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가운데 계신 하나님(창15:1~6)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15:1-6)
오늘 제목은 ‘어둠 가운데 계신 하나님’입니다. 쉽지 않은 주제의 말씀입니다. 아브람은 헤브론으로 이주 후 애굽에서의 실패를 믿음으로 잘 극복하며 열심히 잘 살았습니다. 과거의 실패를 지우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롯과 헤어질 때 롯에게 땅을 먼저 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도 줬고, 전쟁 승리 후 전리품에 일절 손대지 않는 청렴하고 깨끗한 모습도 보여 줬습니다. 이 모습 모두 하나님을 따르는 자의 귀한 명예로운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람의 마음속 깊이 이루어지지 않는 약속에 대한 의문과 실망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소원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문제들이 해결 받지 못하고 응답받지 못할 때 흔들리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아브람도 그랬습니다. 오랜 시간 하나님께 기도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제단을 쌓았지만 주신다고 약속하신 자식이 아직 없고,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갈대입니다.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심하게 흔들립니다. 오죽하면 ‘조변석개’라고 하겠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아도, 믿음이 좋아도 때때로 흔들릴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너무 자책하지는 마십시오.
헤브론의 한 밤은 칠흑같이 캄캄하고 어둡고, 두려운 밤입니다. 전쟁 승리자 아브람이 지금 초췌한 모습으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독한 모습을 보입니다. 외부적으로 현재 두려움에 딸만 한 사건은 없습니다. 혹자들은 이 두려움을 해석할 때, 전쟁에 패배했던 동맹국들이 다시 힘을 합쳐 쳐들어올까 봐 두려워한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그런 외적인 것이 아닌 거 같습니다. 이 두려움은 아브람 내면의 문제, 영혼의 문제, 정신의 문제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기도 가운데 있던 문제가 응답받지 못한 채 10여 년이 흐르고 자신도 늙어가고, 사래도 늙어가니, 약속에 대한 의문도 들고, 허탈함도 들며, 두려움에 싸여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람 스스로 두려워하고 고독해 하고 있음을 본문 1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전격적으로 기습적으로 아브람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네 방패이며 상급이 아니냐?’ 이런 하나님의 위로에 아브람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2-3절)
반응이 어긋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소 퉁명하고 냉소적이고, 반항하는 느낌으로 위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아픈 고난의 시간, 어둠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쏘아붙입니다. ‘당신이 뭐 해준 게 있으세요?’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반응하며 마음의 응어리와 불만, 의혹들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아브람의 마음 한구석에 이런 마음의 응어리와 불편함과 의문이 있었음을 보며 한편으로 놀라게 됩니다. 정말 사람 마음속은 모릅니다. 아마 부인 사래도 이런 아브람의 마음을 몰랐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서 여러분들도 여러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 상’이 어떠한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 상’은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헤브론에서 이웃들에게 보여준 거룩하고, 귀한 삶을 살았던 아브람에게도 오늘 보여준 마음의 응어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늘 이런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불편함은 아마 문뜩문뜩 내면 깊숙한 속에서 밀고 올라와 오늘 밤 같은 두려운 밤을 보내게 했을 것입니다.
소원하고 갈망하며 간절히 기도로 구하는데,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하나님의 침묵이 계속될 때 하나님의 백성은 지치고 실망합니다. 이 상황이 ‘어둠’입니다. 이 어두움의 현실은 신앙인이라고 면제되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보셔야 합니다. 어둠은 반드시 있고, 믿음이 있어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둠이 찾아올 때 잘 대면하고, 잘 해석하셔야 합니다. 어둠은 아주 큰 신앙의 도전입니다. 해석 여부에 따라 향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14세기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한 영성가가 어둠을 아주 잘 해석해 놓은 글이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당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는 늘 이 어둠과 구름이 있다. 이 어둠 때문에 이성이라는 지식의 빛으로 그분을 똑똑히 보지 못하고 그분의 사랑을 온전히 체험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사랑하는 그분께 늘 부르짖으며, 할 수만 있다면 오랫동안 이 어둠 가운데서 쉬려고 애쓰라. 이 땅에 사는 한 그분을 체험하거나 볼 수 있는 곳은 이 구름과 어둠밖에는 없기 때문이다'(무지의 구름, 익명의 저자)
어둠에 대한 탁월한 해석입니다. 우리 인간은 성공하고 기쁨에 들떠 있을 때는 무릎 꿇고 진중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둠 속에서, 나를 찾아주시고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에, 어둠의 시간이 오면 그 시간에 충분히 젖어 들어 하나님을 찾고 만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석한다면 어둠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둠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곳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에 있는 아브람을 찾아오십니다. 찾아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아브람이 퉁퉁거리자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보자고 하십니다. ‘저 하늘의 별처럼 너의 자손은 약속의 땅에 가득 찰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한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어둠을 걷어내고 믿음을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 눈물겨운 분투를 하고 계십니다.
어둠이 가득하고 기도 응답이 없어 회의가 들고 불안하며 불만 중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바로 더 가까이 계십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애쓰심으로 마음을 엽니다. 약속이 이루어 진 것도 아니고,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마음을 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다시 회복한 것입니다. 이런 아브람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대단하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6절 말씀을 주십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6절) 이 말씀이 신약에서 ‘칭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믿을 만 하기에 믿고, 이루어 주시니까 믿는 믿음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도 계십니다. 아주 가까이 계십니다. 히브리 기자는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11:1, 새번역) 하나님은 어두운 삶의 현실에서도 반드시 함께하십니다. 어두울수록 더욱 희망하시고, 더욱 믿으셔서 신비한 은혜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많이 힘드십니까? 아브람처럼 별구경을 떠나는 것도 좋습니다. 한밤 별을 바라보십시오. 근심, 걱정, 두려움 모두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고통과 영적인 고민, 마음의 짐들, 다 하나님께 내려놓으십시오.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이런 위로하시는 하나님 새롭게 세워 주시고자 바로 옆에 계신 하나님을 반드시 찾으시고 믿으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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