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9. 주일 설교: 이기는 사람, 이기는 신앙 (계3:14~22). 양은익 목사.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주일

 

말씀: 이기는 사람, 이기는 신앙(계3:14~22)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3:14-22)

오늘은 ‘이기는 사람, 이기는 신앙’으로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주일입니다. 종교개혁 주간을 위한 말씀을 많이 준비했지만, 그 준비한 설교보다, 오늘 나누고자 하는 이 말씀으로 함께 나누고 교회의 개혁과 우리 신앙의 개혁과 고침에 대해 함께 말씀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전체적으로 큰 흐름 속에서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제목에서 윤곽을 알아볼 수 있듯이 ‘이기는 사람, 이기는 신앙’입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넘어졌는데도 꺾이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여러분들 모습 보기를 원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새벽 집중 기도회의 주제와도 같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다 귀한 존재입니다. 전 우주를 품고 귀한 신앙생활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자들이 외형적으로 잘 살고 성공하는 것이 비신자들에게 내세울 것이 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외형적인 이룸에 관한 관심보다, 신앙인으로 얼마나 말씀대로 사실적(real)으로 살고 있는지가 관심의 대상입니다. 부차적인 것으로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은 이제는 안되는 시대입니다. 참된 신앙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쭉정이와 알곡이 구분될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종교개혁 시대의 정신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상을 하나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미국 교포인 이승복 씨의 삶을 보여 주는 영상입니다. KBS에서 방송된 것을 5분 정도로 짧게 편집했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시고 동기 부여를 받으시며, 메시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8살 때 이승복은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1세에 기계 체조 선수로 탁월한 기량을 보이기 시작하여 대한민국 국가대표 체조선수가 됩니다. 그러나 1983년 7월 4일 그의 나이 18세에 연습 중 목뼈가 부러져 사지가 마비되는 중상을 입게 됩니다. 9개월에 걸친 힘든 재활의 기간 그가 힘들었던 것은 재활 훈련이 주는 어려움이 아니라, ‘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하는 것이었고,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뉴욕대에 입학하여 어머니가 그의 손과 발이 되어 휠체어를 타고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자신의 아픔을 주님은 이미 알고 계시며, 그의 지금 이 삶이 주님이 계획하신 삶이란 큰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의대에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리고 하버드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그리고 자신처럼 사고나 질병으로 마비되어 절망에 처한 환자에게 희망을 주며 치료해주는 의사의 길을 열심히 삽니다. 그리고 이 ‘감당할 모든 힘을 주님께서 주신다’는 강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감당해 나갑니다. 그의 말 한마디, 위로 한마디는 환자들에게 최고의 명약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그는 환자들에게 말합니다. ‘계속 믿음으로 힘차게 나가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거야!’하면서 그는 자기 삶으로 실제로 보여줬기에 환자들은 실제로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의 어머니도 중풍으로 쓰러져 휠체어를 타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 정도로 삶의 고난이 밀려오면 넘어지고 쓰러질 법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휠체어와 어머니의 휠체어를 함께 밀면서도 주님께서 감당할 힘을 주신다고 신앙 고백하며,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갑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사지가 멀쩡한 우리는 정말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는 불행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두 감당하며 씩씩하게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임하셔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하리라'(21절) ‘이긴다’ 표현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이기십시오! 삶이 힘들고 무겁더라도 지지 말고 이기십시오!’

오늘 본문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한국에서 강남에 있는 교회처럼 잘사는 동네 교회입니다. 상업 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대부분의 성도는 잘 살았습니다. 부유한 생활을 하다 보니, 신앙생활도 대충했습니다. 이 지역은 물이 석회석이 섞여 먹을 수가 없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도시에 관을 연결해서 온수는 희에라볼리 지역에서, 시원한 찬물은 골로새 지역에서 끌어다 먹었습니다. 관을 이용해 물이 긴 거리를 흘러오다 보니 이 지역에 물이 도착할 즈음에는 관속의 물이 미지근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물의 뜨뜬 미지근한 것에 이들의 신앙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15절)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신앙을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신앙의 삶을 살면서 자신의 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17절) 자신의 본 모습이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영적 모습입니다.

신자의 강점이란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나지 않은 것을 알고, 자신이 죄인임을 뼛속 깊이 아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는 이 모습 -신앙인의 모습-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편지로 책망하시고 회개하라고 하시며 문을 활짝 열리고 하십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19-20절) 찔리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의 신앙도 대충대충 하며 미지근하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는 우리에게 주시는 편지입니다. 이긴다는 표현은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 가련함,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 신앙이 이기는 신앙입니다.

