타락 이후의 인간입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죄 가운데 신음하며 사는 인간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받은 인간입니다. 이렇게 구분되는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근원자와 떨어져 나오는 죄를 지으면서 인간은 이렇게 구분되었고 우리에게는 죽음이 있게 된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 진화과정에 생긴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죽음은 죄 때문 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폭력과 전쟁과 악과 음란과 상처와 눈물 가득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불행의 씨앗들이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인간에게 사는 것은 고통이 되었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삶이 우리 앞에 놓인 이유를 깨닫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삶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죄로 인한 삶의 고통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관계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을 일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서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에게 구원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자 율법을 주십니다. 그리고 죄를 범하면 심판을 받을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죄와 함께하실 수 없는 공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처벌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처벌 대신에 용서하심을 위해 동물의 피로 대신하셨습니다. 동물의 피를 받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이 말씀이 동물의 피를 받으신 이유입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에 피로 죄를 속한다는 원칙입니다. 죄지은 나의 죄 사함을 위해 같은 생명을 가진 무수한 동물의 피가 드려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는 관점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혁명의 모델로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인류를 위한 희생자며, 잘못된 것에 저항하는 혁명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처럼 용감하게 저항하자. 나가자 싸우자. 이런 모델입니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도 많이 써먹는 모델입니다. 두 번째 모델은 휴머니스트 모델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를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보는 겁니다. 사랑과 섬김을 다하다가 십자가에 달린 이타적인 모습을 본받아 우리도 사랑과 섬김으로 살자. 적십자의 십자가가 이 모델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델들은 우리가 말하는 십자가의 모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동물 제사 모델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죄를 대신한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내 죄를 속하기 위한 속죄의 피가 됐던 것이고, 찢긴 예수의 몸은 내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이 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입니다. 피는 피로 대속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을 하나님은 지키셨던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값진 희생의 피 값으로 값없이, 은혜로 의롭게 되었던 것입니다. 피 없는 용서가 없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온전히 받아 내시는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입니다. 십자가 외에는 다른 구원의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나를 위한 주님의 희생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동물 제사는 불완전한 제사입니다. 동물 제사는 한 번에, 한 사람의, 한가지 죄 밖에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근데 사람이 한 번만 죄짓는 것 아니잖아요. 수많은 사람이 죄지을 때마다 제사가 드려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동물이 죽어 갔겠습니까! 기록에 보면 가장 많은 제사를 드린 날에 18만 6000마리의 소가 도살됐다고 합니다. 강 같은 평화가 아니라 강 같은 피가 흘렀을 겁니다. 불완전한 할 수밖에 없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가 예수님의 희생 제사로 단번에 해결됩니다. 28절 보십시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다’ 단번에는 영어로는 ‘once for all’(NLT)입니다. 모두를 위한 단 한 번. 이 한번을 위해 구약의 그렇게 많은 제사가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은 어쩌다 죽은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사랑이었고, 용서를 위해 죽은 값진 희생 제물이 된 것입니다. 이제 동물 제사는 없어도 됩니다. 제사 대신 뭐하면 됩니까? 예배, 예배로 모여, 십자가에 돌아가시사 내 죄를 대신하신 어린양 예수를 찬양하고, 기억하고, 감사하며 감격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시지요! 눈에 보이는 피 뿌림과 동물의 제사가 없어도 예수님의 속죄 피가 강같이 우리 가슴에 감격적으로 흘러넘쳐야 됩니다. 이런 예배 드리면 내 삶의 모든 것들이 살아납니다.

동물 제사는 오감이 자극되는 충격적인 도살 현장입니다. 저는 시골 출신이 아니라 돼지 잡는 것을 딱 한 번 봤습니다. 끌려가는 데서부터 도살하는 데까지 따라가 봤습니다. 울음과 오물과 발악이 있습니다. 제사 현장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죄가 죽임을 당하는 현장답게 나를 대신한 동물의 울부짖음이 있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아픔이 있고, 죽음에서 나오는 피가 있고, 피가 뿜어내는 피비린내가 있습니다. 죄의 냄새입니다. 배가 갈라지고, 내장이 쏟아지며, 피는 모여서 뿌려집니다. 사체는 제물로서 태워지고, 냄새가 진동합니다. 나 대신 죽고 있는 겁니다. 그 죽음 때문에 내가 용서받고 사는 겁니다. 그 참혹한 장면을 보면서 뭘 느끼겠습니까?

십자가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위해 돌아가신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나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봐야 합니까? 짐승 제사처럼, 골고다의 십자가처럼 참혹함이 안 보인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면 그건 용서받은 자의 도리는 아닐 겁니다. 부족하더라도 예배 때 마다 심판과 멸망이 아닌 구원의 은혜를 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지금은 보좌에 앉으신 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다해 찬양하며, 감사하며,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값없는 용서의 은혜를 주셨는데 은혜를 모르고 살면 어떡하겠습니까? 사랑으로 잡아 주신 손 굳게 잡고, 사랑받았으니 사랑하면서 살고, 쉽게 미워하고, 분노하는 삶이 아니라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신 희생의 십자가입니다. 피 흘려 이루어주신 주님의 구원에 깊게 감사하는 오늘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굳어있는 우리의 마음을 많이 깨워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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