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6.11. 주일 설교: 성령이여, 오소서2(민11:10~17). 양은익 목사


말씀: 성령이여 , 오소서 2(민11:10~17)

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1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17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민11:10-17)

지난 한 주간도 잘 지내셨습니까? 성령 강림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늘 성령 하나님을 구하시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뚝 서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생수의 강인 성령도 아무리 그 물이 시원하고 좋더라도 목 마른 자 되어 찾지 않으면 도움이 안됩니다. 우리는 환경적으로 어려울 때만 목말라하며 이 생명의 물을 찾으면 안 됩니다. 우리 영혼은 늘 갈증을 느끼고 하나님의 생명의 물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혼의 목마름이 있어야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받을 수 있기에, 목마름은 또한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선물을 모두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 하나님께 관심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잘 알고자 하고, 잘 알아가는 귀한 신앙의 삶을 매일 매일 사십시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게 되면 ‘신앙의 삶이 이렇게 아름답고 복되구나’ 하고 느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민감한 감수성으로 반응하시면서 생명의 강, 생수로 촉촉해지기 바랍니다.

독일 신학자 몰트만은 ‘성령의 능력 안’에 있어야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힘을 자장으로 표현한다면, 성령께서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자장 속에 있어야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자장을 벗어나면 자연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진실로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Nothing입니다. 이 자장을 벗어난 목사의 설교는 한낱 연설에 불과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내 안에 하나님께 대한 소망과 추구가 있어야 그리스도인으로 설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와 능력 안에 있게 될 때 매 순간 잔잔히 하나님의 은혜에 젖어 들고, 하나님을 호흡하며 강력한 능력 속에 살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 스스로는 영적인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추구하는 마음의 자세가 없으면 우리는 기도 할 수도 없습니다. 형식적인 기도로 끝날뿐입니다. 성경 읽기도, 사랑의 능력도, 용서의 능력도 없습니다. Nothing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해 주시지 않으면 종교인은 될 수 있겠지만, 예수의 정신으로 저돌적으로 사는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교회도 사람의 교회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려면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은 언어로 표현해 담아내기 힘듭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입니다.

어떻게 충만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지난 주일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밀고 올라오는 말-성령의 언어-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에 함께 살고자 하는 우리가 함부로 살면 맞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목사가 심방 온다고 해도 여러분들은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준비합니다. 거룩한 영을 맞이하려면 거룩해져야 합니다. 삶의 자세가 달라져야 합니다. 더러운 것과 거룩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나의 거룩해지려는 노력이 없을 때, 성령은 내 안에 들어오시지 못하고 탄식하십니다. 즉, 성령 충만의 전제 조건은 나 자신의 거룩해지려는 노력, 겸손함과 하나님 인정, 믿음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하실 때 달라지는 삶을 자주 경험해 보셔야 합니다. 기도원에서 받고자 하는 성령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 전체에 함께 하셔서 우리의 삶을 한층 더 품격 높은 삶으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성령 충만한 삶은 꼭 경험해 봐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시는지 꼭 알고 가셔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놀랍고 중요합니다. 오늘 살펴본 본문 내용은 너무나 잘 아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 먹을 것이 만나밖에 없자, 하나님과 모세에게 엄청난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그리고 집 앞에서 엉엉 웁니다. 이집트 노예 생활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백성들의 이 모습을 보고 모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 가장 온유한 인물(받아들임에 탁월한 사람)이라는 모세가 백성들의 원망 어린 말들과 불평(악한 말, 독한 말, 심한 말의 말 폭탄)에 무너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냅니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11:15) 심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온유하다는 모세가 차라리 죽여달라고 합니다.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민11:1) 백성들의 은혜도 감사도 모르는 배은망덕에 모세는 정나미가 떨어진 것입니다. 사람인지라 말은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말, 독한 말, 심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말에 견뎌낼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말들은 상대방에게 심한 상처를 줍니다.

욥도 친구들의 말로 심한 상처를 입은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욥19:2)라고 욥은 힘든 마음을 토로합니다. 심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말이 얼마나 심한 말인 줄을 잘 모르고 합니다. 친구들의 말은 욥을 짓눌렀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영혼을 짓이겨 놓을 수 있기에 말은 정말 잘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을 해야 하고, 상대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곱고 환한 말들을 해야 합니다. 언어는 잘못 사용하면 악을 행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부부 싸움도 대부분 말 때문에 극한 상황까지 갑니다.

욥기를 보면 욥은 정말로 말의 장인임을 알게 합니다. ‘내가 말한 후에는 그들이 말을 거듭하지 못하였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스며들었음이라'(욥29:22) 욥의 말은 따스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본인은 친구의 말에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상대방에게 스며드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욥기 1~2장에는 욥의 고난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욥은 말을 다스립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 또한 피부병에 걸린 욥에게 부인이 악한 말을 할 때도 욥은 말을 다스립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는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아니하니라'(욥2:9-10) 욥은 언어의 장인임이 분명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이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폭발하지 않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의 백성들의 원망을 쏟아낸 이유를 보면 우리 수준의 원망들입니다. 출애굽 한 후 광야에 먹을 것이 없어 쏟아져 나온 불평과 원망들입니다. 400년 노예 생활에서 풀려 난지 얼마 안 됐는데, 먹을 것 먹고 싶어 다시 노예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웁니다.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민11:10) 출애굽을 이끈 모세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백성이 모세에게 거칠게 하자, 이제는 모세가 하나님께 거칠어집니다. 이것은 거친 말이 가진 확장하는 놀라운 속성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모세의 거침에 동조하지 않으시고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 메시지를 오늘 마음에 담고 돌아가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11:16-17) 이것이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해결책입니다.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주시는 하나님의 해결책은 ‘성령을 받아라’ 입니다. 성령을 임하게 하셔서 우리가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개인과 공동체에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문제 해결 방식이 돼야 합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음의 4가지 중의 하나를 택합니다. 첫째 방법은 ‘회피(도망)’입니다. 가족도 버리고 산속으로 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복수’입니다. 원인을 찾아내어 정의의 응징이라는 명분으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복수합니다. 세 번째 방법은 ‘잊는 것’입니다. 잊기 위해 술을 동원합니다. 술에 취해 몽롱하게 사는 것입니다. 네 번째 방법은 ‘자살’입니다. 이 모두 감정에 토대를 둔 방식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의 상태에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부정적 감정으로는 부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네 가지 방법 모두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효과를 살펴보겠다고 실험할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방식은 하나님께서 오늘 답으로 제시해 주신 ‘성령’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백성을 돕는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힘드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영을 구하십시오. 이것이 오늘 여러분이 꼭 알고 간직하고 가셔야 할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성령은 도우시는 영입니다. 기도하십시오.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을 ‘보혜사'(파라:옆에서/ 클레이토스:돕는 이)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은 돕는 자, 변호사, 위로자, 인도자입니다. 성령은 나를 돕고 가정을 돕습니다. 교회를 돕습니다. 사회를 돕습니다. 그러하기에 힘들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답이 없게 됩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어둠이 물러가고 빛으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 체험은 우리를 살려냅니다.

질문 하나 하고 마칩니다. 여러분은 현재 주변을 돕는 사람입니까? (helper) 아니면 주변을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까? (trouble maker) 우리는 성령 충만하여 돕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삶이 힘든 가운데에서도 성령 충만하면 돕는 자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옆에서 도우시는 성령(보혜사)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 받으시고 충만하여 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