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5. 성탄절 설교: 잉태(마1:18~25). 양은익 목사.


말씀: 잉태(마1:18~25)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1:18-25)

성탄의 은혜와 영광이 이 땅과 교회에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이 기쁜 소식이 힘든 영혼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제천 화재사건으로 목사님 두분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성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정말 위로 받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 성탄 인사 나누면서 위로와 사랑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을 잉태하는 사람’입니다. 성탄절에 관한 시는 꽤 많습니다. 그 많은 시 중 최고의 시가 있습니다. 젊은 시인 정끝별의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입니다.

고요한 밤의 오색 트리에 매달린 탄일종들이 일제히 울리고 또 울렸다 한들, 거룩한 밤에 술 취해 주무시는 아버지 옆에서 새우깡을 먹으며 봤던 벤허를 또 봤었다 한들, 어둠에 묻힌 밤에 루돌프 사슴을 불러대는 두 딸을 이끌고 홍대앞 카페에 이렇게 이르렀다 한들,….

성탄을 풍자하는 시입니다. 그렇게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것 없이 매번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다’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내가 뭐를 해야 하나?’ 하는 사람의 심리를 꼬집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성탄절에 무엇을 하십니까?  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의 중요한 고민일 수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잉태’라는 단어에 마음이 확 끌렸습니다.

성탄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바로 ‘잉태’입니다. 성탄절에는 우리 안에, 내 안에 무엇인가가 생겨나야 합니다. 없던 것, 부족했던 것이 새롭게 만들어져야(잉태)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2세기 신학자인 오르게네스는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어도 우리 마음 안에 태어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합니다.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신학자 안젤루스 실레시우스 (1624~1677)는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 수천 번 태어나도 그대 안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영원히 그대는 길을 잃고 말 것이다’라고 합니다. 베들레헴의 성탄을 바라보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잉태(창조)하고 자라게 하고 회복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잉태하려면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이 깨끗해져야 합니다. 일 년을 살면서 우리의 마음에는 많은 때가 꼈습니다. 이런 걱정, 저런 걱정이 쌓였습니다. 깨끗하지 않은 일들이 수없이 쌓여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 낮고 낮은 곳으로 오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정화해 주님의 마음을 잉태해 내는 것이 성탄의 과제 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사랑으로 배부른 사람들이 넘쳐나는 성탄이 돼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리아도 많이 놀랐겠지만, 요셉의 놀람은 놀람을 넘어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약혼녀의 임신 소식을 접한 요셉은 이 일이 알려지면 약혼녀 마리아가 당할 봉변을 염려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처리하고자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일이 닥칠 때 ‘기분대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기분이 나쁘면 나쁜 대로 처리해 버립니다. 그러나 요셉은 ‘기분대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19절) 약혼자를 배려하여 조용히 처리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하고자 결정한 후 꿈에 주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20-21절) 꿈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사건의 경위를 알려줍니다. 요셉은 천사의 말을 믿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배 속의 아이를 지우지 않고 다 받아들이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요셉의 이런 결정에는 강력한 주의 영의 끌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하였고, 약혼자 요셉은 성령으로 이 사건을 믿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자신의 감정과 의심과 판단을 다 이겨냅니다. 요셉이 의심이 많았다면 의처증에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의심하는 병도 상당히 무섭습니다. 여러분들도 요셉처럼 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성령의 이끌어 주심을 소홀히 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굉장한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마리아의 잉태에 관한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눅1:30-32)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인해 잉태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남자를 전혀 모르던 마리아에게 임신 소식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리아는 모든 것을 믿고 모두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눅1:38, 새번역) 이것은 그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놀라운 고백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처자가 임신하여 배가 불러 나타나면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읽다가 은혜받고 그 구절이 너무나 좋을 때가 있습니다. ‘옳다’, ‘지당하다’ 반응하지만 내가 받아들여 그대로 하기 힘들고 부담이 되면 말씀의 분부를 거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큰 고난과 어려움이 닥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요셉도 마리아도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순종을 할 수 있는 자들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모로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잉태의 삶, 창조의 삶을 살려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말씀에 집중하며 작은 것이라도 따르고자 하는 순종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무엇인가를 잉태 (창조)하시고자 할 때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을 받으셨으면 그대로 넘기시면 안 됩니다. 생명 잉태의 시작은 받은 말씀에 순종하여 따를 때 일어납니다. 전 우주적인 이 사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잉태된 이 사건의 시작은 요셉과 마리아의 선포된 말씀에 대해 따름과 순종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겸손한 인간의 순복이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큰 영광을 가져온 것입니다. ‘따름과 순종’은 위대한 생명의 은혜의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살면서 늘 무엇인가를 만들고 창조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의 구속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겸비한 따름과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기에 말씀이 가장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게 되면, 내 안에 아주 작은 씨앗이 심어집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씨앗은 자라며 내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지금은 모릅니다. 그러나 늘 작은 것에도 순종하고자 하는 겸비한 순종의 자세를 갖고 말씀을 대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기적을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와 같은 ‘자발적 순종자’를 원하시며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한 그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 가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사랑, 섬김, 기적, 치유를 잉태할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섬세하게 반응하며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잉태하는 이 시대의 마리아와 요셉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순종’은 신앙의 핵심 가치입니다. 이 두 가지가 -말씀과 순종-없으면 신앙은 결론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안개 속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뭔가 신앙생활에서 확실한 것을 붙잡고 이루고 싶으십니까? 죽은 내가 살아나고 생명을 잉태하는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십니까? 내게 주시는 말씀을 겸비한 자세로 집중하여 받아 내시고 반드시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실천(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변화되고 창조되며 성숙해져 가게 됩니다. 이 변화는 누구나 그리스도인이면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깊이 받으시고 순종하십시오.

잉태와 더불어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잉태 사건을 일으킨 주체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고'(18절),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1:20) 생명은 생명에서 나옵니다. ‘없음’에서 ‘있음’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태초의 혼돈과 흑암과 무에서 생명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 창조의 영이십니다(창1:2). 이 땅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사건도 성령께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 탄생도 성령께서 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창조하시는 성령을 ‘창조주 성령’이라고 고백합니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104:30)

무언가 창조하고 싶고 나의 죽어가는 영이 살아나기를 소망하시면 창조의 성령을 초청하시고 의존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길입니다. 성령은 창조의 영이기에 죽었던 영도 주님의 살아계신 영이 불어 넣어지면 신비롭게 다시 살아납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창조의 사건을 보면서 ‘에게’하고 반응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의 창조 사역은 지금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폐쇄되지 않고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무한한 영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동원하십시오. 이 성령을 통한 창조 사역은 우리의 제한된 이성의 사고의 틀에서는 도무지 접근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지식의 한계를 넘어선 신비의 영역이라고 포기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되고 누리는 삶을 꼭 살게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창조와 회복의 사건은 성령의 일입니다.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사랑을 품어내려면 주님을 십자가 죽음에서 살려내신 영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이것을 믿는 이, 이것을 소망하는 이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죽어버린 관계, 죽어버린 믿음을 다 회복시키시고 살려내기 원하십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여 죽은 예수를 살리신 이의 영이 여러분 모두에게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영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잉태하는 귀한 성탄 되시기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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