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13. 주일 설교: 엘리야6. 그 사람, 오바댜(왕상18:1~15). 양은익 목사


말씀: 엘리야 6. 그 사람, 오바댜

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3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5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6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7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그를 만난지라 그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8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그러하다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9 이르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10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11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나 12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말하였다가 그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13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14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그가 나를 죽이리이다. 15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왕상18:1-15)

오늘 엘리야 시대의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사람인 오바댜에 대해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말씀을 보기 전에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3년,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를 잠시 보겠습니다.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는 독일인 사업가입니다. 쉰들러는 전쟁을 이용하여 큰돈을 벌 생각을 합니다. 유대인 포로를 직원으로 고용하고 독일 군인들과 친분을 두텁게 쌓으며 사업에 몰두합니다. 그러던 중, 나치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되는 유대인들을 목격하면서 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인을 구하는데 전 재산을 쏟아붓게 됩니다.

쉰들러 리스트는 살려야 할 유대인의 명부(리스트)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독일이 항복하면서 연합군이 들어오면, 쉰들러는 전쟁 전범으로 붙잡힐 것이기에 도망을 준비합니다. 그 자리에서, 죽음에서 구출된 유대인들이 그들의 금이빨을 녹여 만든 반지를 쉰들러에게 줍니다. 반지에는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세계를 구한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세계를 구한 것이다’ 이 탈무드의 구절은 잊지 마시고 마음에 꼭 새기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처지에 있든 그 한 사람의 가치가 전 세계와 마찬가지라는 이 귀한 마음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져야 합니다. 요즘은 다수가 최대 가치를 지닌 시대입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만큼 폄하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치 체계를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오바댜’ 리스트가 나옵니다. 이 영화와 상황이 비슷합니다. 3~4절에 리스트가 나옵니다 ‘아합이 오바댜 궁내대신을 불렀다. 오바댜는 주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이세벨이 주님의 예언자들을 학살할 때에, 예언자 백 명을 쉰 명씩 동굴에 숨기고서, 먹을 것과 물을 대준 사람이다.'(3-4, 새번역) 오바댜는 영화 속의 쉰들러와 비슷한 일을 합니다. 나치 시대만큼 큰 학살은 아니었어도 아합 시대에 엄청난 학살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 시대는 칼로 죽이는 시대였습니다. 엄청난 사람들을 죽이는 광기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에 오바댜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죽음에 처한 선지자 100명을 구합니다. 50명씩 두 군데로 분산시켜 깊은 동굴로 피신시켜 죽음의 칼날을 피하게 합니다. 100명의 하루 식사를 공급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 입니다. 오바댜는 이들에게 떡과 물을 날라다 먹입니다. 이들을 얼마나 오래 숨겼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쉰들러처럼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오바댜는 여력이 있었습니다. 아합의 최측근으로, 궁내 대신이라는 직분으로 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신임을 받고 있었던 위치에 있었습니다. 쉰들러도 1,098명을 구하는데 수백만 달러가 들어갔습니다. 아합도 꽤 많은 자금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비 하심입니다.

12절을 보면 오바댜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함께 어려서부터 신앙 생활했던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학살의 주범인 아합과 이세벨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일하는 오바댜에게 쏟아졌을 비난의 소리는 굉장했을 것입니다. 오바댜의 오늘 본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사람을 어느 한 면만 보고 쉽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칼부림이 난무하는 광기의 시대, 그 살육의 한 복판에서 사람을 빼돌리고, 또 빼돌린 사람들을 먹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바댜는 경계선에 선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아합의 종(여호와의 사람들을 죽이는 사람의 종)이었고, 내적으로는 본인의 이름 (오바댜의 뜻은 ‘여호와의 종’입니다)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슬아슬한 칼날 위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인물입니다. 능력이 출중해, 일 처리가 탁월하여, 왕의 신임을 받아 승승장구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처한 현실은 선지자들을 죽이는 광기의 시대였으니 그의 갈등과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럴 때 우리가 그 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처신했어야 합니까?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장렬히 죽어야 합니까?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장렬함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사회는 개인의 악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느 곳에나 ‘구조 악’이 있습니다. 경찰 조직에도, 검찰 조직 내에도, 심지어 교회에도 구조 악이 있습니다. 구조 악이란 구조적으로 견고하게 있는 악입니다. 그런 구조 악 속에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신앙의 삶은 도덕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도덕을 위배하는 행위들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칠 때, 그때마다 사표를 던지고 나와야 한다면, 교회는 실업자로 넘칠 것이고, 실업하면 살기 어려워지니, 그리스도인 가정에는 싸움과 불화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노예제도 시대를 지날 때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제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며 현실적으로는 잠정적인 타협안을 제시하며 상황을 극복해 나갔었습니다. 오바댜도 같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상황에 실망하여 자포자기할 수도 있었고, 신앙을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바댜가 처한 그 상황,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사회 구조 악 가운데서 처한 같은 상황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 우리가 확실하게 해결하고 가야 할 문제가 ‘실망’의 문제입니다. 실망(낙심)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의 삶은 위험해집니다. 실망을 잘못하면 사람이 망가집니다. 뜻 한대로 안되어 마음이 상하는 것이 실망입니다. 실망감이 내 마음에 물밀 듯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실망, 일에 대한 실망이 너무 크게 밀려오면 내 안에 있던 좋은 감정, 성품, 믿음 등이 사정없이 무너집니다. 이 실망을 잘 처리하고 다루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께도 실망하고, 삶이 망가져, 삶을 포기하는 지경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은 실망이라는 감정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 실망의 강도가 어떠하든 실망이 주는 결과는 모두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고, 하나님도 원망하게 됩니다. 실망은 암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실망과 낙심을 극복할 수 있다고 계속 가르쳐 주십니다. 실망의 순간 우리 귀에 아무것도 안 들려도 하나님께서는 극복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오바댜를 통해 그 한 예를 보여주십니다. 오늘의 주인공 오바댜는 충분히 실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합니다.

