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 주일 설교: 거룩의 길로 나아가라(레 19:1~2)

 

말씀: 거룩의 길로 나아가라(레19: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1-2)

벌써 새해 세 번째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은혜 가득한 예배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해 새로이 시작하는 새길 잘 걷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새 책 한 권 소개해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99세 권사님께서 2018년 출간하신 작은 책(황숙희, 남는 건 사랑뿐일세, 2018)입니다. 노년의 나이에 쓰셨음에도 불구하고 글 속에는 격려와 위로와 당부가 잠언처럼 녹아있는 훈훈하며 정갈한 글입니다. 여러분들도 믿음의 길 가면서 이런 아름다운 정갈함을 잘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권사님의 글은 상당히 젊습니다. 권사님은 우리에게 퀴즈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8개의 질문입니다.

제일 좋은 시간은 언제입니까? 지금. 제일 좋은 선물은 무엇입니까? 미소. 제일 필요 없는 재산은 무엇입니까? 자존심. 제일 불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불평. 제일 행복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제일 큰 실수는 무엇입니까? 할 수 없다는 생각. 제일 나쁜 마음의 병은 무엇입니까? 질투. 제일 쉽게 병을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걱정.

이 질문과 주신 답에서 보듯이 상당한 내공이 있는 분입니다. 있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꿰뚫고 계십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을 살피셔서 올해 한 해 있어야 할 것과 없애야 할 것 가리시고 버릴 것은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모습으로 산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힘든 삶이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잔잔한 미소로 불평하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믿음과 은혜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이웃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아름답게 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거룩’에 대한 말씀입니다. 겉모습이 근엄한 거룩을 말함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이 거룩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사는 모습을 말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새길을 만들고 그 길을 중단없이 걸어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새길에는 꼭 거룩의 길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로써 세상 사람과는 구별되는 빛나는 길(거룩의 길)을 만들고 걸어가야 합니다.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며 세상의 다른 신들과는 구별되며, ‘내가 거룩하니 나를 믿는 너희도 거룩하라’(2절)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입니다.

거룩해야 함은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거룩함을 갖고 세상의 악과 아픔과 슬픔을 없애며 지워나가는 우리의 영적인 무기입니다. 성도인 내가 거룩함으로 살아가면 거룩하지 못한 세상의 것들은 지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이 거룩함을 위한 영적 싸움을 해 나가야 합니다.

‘Live'(살다)라는 단어는 거꾸로 쓰면 evil(악)입니다. ‘Lived'(살았다.과거)는 거꾸로 쓰면 devil(사탄, 악마)입니다. 이것은 단어를 놓고 말장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섬뜩할 만큼 신비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의미하는 대로 악과 죄, 악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내 삶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평범한 우리의 삶은 우리가 아차 하는 순간 악마가 주관하는 삶으로 빠져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아차 하는 순간 무너집니다. 불평으로 무너지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무너지고,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무너지고, 염려로 무너집니다. 이 모든 것은 거룩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거룩하지 못한 것들은 곳곳에 포진하여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삶은 영적으로 죽거나 잠들어 있는 삶입니다. 깨어 있어야 하며 깨달아야 합니다.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이 고개를 들 때 내 안에 거룩함은 사라집니다. 거룩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영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3절부터 무엇이 거룩한 것인지 나열되어 있습니다. 모두 우리가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첫 번째 주시는 말씀이 부모 공경입니다. 그다음 안식일을 지키라 하십니다. 안식일을 지킴이 너희를 세상과 구별시키며 거룩함이라 하십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우상에는 실로 많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화목 제물을 기쁘게 드리라 하십니다. 밭의 소산을 거둘 때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일부를 남기라 하십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하십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라 하십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무시하지 말라 하십니다. 저울을 속이지 말라 하십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지켜나가고 구별됨이 거룩이라고 하십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다들 살아가는 모습으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나쁨과 불의와 악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백성다운 구별됨으로 살며 세상의 거룩지 못한 것을 깨버리며 사는 것이 거룩입니다. 새겨들으십시오. 그리고 애쓰시며 노력하여 우리의 거룩함의 수준을 높이셔야 합니다. 거룩하면 누가 좋습니까? 당사자인 우리 자신입니다. 신자인 내가 가장 편안해집니다. 규율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심으로 나를 자유롭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므로 나의 삶은 더욱 빛나며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거룩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거룩의 길은 각자 여건에 맞게 정성과 열성을 다해 찾아야 하며 이뤄 나가야 합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기독교 역사를 통해 거룩을 이루기 위해 가장 열성을 다한 수도원의 정신을 살펴보고 본받고자 합니다.

수도사들은 거룩을 이루고자 하는 열심히 지대했으며 그들의 수도원 정신에는 그 핵심이 살아 있습니다. 일상의 삶을 포기하고 수도원 생활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수도원 제도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원 정신의 핵심은 우리가 본보기로 삼고 따를 만큼 큰 가치가 있습니다. 그 핵심 정신 중 오늘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매사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라. 두 번째, 무슨 일을 하든 규칙적으로 살라입니다.

