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뎌내야 할 유랑의 길(창12:5~9)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창12:5-9)
잠깐 서로들 아침 인사 나누시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며, 환난을 당할 때 참으며, 기도를 꾸준히 멈추지 않겠다는 마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 일행은 힘겨운 유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랑이란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말합니다. 나그네, 방랑자, 순례자의 모습이 아브라함 일행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떠났지만 정말로 힘들고 편치않은 유랑생활이 시작됩니다. 아브라함 일행은 하란을 떠나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반복합니다. 고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길을 떠난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이 고생하는 순례의 길(여정)은 큰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뭔가 일사천리로 축복의 탄탄대로를 달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아브라함 일행의 모습은 우리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들은 축복의 언약을 굳게 믿고 출발했지만, 그들 앞에 놓인 삶은 계속되는 고생스러운 삶입니다. 이 모습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합니다. 결혼한 부인들이 가장 속상하고 서러운 것이 집이 없어 전세, 월세 오를 때마다 돈에 맞는 집을 구하며 옮겨 다니는 건데, 지금 아브라함의 모습도 그러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 일행이 이동했던 거리는 상당한 거리입니다. 하란에서 세겜까지(6절)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벧엘 동쪽 산으로 이동합니다(8절). 그리고 다시 남쪽 네겝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기근이 나자 다시 이집트로 피난합니다. 기근이 끝난 후에는 다시 이스라엘 전 지역을 방랑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굉장히 어려운 길, 낯선 길, 위험한 길, 그리고 먼 길을 계속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나지 않았으면 얼마든지 대접받고, 잘 살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떠나면서 고생이 시작됩니다. 호의호식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사람들 눈에는 아브라함의 선택이 어리석어 보일 것입니다. 아브라함 유랑 길의 고생스러움을 나타내주는 단어가 5절 끝에 나오는 ‘마침내’입니다. ‘힘겹게’ 왔다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에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유랑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타나 있지 않지만 얼마나 ‘힘겹게’ 왔으면 ‘마침내’라고 했겠습니까!
믿음의 조상이 유랑 생활 끝에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했듯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하고 신앙 생활하는 우리도 이 순례의 길(신앙생활)을 끝내는 날,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여정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침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유랑하는 자로 만드셨을까요? 인류 구속을 위해 택한 첫 번째 사람, 그토록 중요하고 귀한 사람에게 왜 그토록 험난한 고난의 삶을 허락하셨을까요? ‘고난은 힘든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고난받았다’에 우리의 초점이 맞춰지면 우리는 실망하고 낙담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주는 유익에 우리의 초점이 맞춰지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유랑(순례)이 주는 유익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리 믿음의 길도 순례의 길입니다.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순례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순례는 걷는 것입니다. 인간은 걸으면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생각이 깊어지면 ‘성찰’을 합니다. 아마 아브라함도 유랑생활 내내 그렇게 생각하고 성찰했을 것입니다. 이 과정은 신앙의 길에 필요합니다. 생각과 성찰을 통해 얻게 되는 유익은 엄청납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하나님께 대해 깊이 알아가고, 자연을 보고,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리고 성장하며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유랑 (순례)이 주는 유익입니다. 아마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았다면 얻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몸으로 체득하며 얻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고생도 제대로 하면 유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도 같은 길을 갑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변수가 아닌 상수입니다. 이런 고난이 앞에서 기다리는 믿음의 순례의 길을 갈 때 우리는 두 가지를 꼭 가져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 체험(7절)과 하나님 구함(9절)입니다. 이 두 가지가 내 안에 살아 있을 때 힘든 순례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체험:하나님의 오심(7절)
지금까지는 말씀으로만 임재하시던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7절) 하나님께서 나타나심을 ‘신현현’(神顯現,Theophany)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여러 모습입니다. 자연 현상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환상으로, 말씀을 통한 뜨거운 감동과 전율함으로 나타나십니다. 고생 고생하며 세겜에 도착하자 하나님께서 현현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을 네 자손들에게 주겠다’
그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은 그 고생길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큰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가뭄에 내리는 단비 같았을 것입니다. 이 하나님 체험이 영적 체험(신적 체험) 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반드시 사모하시고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모함이 지나쳐 신비주의로 빠지면 안 됩니다. 특별히 고난 중에 계신 성도와 반복되는 고난으로 힘든 중에 있는 성도들은 더욱 간절히 하나님의 영적인 체험을 사모하고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현현과 위로하심이 강력한 힘이 될 것입니다.
2. 하나님 구함:내 쪽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9절)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난 이후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모든 일을 여호와께 아뢰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대로 배워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여쭤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순례자들이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여러분들도 믿음의 길 가다 지치고 힘들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구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가십시오. 힘주셔서 힘들 길 걸어갈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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