여러분, 요즘 무엇에 실망하고 있습니까? 오늘 이 장면을 잘 보시고 많은 것을 오바댜를 통해 배워가시기 바랍니다. ‘아니오’는 ‘새로운 인생의 시동’이라고 합니다. 오바댜는 암울한 광기의 시대에 ‘아니오'(긍정의 말)를 반복해서 외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실망스러운 일, 낙심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바댜처럼 긍정의 ‘아니오’를 외치시기 바랍니다.

엘리야와 오바댜가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내가 여기 있다고 아합에게 얘기하라고 하자 오바댜는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말하였다가 그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12절) 오바댜가 죽는 게 두려워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오바댜는 ‘자신이 헛되게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자신이 할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댜는 단단합니다. 헛된 죽음을 거부할 정도입니다. 잘 배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아무리 상황이 실망스럽더라도 아직 할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성악가 중 독일의 ‘크바스토프'(Thomas Quasthoff, 1959~)가 있습니다. 그는 134cm의 단신이며, 한쪽 팔은 없고 손가락은 갈고리 같은 형태로 있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마녀의 저주를 받고 태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키가 작으면 소리의 울림이 풍성히 나오는 데 한계가 생깁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바리톤 소리의 울림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런 장애가 있는 팔로는 피아노 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단히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그는 얘기합니다. ‘자신에게 늘 진실하라.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의 모조품이 되지 마라. 눈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발자국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Stay true to yourself. Don’t be an imitation of someone else. I have to make my own footsteps in the snow). 우리 모두에게 주는 보석과도 같은 말입니다. 장애가 있는 그가 다른 사람을 목표로 하며 달려갔다면, 그는 그 자리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만의 발자국을 만들기 위해 자신에게 늘 진실하며 최선을 다했기에 그는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망은 대부분 외부적인 것에서 옵니다. 자신이 갖지 못해서 서로 갈등하는 한국사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아파하는 한국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이 시대를 사는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크바스토프의 이 말을 귀담아듣고 자녀들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자꾸 주변을 보며 외부 상황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자신을 깊이 보고 자신의 발자국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십시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발자국은 필요합니다. 이렇게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는 압도하는 힘으로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때로는 말씀을 보는 중에, 때로는 기도 시간 중에, 때로는 우리 곁에서 따듯한 말로 위로하는 옆 사람의 위로를 통해 우리에게 오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배시간 중에 위로로 다가와 주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압도적인 은혜는 실망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 위로를 받으면 우리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경험, 이성 등의 작은 상자 속에 갇혀 있지 않으면, 즉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오바댜가 실망하지 않고 목숨을 걸며 무엇인가를 하려고 애쓴 힘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답은 3절입니다.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3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오바댜의 힘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에게서 나오는 반응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나를 다스리시고, 내 삶을 이끌어 가시며 우리와 늘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나의 반응이 ‘경외’입니다. 이 다스림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는 인간의 자율성이 너무 높이 올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외가 너무나도 약화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깊이 경외하며, 깊이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이것이 실망을 극복하며 새 소망을 향해 나를 일으키는 위대한 힘의 비밀입니다. 무엇 때문에 힘 빠지고, 속상하고, 실망하고 계십니까? 실망과 낙심을 이겨내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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