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10. 주일 설교: 가까운 사람 사랑하기(빌1:3~8). 양은익 목사

 

말씀: 가까운 사람 사랑하기(빌1:3~8)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1:3-8)

오늘은 대림 절기를 보내는 두 번째 주일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여러분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함이 넘치게 되기를 계속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대림절 촛불 4개를 준비했습니다. 대림절 촛불은 4개입니다. 첫 주 점화하는 촛불은 진한 보라색 촛대입니다. 첫 주의 촛불은 ‘희망’을 상징합니다. 오늘은 두 번째 주입니다. 오늘 점화한 촛대는 연보라색입니다. 이 촛대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다음 주는 분홍 촛대(기쁨을 상징) 마지막 주는 흰 촛대(예수님을 상징하며, 사랑을 상징합니다)를 켤 것입니다. 오늘 켜져 있는 두 촛불-희망과 평화의 촛불-을 여러분 마음에 듬뿍 담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에게 희망과 평화를 밝히시고, 또 주변에 희망과 평화가 필요한 곳에 이 촛불을 밝히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대림절 선포하는 말씀 중 쉬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가까운 사람 사랑하기’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힘들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잘 하고 계십니까? 오늘 이 시간 왜 사랑해야만 하는지? 이것이 성탄 정신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설교는 말씀의 적용입니다. ‘가까운 사람 사랑하기’ 이 모습은 대림 절기에 너무나 중요한 모습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죄인 된 우리를 가까이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된 우리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의 정신을 갖고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은 의미 있는 것입니다.

‘가깝다’라는 의미는 삶에서 아주 의미가 큽니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신앙적 반성과 확인이 필요합니다. 대림의 계절이며 연말입니다. 그래서 이 오늘 함께 나눌 주제는 중요합니다. ‘가까운 사람’의 의미는 가까이에서 늘 만나고 교제하는 사람, 늘 자주 보는 사람입니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녀, 내 부모님, 내 형제자매, 이웃집 사람들, 교우들 등등일 것입니다. 이렇게 가깝게 있는 사람들과는 웬만하면 친하게 지내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과의 사랑과 화목과 즐거움이 삶을 풍성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겪는 희로애락의 대부분, 우리가 받는 상처 대부분은 나와 상관없었던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까운 이들을 통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자도 3년을 동고동락한 가룟 유다였고, 예수님의 제일 가까운 제자였던 베드로도 예수님을 허무하게 배반했습니다. 실제로 배신과 삶의 상처와 고통은 이 가까운 이들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삶을 힘들게 하는 일의 원인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위 분들로 인한 것일 것입니다. 이처럼 가까운 이들은 기쁨을 주고, 사랑을 주지만 또한 큰 상처와 깊은 아픔도 줍니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복음의 정신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탄의 정신은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품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 하면 성탄 카드, 성탄 선물, 촛불 수없이 주고받아도 소용없습니다. 가까운 이들이 싫어서 자꾸 갈등이 일어납니까? 복음의 정신, 성탄의 정신으로 돌아와 그들을 사랑하고 좋아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오늘 살펴보겠습니다.

1. 생각의 틀 바꾸기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내 생각의 틀을 바꾸는 일입니다. 내 생각의 틀은 내 판단의 틀입니다. 내 생각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내 생각이 잘못되면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1:3)이 편지를 쓰는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감옥에 있는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을 생각할 때마다 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빌립보 교우들에 대해 좋은 생각을 해서 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상황은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상황에 대해 비관하거나 나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께서 이끄시는 길에 대한 좋은 생각으로 바르게 해석하기에 바울은 어려움에 대해 굴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와 기쁨이 넘쳐납니다.

‘생각이 열쇠다’라고 합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사랑할 수도 있고 끝끝내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난관은 난관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생각의 방향에 따라 환경 극복의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며 기쁘고 평안하게 살려면 그들을 바라보는 내 생각이 긍정적으로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내 안에 그들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면 꼴 보기 싫어집니다.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 속에서 뭔가 아름다운 것을 이루어 나가려면 좋게 여기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생각이 좋은 감사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면 좋은 생각을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목사들에게도 가장 힘든 것은 인간관계입니다. 뭔가 관계에서 문제가 생겨 힘들 때면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생각으로 문제를 극복할 가장 좋은 최고의 방법은 내 안에 복음의 눈, 은혜의 눈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복음 안에서 큰 은혜 속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삼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며,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큰 사랑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아는 이들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사랑과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매사를 복음의 눈으로 보면 상대방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 주고 품어 주려는 긍휼의 마음이 생겨 남을 체험하게 됩니다. 속으로 ‘나도 난 게 없다!’ ‘나도 잘한 게 없다!’ 하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이 복음의 마음이 나를 가까운 사람과 화해시키고, 주님께서 주신 이 귀한 관계를 유지하게 해 줍니다. 그 높고 높은 곳에 계셔야 할 귀하신 주님이 이 낮은 곳으로 우리를 위해 임마누엘 주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귀한 깨달음을 유지하는 영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 중에 누구는 천사이고 누구는 악마입니까? 해석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조건을 보지 않으시고 오셔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용서하셨고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정신으로 이웃을 바라봐 줘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천사와 악마로 이분법으로 보려고 하지만, 천사와 악마는 실제로는 내 안에 있습니다. 이웃을 볼 때는 복음의 넉넉한 눈으로 봐야 합니다. 그냥 ‘쉽지 않다’ 하지 마시고, 생각, 판단을 복음의 정신으로 여러분들의 영성을 삶에서 유지해 나가십시오. 아름다운 일들이 여러분으로 인해 일어날 것입니다.

