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부르심(창12:1~4)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12:1-4)
새벽 집중 기도회 첫날입니다. 이 3주간은 영적 수련의 시간입니다. 몸은 익숙지 않아 비록 힘들겠지만, 영적 수련은 필요합니다. 때론 기도 한마디 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중해서 잘 따라 행해 주셔서 새벽이 주는 고요와 신비와 영성의 은혜를 받아 잘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잠깐 성구 외치고 시작하겠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
이 주제 말씀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으로 임하셔서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때 아브라함 나이 75세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이 나이에 아브라함은 친척과 고향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말씀에 순종한 이 한 번의 떠남이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창세기 앞부분(3장-11장)에서 우리는 인간의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 새롭게 다시 시작하십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도 불순종으로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가인은 동생을 죽였습니다. 노아 때 우리는 인간의 타락상을 봤습니다. 그리고 홍수 심판 후 노아도 술에 취해 벌거벗고 추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겸손치 못했던 인간들은 바벨탑을 쌓다가 실패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하나님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심판받아 마땅한 인간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다시 새 출발을 하십니다.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새 희망을 시작하신 그 희망의 바탕은 우리가 3장에서 11장까지 봐 온 인간의 ‘어두움’ 입니다. 어둡지 않으면 불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어둡기에 희망의 불꽃이 필요한 것 입니다. 희망을 위해 부른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어둠에 있던 사람입니다. 정작 그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그가 탁월해서도 아니고, 말을 잘 들을 것 같아서도 아닙니다. 그는 희망 없는 자, 무기력한 자, 냉소가 가득한 자, 포기한 자, 단념한 자, 체념한 자이기에 부르신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부르심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창11:30에 아브라함이 가진 상황을 강조하는 한 문장이 나옵니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이것이 현재 아브라함이 처한 현실입니다. 고대 가부장적 사회에서 불임은 고통이고, 절망입니다. 상처받은 삶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불임은 희망 없는 삶을 말하는 은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불임의 고통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불임 때문에 힘들어하십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것을 불임이고, 불임은 불임의 당사자들에게는 절망과 냉소와 무기력을 안겨 주기에 충분합니다. 되고 싶고, 하고 싶고, 누리고 싶고, 떳떳해지고 싶고, 편해지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속상하고, 냉소만 싸늘하게 흐르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앓고 있는 병입니다.
이런 절망의 병에 걸려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개입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의한 사람의 변화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강하게 내게 들어온 말씀은 나를 이 깊은 수렁에서 깨어 일어나게 하고,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말씀의 개입을 사모하고, 바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하지만 말씀이 임하고 순종할 때 변화와 치유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희망 없던 불임의 한 인간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축복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에 집중할 때 불임 상태에 있는 나의 상황에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치유가 일어납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깊이 병들어 있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내 삶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떠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 고대 사회에서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은 인간이 의존할 수 있는 절대치입니다. 그러나 떠나서 새롭게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강력한 약속을 주십니다. (2~3절)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부르심)에 순종하던지, 듣지 않고 무시해 버리든지. 아브라함은 듣고 순종하며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지만 길을 떠나면서 아브라함은 불안해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떠났습니다. 그 떠난 길은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 비록 작았을 수도 있는 믿음과 신뢰가 아브라함을 살려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보십시오. (2절~3절). 5개의 문장이 나옵니다. 모두 1인칭입니다.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내가’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자기주장과 자기 주도성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앞에 내세우십니다. ‘내가 다 해 주겠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도적인 강한 약속에 끌렸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지금 주도권을 자신에게 넘기라는 사인과 선포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세팅하라는 도전을 하고 계십니다.
긴 말씀 못 드립니다. 삶의 주도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 오늘 아침 묵상해 보십시오. 신앙은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양도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높으심을 인정하기에 겸손하게 그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라가려고 애쓰는 삶. 그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삶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에 더 크게 눈뜨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길 떠나시게 할 것이고, 그 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천로역정이 될 것입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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