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나눔 세미나 1강: 관계 안에 있는 우리 (김명숙 전도사, 201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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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눔 세미나 1강: ‘관계’ 안에 있는 우리

오늘은 첫 번째 날입니다.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 중 관계를 맺지 않고 사시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는 모두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부모와 형제와 친지와 또 이웃과. 또한, 생명 부지의 낯선 이들과 모두 얽히고설키며 관계 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 내 부모와만 관계를 맺고 살도록 가족들만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남을 허락하시는 모든 사람들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관계의 원리와 질서를 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관계라고 하면 나 자신과의 관계, 서로 간의 관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춥고 어려운 시절 때의 기억도 있고, 기쁘고 행복한 날 속의 즐거운 기억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속에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관계의 기억들이 있습니다. 좋은 관계는 계속 잘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깨어진 관계는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관계가 깨어지면 혼돈과 혼란이 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낼 수도 없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화평한 관계는 그 관계 속에 주님을 드러내게 해줍니다.

20180123a표하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오스카 톰슨 주니어의 관계 패턴 그림표입니다. 관계를 통해 흘러가는 복음을 보여줍니다. 그림 동심원의 중앙에는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동심원에는 ‘가족’, 그다음 동심원에는 ‘친지’, 그다음에는 ‘친구’, 다음 동심원에는 ‘이웃’, 다음 동심원에는 ‘지인’, 마지막 동심원에는 ‘X라는 사람'(지나가다 만나거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복음 전도는 생면 부지의 X라는 사람에게 하기가 가장 쉽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내게 전혀 부담이 없기 때문입니다.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책임감을 안 느껴도 됩니다. 나 자신의 성품을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내가 자신의 성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전도에 부담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전도의 파장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강력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나와 가까운 동심원에 있는 가족, 친지, 친구, 이웃입니다. 연못이나 바닷가에서 돌을 던질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강한 물결의 파동은 나와 가까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전도의 이런 표본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안드레를 만나시고 제자 삼으셨습니다. 안드레는 형제 시몬 베드로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빌립에게 전했습니다. 빌립은 복음을 친구 나다나엘에게 전했습니다.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은 복음을 자신이 사는 동네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고넬뇨 백부장은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그의 식솔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 문이 열렸을 때 감옥 문을 지키던 간수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나로부터, 가까운 데서 부 터 복음이 전파되는 모형을 보여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증인이 되리라’는 것은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즉 복음 전파는 나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과 유대는 내가 사는 지역(내 주변)을 의미합니다. 땅끝은 전도 불모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란 이스라엘이 미워하고 배척했던 사람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내게 나쁜 일을 행한 사람들, 내가 원수처럼 여기고 잘되는 것이 싫은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도 전도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를 위해서는 관계 맺기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전도 불모지에 파송되어 섬기는 선교사들도 첫 번째로 하는 일이 전도가 아니라 관계 맺기입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면 우리는 그들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만 합니다. 주님은 이점을 특히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네 이웃과 풀어야 할 것이 있으면 먼저 풀고 난 후 예배하라 하셨습니다.

일본 선교를 하는 선교사가 간증하기를 처음에는 일본을 혐오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면서 이런 자신의 마음과는 너무나 다른 하나님의 마음이 자신에게 물밀 듯이 들어와서 자신이 은혜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워하던 마음을 없애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 자신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각자가 만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굳게 있을 때 우리는 주변에 복음(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안에 가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각자에게 묻고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관계에 대해 돌아봄입니다. 나 자신 스스로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 새롭게 화평을 이뤄가야 합니다.

1.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여러분은 성경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사건을 읽을 때 그것이 실재하는 진실이라고 믿습니까? 아니면 동화 같은 허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고 부활시키신 사실을 믿으십니까? 내가 아프면 주님도 아프고, 내가 기쁘면 주님도 기쁘다는 사실을 늘 실감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계십니까? 내 안에 하나님과 깊은 사귐의 시간을 갖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내 영혼 깊이 믿고 계십니까?

‘네’라는 답을 못하면 전도는 아직은 불가능합니다. 자신 있게 ‘네’하는 확신이 없다면 전도는 세일즈가 되어 버립니다. 지금 확신이 없는 교우들을 위해 우리는 서로 모두 중보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만지심이 있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2. 나 자신과의 관계
나의 나 됨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자신을 무엇으로 보고 있으며 평가하고 계십니까?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나로 보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세상에 오직 한 존재인 존귀한 ‘나’로 보고 계십니까? 나의 본질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 있는 ‘나’입니다.

우리는 많은 오해 속에서 살아갑니다. 키가 큰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고, 비교된 작은 나를 보며 위축됩니다. 비교된 나의 모습은 아주 많은 부분에서 강력한 위력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위축되고 열등감을 느끼고,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고, 상대방을 투기하는 마음에 휩싸이고, 비난하고자 하고, 반대로 우쭐해지고, 교만해지고 스스로 판단하는 자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비교 속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자로 지으심을 받은 ‘나’ 자신의 본질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잘못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나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인 나,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사랑하신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지금 힘드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그 깊은 묵상을 통해 내 안에 쌓인 미워하는 마음, 복수하고자 했던 마음, 비난하던 마음, 분노하던 마음 모두 눈 녹듯 녹아내릴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볼 때 항상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나, 십자가의 은혜로 그 귀한 사랑과 주님의 충만하심 속에 치유되고 회복되는 나를 보아야 합니다.

3. 다른 사람과 나와의 관계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계 맺도록 하신 사람들입니다. 관계에서 사실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 가까이 있는 가족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가장 큰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가까이에 있기에 가장 큰 영향을 서로에게 주며 가장 큰 상처를 서로에게 줄 수 있습니다. 쓴 뿌리는 가족에 있다고 했습니다.

아프리카에 함께 있었던 자매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 자매는 매사가 긍정적이고 밝았습니다. 그녀의 가정사가 그토록 험난했으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미혼모의 딸로 성장했고,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그녀를 향해 늘 ‘너 때문에 내가 고생한다’며 딸을 학대했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싫어 일부러 즐겁고 기쁜 것처럼 가면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장하여 그녀는 결혼하고 남편과 선교지로 오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했습니다. 성장기 동안 쌓이고 쌓인 마음의 앙금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일에 갑자기 화를 심하게 내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과 싸웠습니다. 신혼 초 아이를 입양했었는데 그 아이도 파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남편과도 별거 후 이혼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자매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긍정의 가면 속에 억제되어 있던 마음의 짐과 분노들이 결혼 후 터진 것을 알게 됩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들은 다 잊혀지고 치유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소원했던 엄마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울며 서로를 진정으로 용서하며 보듬어 주게 됩니다. 파양했던 아기도 찾아가서 다른 가정으로 입양을 연결시키고, 남편과도 다시 화해하고 재결합합니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들 부부로 인해 주변 가족과 친지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복음은 이렇게 좋은 관계 속에서 위력을 발휘하며 전파되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복음이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으로 강력한 힘으로 전파되어 나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진 관계가 있으면 그 관계가 회복되기를 우선으로 원하십니다. 깨진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면 하나님과 제대로 교제하며 친밀한 관계를 갖고 그 하나님을 전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관계가 회복되면 나로 인해 화평이 오며 복음은 상대방에게 전달 됩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전도를 방해하는 요인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약함만을 보지 마십시오. 나는 약하나, 하나님 손에 붙잡힐 때 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나를 통해 내 주변으로 흘러갑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주위 분들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살면서 만나고 관계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수많은 관계 속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널리 널리 전파 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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