2. 현실이 주는 장벽(어려움) 이겨내기
현실적 장애물에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가까운 이들이 왜 원수가 되는 겁니까? 대부분 삶 속에서 생기는 힘든 일들 때문입니다. 이것을 서로 견뎌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힘든 일 앞에 장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힘든 상황 앞에서 사랑, 관용, 포용, 용서들의 아름다운 가치들이 다 사라지게 됩니다. 정말 아쉽고 또한 이렇게 변해가는 우리 모습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것 하나 못 넘어가나? 좌절하게 합니다. 힘들면 갈라서야 합니까?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현실의 삶의 무게를 감당 못 하고 현실의 장벽 앞에서 무너집니다. 우리는 정말 잘 대처해야 합니다.

이 고난 앞에서 한 번도 무너짐이 없었던 바울은 실로 많은 도전을 줍니다. 바울은 전도 과정에서 실로 엄청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절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바울은 감옥에 있지만,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너희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다고 합니다. 힘든 상황이 어떤 것이든 바울은 무너지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은 끝까지 사랑하며 나아갑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장벽에 부딪히면 일단 사랑부터 끝내버립니다. 그리고 ‘바울이니까 그렇게 하지’하며 합리화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가야 하며,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3절),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고(4절), 너희가 내 마음에 있으며(7절),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사모한다(8절)’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저 사람이 힘들게 해도 감사하고, 기쁨으로 간구하고, 늘 마음에 품고, 펄펄 뛰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못하면 우리는 같이 몰락하고 죽게 됩니다. 우리가 바울의 모습으로 행해야 우리의 삶이 살아납니다. 이렇게 하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현실의 어려운 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옆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기도의 자리로 나오십시오. 찬송가 299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풍파도 그치게 하고 어두운 밤도 환하게 한다’고 합니다. 힘든 일 그 자체도 힘든데, 가까운 사람들 미워하며 원망하며 세월을 허송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습니다. 인생을 그렇게 허송하며 소모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가까운 이들 품어 줄 은혜를 구하십시오.

3. 용납하고 인내하기
용납과 인내는 하나님의 분부이며 우리의 소명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이들에게 기대하는 기대치가 다 있습니다. ‘이 정도는 나한테 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 기대가 무너지면 실망합니다. 실제로 옆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들 가슴 앞에는 ‘공사 중’이라는 푯말이 달려 있습니다. 다 공사 중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존귀한 자들이지만 여전히 성장하고 성숙해 가야만 하는 미완성의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용납해 주고 기다려 주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고쳐야 할 것을 내 힘으로 지적하며 고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실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쳐져야 할 것들은 반드시 고쳐 나가십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삶이 바로 이 용납과 인내의 삶입니다.

사람의 변화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구나’하는 것을 늘 느낍니다. 변화를 교육으로 주입할 수는 없습니다. 애쓴 만큼 변화되지 않습니다. 변화시키려다 오히려 내가 변합니다. 불평하며 원망이 쌓여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용납하고 인내하고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 가까운 이들이 선물임을 감사하며 품어 주려는 깊은 사람됨, 성품을 가지도록 애쓰십시오.

미국에서 정원 잡초 뽑는 일을 하는 정원사가 이 방법, 저 방법, 모든 방법을 써도 잡초가 사라지지 않자 농림부 장관에게 해결책을 구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답장이 왔습니다. 이런저런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해결이 안되면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잡초를 사랑하십시오!’ 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부족한 빌립보 교인들을 어떻게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지금은 아니지만 변화될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이미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주님도 우리를 그렇게 받아 주셨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하나님께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는 믿음을 꼭 가지십시오. 바울도 이 믿음으로 견뎠습니다. 나의 눈, 목사의 눈이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꾸 내 시각으로 가까운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무수한 인내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내 시각을 버리는 것이 답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 인생을 맡기십시오. 그리고 힘써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며 기도해 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영혼을 향한 애끓는 기도가 최선입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만하며 생을 마감하는 것은 정말 ‘뼈아픈 후회’를 불러올 것입니다. 뼈아픈 후회가 없는 하나님의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대림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같은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고 하나님의 자녀 됨을 선언하신 이 복음의 정신과 마음으로 가까운 이들을 너그럽게 품어 주며 사랑해 주고 기다려 주는 새로운 변화가 여러분 삶 가운데 일어나는 대림 절기 되시기를 축복하고 축원 드립니다.(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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