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9일 금요 기도회
1. 찬송가 86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나는 누구를 의지하며 삽니까? 주님은 의지할수록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여 주십니다. 나의 상처입은 심령을 불쌍히 여기시고 위로하여 주십니다. 의지한다함은 현재형입니다. 지금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지금 의지하겠습니다. 저의 연약함, 두려움, 낙심, 침체 다 아시오니 불쌍히 여기시고 위로하시며 다 맡아 주십시오. 가사를 되새기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금요 기도회 말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빌1:1-2)
오늘부터 금요 기도회 시간에 빌립보서 말씀을 조금씩 봐 나가면서 기도 제목으로 삼겠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입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가택 연금을 당하고 있을 때, 빌립보 교회의 교우들을 그리워하며 쓴 사랑의 편지이며, 위로의 편지입니다. 편지를 쓴 동기는 빌립보 교인들이 가택 연금을 당한 바울을 돕기위해 헌금을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 위함이 첫째이고, 둘째는 한때 그들을 말씀으로 이끌었던 사도로써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서문 인삿말은 편지를 보내는 사람(바울과 디모데), 받는 사람(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와 감독, 집사), 보내는 사람의 인사가 나옵니다. 예전에는 편지를 낭독하며 모두 같이 들었습니다. 신약 연구자들 중에는 바울 서신의 서문만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서문에는 편지를 쓰는 바울의 마음이 나와있습니다. 바울이 바울 자신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종이란 노예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유가 없이 매여 있는 것이 종입니다. 바울은 스스로를 종으로 평가했습니다. 한때 자신이 양육했던 교우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누구 한 사람만 읽는 편지가 아니고 전 교인이 다 읽을 편지인데도 체면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이것은 겸양이나 가식이 아닙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2:6-7)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종이다’ 라는 표현은 가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지극히 낮추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나옵니다. 바울에게 디모데는 믿음의 아들같은 사람입니다. 편지는 바울이 썼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과 동등하게 언급합니다. 앞으로 디모데를 잘 섬겨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비의 마음 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큰 기도제목을 얻습니다. 첫째는 노 사도가 보여주는 겸손과 배려입니다. 둘째는 성도를 바라보는 바울의 마음입니다.
(1) 겸손과 배려
겸손과 배려는 정말 소중한 단어입니다. 겸손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꼭 필요로 하는 단어입니다. 우리에게도 겸손과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겸손과 배려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겸손과 배려는 신앙과 성품이 극대화될 때 나올 수 있습니다.신앙의 연단을 통해 겸손이 나옵니다. 그 겸손의 마음으로 남을 보기 시작할 때 배려하는 마음이 나옵니다.
겸손과 배려가 있는 교회는 풍성해집니다.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집니다. 남의 눈의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볼 때 겸손이 나옵니다. 겸손과 배려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연합을 이루어 줍니다. 연합의 밑바탕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겸손과 배려가 여러분들 안에 무럭무럭 자라 나기를 기도드립니다. 겸손은 나의 부족함이 치유되어야 생겨납니다.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2) 성도를 보는 바울의 마음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 한명 한명을 성자로 보고 있습니다. 성도는 가장 영광스럽고 존귀한 호칭입니다. 복수의 개념입니다. 성도의 단수는 성자(거룩한 사람)입니다. 성자는 최고의 호칭이며 경칭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 한명 한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완벽해서 성자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이고 그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씨가 심겨져 있는 존귀한 자들 이기에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편지 보낼 당시의 빌립보 교회 성도수는 50여명의 작은 공동체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로 구해야 합니다. 주님 교우들을 성자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지금 부족해 보이는 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존귀한 자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중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를 겸손하게 하시고 끊임없이 배려하는 자로 세워 주십시오.
찬송 487 (어두움 후에)
3. 나라를 위한 기도
겉으로 드러난 것들과 속에서 진행되는 것들 사이에 많은 것들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당리 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들에게 온전히 나라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끊임없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동계 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 잘 끝나게 하시고, 올림픽 이후에도 이 나라와 이 땅을 지켜 주실 것을 기도하십시오.
4. 교회와 교우를 위한 기도
① 침체한 성도들이 있다면 영적인 부흥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② 교회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몸된 교회를 사랑하며, 청지기 정신으로 교회를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④ 전도 세미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 강좌를 통해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생기고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⑤ 주일 오후 소그룹 모임이 계속 될 것입니다. 참여하여 교제의 풍성함과 위로와 도전과 치유가 일어나는 모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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