1. 매사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라
수도사들은 모든 것에서 주님을 생각하기 위해 무궁한 애씀을 합니다. 찬송가 484장 가사처럼 낮이나 밤이나 주님 생각으로 살고자 합니다. 24 시간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애쓰는 것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은 중심입니다. 삶의 기준이 하나님입니다. 내 뜻은 아주 약화합니다. 하나님이 삶의 중심에 계시며 내 삶의 24시간은 주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말씀 보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육체노동을 합니다. 중심이 분명하니 선과 악의 구별은 분명해집니다.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구별이 분명해집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준이 없고 흔들리고, 분명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수도원 삶은 분명한 기준이 있기에 모든 판단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는 안목 있는 판단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것의 중심이 하나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수도사들의 이 모습을 배워야 흔들림 없이 거룩을 향한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게 될 때 구별된 자로서의 성도의 자부심(자존감)은 높아집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수도사들이 했던 것이 규칙과 규율을 만든 것입니다.

2. 규칙적으로 살라
이 규칙과 규율은 자신을 억압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24시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기 위함입니다. 자율에 맡긴다고 하는 것은 때로는 상당히 위험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율적으로 신앙 생활하시면서 24시간 하나님을 늘 삶의 중심에 모시며 하나님과 함께 살고 계십니까? 제가 설교하고 당부만 하고 끝낸다면 작심삼일로 끝나실 분들이 많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수도원의 규율과 규칙입니다.

이 원칙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시간’에 대한 규칙입니다. 자고 싶을 때자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면 우리는 게을러 집니다. 게을러지면 영성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수도원 규칙은 시간 엄수를 철저히 지키도록 합니다. 가장 유명한 규칙이 베네딕투스 규칙입니다. 그리고 그 규칙 중 유명한 것이 성무일도 규칙입니다. 성무일도는 정해진 시간에 예배, 찬양,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에 8번을 합니다. 첫 번째 성무일도는 새벽 2시에 시작합니다. 8번을 하게 되니까 3시간마다 하게 됩니다.

모든 시작은 종소리를 듣고 시작합니다. 종소리가 울리면 하던 모든 것을 중단하고 묵상과 찬미와 기도를 드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묵상하며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 일 초의 시간의 흐트러짐도 허락지 않는 것은 시간에 대한 금욕입니다. 시간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규칙은 리듬입니다. 리듬을 타고 사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셔 영적인 리듬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리듬을 사용하셨습니다. 창조는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정확한 리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일곱째 날 안식하실 때까지 하나님은 동일하게 사람을 리듬화시켰습니다. 인류의 역사상 서구 공산화 세력들은 이 7일을 깨버리려는 큰 노력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 7일의 리듬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리듬입니다. 우리를 살려내고 쉼을 주고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규칙이며 리듬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안식하며 예배하며 회복하여 다시 소생하게 되는 활기찬 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안식일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개신교는 너무 산만해지고 개인화되고 규칙들이 사라졌습니다. 개인이 중심이 되다 보니 규칙화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교회가 만든 규칙과 규율에 자신을 맞춰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성을 살려내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 교회의 규칙에 순종하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새벽 기도회, 금요기도회, 각종 성도의 모임 같은. 말씀의 리듬, 기도의 리듬, 예배의 리듬, 묵상 등을 얼마나 깊이 해내고 계십니까? 이 리듬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의 영성은 죽습니다. 규칙 속에서 리듬을 탈 때 우리의 영성은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금요 기도회 때 누가복음 6장 12-19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하루 생활의 리듬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다음에 사람들을 만나시고 그다음 일들을 하신 것이 주님의 리듬입니다. 순서가 기도, 사람, 일입니다. 반면에 우리들의 리듬은 대부분 일이 우선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과도하게 일 속에 파묻혀 삽니다. 하나님은 이따금 생각합니다. 기도는 인맥을 통해 일이 잘 해결되지 않고 곤란에 처하게 될 때 마지막 수단입니다. 우리는 이런 패턴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패턴의 삶을 사는 한 우리는 영성이 깊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려움이 닥쳐서 드리는 기도는 모든 일에 앞서 드리는 기도와 본질에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 드리는 기도는 문제 해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만약 응답받지 못하면 넘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매사에 우선되는 기도는 설령 어려움이 닥쳐도 충만함 가운데 넉넉히 해결하고 거뜬히 일어나게 해줍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의 리듬을 꼭 배우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우선 되어야 거룩함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새해 여러분 모두 자신만의 영적인 리듬을 꼭 만드시고 이 거룩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새벽 예배, 금요 기도회 모든 기도 모임에 나오셔야 합니다. 그러나 각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만 각자가 정한 규칙과 규율에 따라 리듬을 갖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로 주님께 깊이 나아가는 깊은 영성의 삶을 살아내시기 바랍니다.

거룩의 길은 필수적인 신자의 길입니다. 새해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 가운데 거룩의 길을 걷고 더더욱 성장해 나가는 깊은 영성의 삶 되기를 축복하고 축원합니다. (정리: 김화영)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