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2일 말씀 묵상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요1:38-39)
‘그들이 가서…. 그날 함께 거하니'(요1:39). 기껏해야 그분과 ‘하루’를 함께하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현실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시작하다가 더 이상 주님과 함께 거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 어떠한 삶의 조건도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없도록 만들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네가…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1:42).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교만과 자긍과 이기심을 지워버린 곳에 친히 새로운 이름을 적어주십니다. 우리 중에는 마치 영적 홍역처럼 몇 군데에만 새로운 이름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부분에서는 아주 잘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최상일 때는 매우 대단한 성도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침체일 때는 아무에게도 본이 되지 않는 형편없는 성도가 됩니다. 제자란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이름을 가진 자들입니다. 제자에게는 사욕과 교만과 자족이 완전히 지워져야 합니다.
교만은 자신을 신성화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대에 있어서 교만은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아, 나는 도저히 성도라고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무의식적인 신성모독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말은 ‘나는 너무나 약하고 가능성이 없기에 십자가의 속죄로도 나를 어쩔 수 없어’라는 의미로, 당신을 성도로 만드신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왜 자신을 성도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는 당신이 성도가 되고 싶지 않거나 당신을 성도로 만드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즉시 천국으로 데려가시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 조건을 만들지 마십시오. 아무 조건 없이 예수님께서 모든 것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당신을 단 하루가 아니라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묵상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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