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십자가, the true Big story(행2:23~24)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2:23-24)
십자가는 진실하고 가장 큰 이야기입니다. 새벽을 통해 드리는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큼을 또한 그 중심성을 마음에 잘 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면서 보듯이 사람들은 크게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대부분 살아갑니다. 눈앞의 것만을 보면서 삽니다. 그래서 참 부끄러운 일들을 많이 하면서 삽니다. 손해를 조금만 봐도 싸울 때가 많구요, 며칠이 지나도 분이 안 풀릴때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론대로라면 그리스도인은 도량이 커야 합니다.
어느 한 노인 권사님의 이야기는 우리를 참 부끄럽게 만듭니다. 많이 연로하셔서 어디를 가든지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동해야 하는 권사님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게 되면 먹어야 하고 또 뭔가 필요한 것을 사야 합니다. 권사님은 식사해야 하는 식당을 고를 때 맛집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점 앞에 주차된 차가 거의 없는, 그 주변에서 장사가 제일 안 되는 집에 가서 꼭 식사하신다는 겁니다. 손님이 없다는 것은 맛이 없다는 것인데, ‘맛이 없으면 얼마나 없겠니?’ 하시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서도 당뇨로 본인은 먹을 수 없는데도 도넛 같은 간식을 잔뜩 사서 나눠주신다는 것입니다. 노망나신 것인가요? 힘들게 사는 이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생각하는 마음, 사는 방식이 다르고, 도량이 크고 깊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은 일 같지만, 권사님은 중요한 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크게, 도냥 넓게 살아야 합니다. 눈앞의 것만 보지 말고 좀 더 멀리 크게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큰 이야기 속에서 큰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눈앞의 이득과 손해에 매여 싸우며 사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큰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고 치유해 주시고 베풀어 주신 사랑과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고 또 부활하신 그 큰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 이야기 중 가장 큰 이야기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절절한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이 마음이 우리에게 깊이 들어가면 우리는 상당히 마음이 넓고 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이 개발되어 집니다. 십자가는 ‘시한부 인생으로 선고받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이야기’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고, 또 죽어 마땅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에 갔던 사람들이 수술받고 살아나면 그들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습니까? 십자가 구원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작게, 좁게 살지 않습니다. 크고 광대한 영원한 영생의 세계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로 작게 움츠리며 작아지며 살아야 하는 인생들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십자가는 성경 이야기 중 가장 큰 이야기입니다. 가장 중심되는 이야기며 사건입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과 이야기는 십자가 사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과 계획이 드러나고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로마 시대라는 한 역사의 한 시대 속에서 정치적, 종교적인 문제로 생긴 우발적 사건이 아닙니다. 우발적 사건이라면 성경이 그토록 십자가 사건에 집중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수 많은 죄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같은 십자가 사건인데 그들과 예수님 십자가 처형이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구약을 통해 예언되어 다듬고 다듬어진 사건이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위대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행2:23) 예수님의 죽음은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어난 사건입니다. 66권의 성경은 비유하자면 수많은 강의 지천들이 흘러 흘러 바다로 들어가듯, 성경의 모든 사건과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옆길로 이탈하시면 안 됩니다 신약의 배경이 되며 원인이 됩니다. 신약은 구약의 성취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신약이 없다면 우리는 결과를 알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이야기는 완성됩니다.
구약이 약속한 것은 메시아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약속은 창세기 3장, 인간의 타락 직후 벌써 메시아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신약을 통해 이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보내주신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은 복음서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르침과 치유와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하신 계획대로 대낮에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도록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어느 사람이나 보고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 십자가 사건이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길이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에는 약 600번 정도의 예언을 통해 오실 메시아를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시대마다 사건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세우셨고 이들은 이 십자가 사건을 예언 했고 이 예언은 신약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 이야기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전 우주의 이야기입니다. 생명의 이야기이며 사랑과 용서와 인내의 이야기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다 응축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이 이야기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스케일이 큰 이 이야기가 내 안에 들어와 가슴이 뛰기 시작하면 넓게 멀게 바라 볼수 있는 자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둥바둥 살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변화된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이 큰 이야기의 속으로 우리도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모든 교회들도 들어가야 합니다. 이 십자가의 큰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통치와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8)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세상의 지혜는 알지 못합니다. 그 시대의 통치자인 총독과 대제사장, 헤롯 왕은 이 지혜를 아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죽인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들을 귀 있는 자들만 듣습니다. 이 하나님의 지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제 새벽에 말씀드렸듯이 ‘그러가나 말거나’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은혜를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우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깊게 가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큰 지혜를 보는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나오는 수없이 많은 사건과 이야기를 통해 십자가 사건을 예언해 주셨지만 정작 유대인들은 율법에 치우쳐 하나님의 지혜를 놓칩니다.
십자가에 대한 구약의 예언과 사건들을 내일부터 볼 것입니다. 십자가는 ‘The big story’입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 계획을 보면서 큰 그림을 그려보십시오. 그 큰 그림과 이야기 속에 있는 나를 보십시오. 그림이 작으면 나도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어렵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하십니까? 하나님의 큰 이야기와 큰 그림 속의 나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절대로 혼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심을 믿으십시오. 십자가라는 최악에서 최선을 끌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들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큰 그림을 그리시고 크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나가게 되기를 축복하고 축원 드립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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