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집중 기도회 9: 약속과 성취 사이에서 (창15:7~21). 양은익 목사. 2017.10.26

 

약속과 성취 사이에서(창15:7~21)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15:7-21)

1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별을 보여 주시며 두 가지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어제는 ’자녀’에 대한 첫 번째 약속의 말씀을 보았고, 오늘은 두 번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땅’입니다. 오늘도 중요한 신앙적인 주제가 발견되는데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 마음에 잘 새기면 좋겠습니다.

15장 전체는 하나님에 대한 의문과 실망으로 가득 찬 아브라함의 믿음을 회복시키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려는 하나님의 겸비한 분투가 눈물겹도록 황송한 장면들로 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어둠에 있을 때도 이렇게 애써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사건은 그 성경 인물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모두 예표입니다. 내가 같은 처지에 있게 될 때 주인공은 바로 ‘나’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인생을 사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고 해결되지 못한 간절한 소원으로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가오셔서 위로하고 계심을 아셔야 합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병아리는 알 속에서 껍질을 쪼아대고, 어미 닭은 밖에서 톡톡 쪼아대서 알이 깨질 때 병아리가 새로운 세상으로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의 열림을 위해서는 양쪽 모두의 쪼아 됨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신앙의 삶에도 줄탁동시가 필요합니다. 나와 하나님이 함께 연합할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립니다. 나도 힘껏 거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가오실 때, 나도 힘껏 최선을 다해 안에서 쪼아대야 합니다. 신앙의 삶을 잘못 이해하면 나는 가만히 있고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면서 하나님께만 일방적으로 맡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맡기는 자세는 좋지만 나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안에서 열심히 알을 쪼아야 합니다.

어제 하나님의 위로하심에 아브람이 반응했습니다. 별을 본 후 자신의 삶을 다시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 맡기는 믿음을 아브람은 보여줬습니다. 오늘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말씀을 주십니다. 이것은 아브람 맘속에 남아 있던 마음속 두 번째 의문에 대한 답입니다. 두 번째 의문이란, ‘후손을 그렇게 많이 주시면 지금도 땅이 없어서 떠돌고 있는데 그 땅은 언제 주시나?’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이미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7절)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자기소개를 땅을 기반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아브람은 땅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자녀 문제와는 다르게 땅의 약속에서는 약속에 대한 증거를 보여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당돌한 요구일 수 있지만, 증거를 요구하는 아브람을 향해 하나님은 설득하십니다.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계약'(언약)을 하시며 약속의 징표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없는데도 아브람을 위해 그에게 유리한 조건의 계약을 진행하십니다.

고대 근동 지역의 계약 방법은 고기를 준비하고 가운데를 쪼개서 피를 흘리게 한 후, 그 피를 계약의 증거로 삼습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죽은 고기(짐승) 사이로 양측 계약자가 지나갑니다. 이 의미는 계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쪼갠 고기처럼 갈라져 죽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아브람과 하나님과의 계약에서 하나님만이 타는 횃불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셨습니다. 아브람은 고기 사이를 걷지 않았습니다. 그 의미는 땅의 언약이 지켜지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서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유리한 불평등계약을 해 주십니다.

이 계약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일방적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아브람은 확답을 받았습니다. 이 계약은 아브람 개인의 계약이 아닙니다. 우리도 확답을 받았습니다. 어디에서입니까? 바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주님의 ‘피’ 확답(보증)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수도 없이 흔들리는 존재들입니다. 흔들릴 때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흔들리고 계십니까?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시고 깨달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약속의 성취) 인내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알려주십니다. 아브람이 두려움에 떨던 그 밤, 아브람에게 기다리라는 시간은 무려 400년이나 됩니다. 당장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는 조급증이 있는 우리에게 400년이란 시간은 무시무시한 시간입니다. 기다림과 인내의 단위가 다릅니다.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이 기다림이(인내)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 생활할 때 이 약속과 성취 사이의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도식을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 기다림을 통해 삶의 성숙이 일어납니다. (숙성) 그러나 기다릴 힘이 전혀 없으면 못 기다립니다. 그 기다릴 힘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믿음이 바탕에 있어야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적 약속의 성취에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개인적인 원함과 성취, 목표와 성취 사이에도 기다림과 믿음은 필요합니다.

기다림은 성취와 이룸을 만드는 필연성입니다. 기다림 없는 성취도 있을 수 있지만, 불완전한 성취일 가능성이 큽니다. 음식도 숙성시키며, 발효시킨 음식이 몸에도 좋고 깊은 맛을 냅니다. 품격과 깊이와 가치가 탁월한 것입니다. 기다림은 누구에게나 힘듭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굉장히 소중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기다림을 사막에 비유했습니다. 그만큼 힘들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이란 지금 현재 있는 곳과, 있고 싶어 하는 곳 사이에 있는 메마른 사막이다.’

기다림은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면 초조와 조바심만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성취를 이루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힘든 인내의 시간, 우리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됩니다. ‘줄탁동시’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알껍데기를 쪼아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큰 약속의 성취를 이뤄주실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찬송한 분의 찬송이 있습니다. ‘성도여 놀라지 말고 절망 중에 두려워 말라. 예기치 못한 순간에 주가 오셔서 도우리라. 주의 도움 늦어져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라. 주의 약속 더디어도 반드시 이루어 주시리’

아브람은 400년 기다리라는 기다림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몇 년을 기다리게 하실까요? 긴장하시면서 약속의 시간 받으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그 기다림의 시간 보내십시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해 주실 것이며, 그때 진정으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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