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들의 함성: 금요 기도회. 2017.9.2.

20161102

 

2017년 9월 1일 금요기도회

1. 한 주를 돌아보면서 기도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모두 각자 다 다른 삶을 사셨을 것입니다. 한 주간 힘들었던 일들, 속상했던 일들,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던 것들, 또한 회개의 기도, 또한 한 주간 받은 말씀들을 기억하면서 이 시간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음 주에는 더욱더 감사할 일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2. 세계를 위한 기도
우리나라, 전 세계를 돌아볼 때 수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은 테러 등으로 여행하기도 무척 조심스러워지고 있습니다. 또한, 수 많은 난민이 있습니다. 세계는 평화가 필요합니다. 고통과 어려움에 부닥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심히 기뻤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수많은 죄악과 타락으로 음란과 퇴폐가 넘쳐납니다. 가난한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하시고, 전쟁과 분쟁과 기근에 시달리는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3. 세계만방의 교회를 위한 기도
필요한 곳에 아직도 교회가 없는 곳이 많습니다. 교회가 필요한 지역에 더 많은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또한,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교회가 성령 충만하여 주변 이웃,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유럽의 교회들이 다시 부흥하여 유럽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다시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4. 나라를 위한 기도
지금은 정말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순간 어떤 비밀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사회 지도자들, 정치인들 모두 각자 소임을 다하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요즘 계속 각료들이 새로 임명되고 있습니다. 모두 맡은 일에 각자의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북핵 문제를 놓고 기도해 주십시오. 무모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5.금요 기도회 말씀: 바리새인과 세리(눅 18:9-14)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9-14)

이 비유의 의도는 자신을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의 지위나 업적과 무관하게 그 생명 자체로 존귀한 존재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나 자체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잘 살아야 합니다.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습니다.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생명이 그 자체로 소중한 것처럼, 교회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에, 또한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의 존재 자체로 소중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교회가 교회로써 잘 존재하기 위한 첫째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잘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온전한 교회가 아닙니다. 즉 교회는 하나님 말씀 들음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사역에는 위로, 구제, 선교, 섬김, 사회사업 등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말씀을 제대로 들은 다음에 할 일들입니다.

본문 말씀 비유 중 첫 번째로 바리새인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이 많고 자랑할 것도 많고, 열거할 것도 많아,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서 기도합니다. 한 주간 중 월요일과 목요일 두 번을 물조차도 먹지 않는 온전한 금식을 합니다. 정말로 대단합니다. 또한, 경제적 희생을 감수하고 십일조도 합니다. 이렇게 자랑할 것이 많기에 눈에 확 띄는 장소에서 기도합니다. 두 번째 기도하는 사람으로 세리가 나옵니다. 세금을 뜯는 일을 하기에 모두가 싫어합니다. 그래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기도합니다. 또한, 하늘을 감히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겸손한 자세로 ‘불쌍히 여기소서!’ 외치며 기도합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기도합니다. 주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는 세리의 기도입니다. 세리처럼 진정으로 겸손한 기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세리의 기도를 하려면 말씀을 온전히 듣고, 말씀을 중심에 담고, 말씀에 합당한 온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세리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말씀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오기 때문에, 말씀이 들어오면 자신을 자랑할 수 없게 됩니다. 행위가 우선이 되면 바리새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말씀이 중심에 들어오면 세리의 모습이 나옵니다. 교회가 온전히 서려면 성도가 온전히 말씀으로 서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들음이 중요합니다.

말씀은 진리이며, 생명이며 하나님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나를 바꿔 놓게 됩니다. 내가 보이고, 내 생각이 보이고, 너가 보이게 됩니다. 세상이 보입니다. 그러나 행위가 우선이 되면 이 모든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루터는 ‘말씀은 나를 비평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늘 나의 적으로 다가온다’라고 했습니다. 루터는 말씀은 늘 나를 지지해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나의 잘못과 오류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들어와야 나의 실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무섭다는 것을 많이 느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들어와 끊임없이 나를 고쳐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이것 했습니다’ 자랑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며 진정으로 탄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리의 기도입니다. 이렇게 세리의 기도를 하며 겸손히 탄식하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 될 때 교회는 강력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는 ‘~했습니다!’ 하며 외형을 자랑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 하지 못했습니다’하는 탄식의 겸손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리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외형과 업적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존재 자체로 귀한 것입니다. 작은 교회라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그 존재 자체로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소중하며, 자랑할 만합니다.

칼 바르트는 얘기했습니다. ‘교회가 단지 두세 사람으로 구성된다 하더라도, 그 구성원이 엘리트가 아니고 심지어 인류의 배설물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해도, 주변에 영향력을 못 미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거기에 바로 교회가 있다’

교회가 작아 그 영향력이 작더라도 교회는 그 자체로 중요하고 존귀합니다. 아무것도 못 한 세리였지만 주님은 오히려 더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러하기에 교회 그 자체로 감사하시고 말씀을 힘써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가 영적으로 더더욱 무장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너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애쓰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뚝심 있는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6.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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