7개 지역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쓰셨습니다. 공통되는 것은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 이기는 그에게는 (계2:7)
서머나교회: 이기는 자는 (계2:11)
버가모교회: 이기는 그에게는 (계2:17)
도아디라교회: 이기는 자와 (계2:26)
사데교회: 이기는 자는 (계3:5)
빌라델비아교회: 이기는 자는 (계3:12)
라오디게아교회: 이기는 그에게는(계3:21)

우리 교회도 주님의 바람대로 이기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소망하는 자로서 나가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의 방식을 거부하고 세상을 이기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신앙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교회는 삶의 패배자들이 모여 자신의 가시, 부족함, 곤고함, 고통을 ‘없애달라’고 빌며 아파하는 패배자들의 집단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취급을 당하게 된 것입니까?

여러분들도 ‘없애달라!’고만 외치고 계십니까? 이렇게 되면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무리가 또 생깁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주님께서 크신 은혜로 우리들의 가시와 없애기를 원하고 소원하는 모든 것들을 없애 주시면 정말 그것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 없애달라고 빌고 조르면서 주님을 따라가려 합니까? 안 없애주면 용하다는 다른 신을 찾아 떠날 것입니까? 실제로 그런 선택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직접 싸우고 이겨나가기를 바라십니다. 또 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대면하고 싸우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없애달라’는 신앙은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힘든 문제가 있으십니까? 믿음으로 거칠게 맞서서 싸워나가십시오. 그리고 이 싸울 힘을 하나님께 나아와 구하십시오. 지금 우리는 새벽 집중 기도회 시간을 통해 이 견딜 힘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칠게 싸워나가야 합니다. 기도가 ‘없애달라’와 ‘달라’로 도배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제가 대면하여 이기는 힘을 주십시오!’하고 구하십시오. 이 기도가 훨씬 신앙의 본분에 맞습니다. ‘없애달라’만 외치면 교회와 신앙인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집니다. 기독교가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이승복의 삶이 감동을 주는 것은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고난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만약 치유의 은사가 있는 능력 있는 누군가의 기도로 인해 치유되어 일어나 걷는 정상인이 되었다면 잠깐 그 기적에 감탄하는 정도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구의 몸으로 강인한 믿음으로 씩씩하게 딛고 일어나 환자를 돌보며 위로하며 치료하는 그의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바울도 아주 많이 아픈 통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통증이 눈에 있는 안질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또 다른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울도 너무 아파서 하나님께 ‘가시를 없애주십시오’ 기도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십니다. 이미 너는 너무도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에 대한 바울의 반응은 정말 귀감이 됩니다.

‘내 자신이 약한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히 임함을 알겠습니다. 내가 오히려 나의 약함으로 인해 주님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남을 알았으니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오히려 나의 약함을 자랑하겠습니다’(고후12:9)

우리도, 바울도 ‘없애달라’고 기도합니다. 글 쓰는 사람이 안질로 눈에 심한 통증이 계속된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바울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없애는 신앙’이 아니라 ‘이기는 신앙’으로 극복해 갑니다. 어려운 문제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한 번의 없애주심으로 해결되는 것과 이길 힘을 주셔서 이기는 신앙으로 싸워 극복해 나가는 것과 어떤 것이 낫습니까?

주님도 십자가를 지셔야 할 날이 다가오자 처음에는 없애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십자가 자시고 이기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십자가를 지고 이기는 신앙입니다. 십자가를 없앨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이기는 신앙 갖게 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이기면 없어집니다. 

우리 선조 신앙인들은 사회와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 기도로 일관했습니다. 그분들의 신앙은 대단합니다. 우리처럼 유약하지 않고 쉽게 변질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분들께 많이 배워야 할 것입니다. 힘들수록 인내하며 희망 품고 매일매일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루터 아내가 종교개혁 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해 도망 다니며 두려움에 떠는 루터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God must die’ 상복을 입고 나타나 이런 말을 하는 아내를 보고 루터는 크게 뉘우치고 종교개혁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이웃들은 여러분을 보며 ‘하나님 있음’을 봅니까? 아니면 ‘하나님 없음’을 봅니까? 만약 ‘하나님 있음’을 본다면 여러분은 종교개혁이 이미 된 것입니다. 겸손함으로 내 삶에서 끊임없이 ‘하나님 있음’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새벽 집중 기도회 중입니다. 이제 마지막 주간입니다. 직접 참여 못 하고 기도로 참여하고 있는 성도들 모두, 공동체의 뜨거운 믿음의 합세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기는 사람, 이기는 신앙’의 소유자 되기를 간절히 축복하고 축원 드립니다. (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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