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4. 주일 설교: 성령이여, 오소서(행2:1~13). 양은익 목사. 성령강림주일


말씀: 성령이여, 오소서(행2:1~13)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 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행2:1-13)

6월이 시작하는 첫 주일 아침입니다. 6월 한 달간도 우리의 삶을 만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정말 약한 존재입니다. 감기에도 쩔쩔매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놀랍고 신비한 능력이 우리에게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기가 차에 깔릴 위험에 처하자, 아기 엄마는 차를 번쩍 들어 올린 사건도 있습니다. 어제 뉴스에서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21세 딸이 12층에서 투신을 하는 현장에서 엄마가 가까스로 딸의 두 팔을 난간에서 잡은 채 경찰이 출동하는 15분간을 버틴 초인적인 사건도 보도되었습니다.

‘가로등 간섭 증후군’이란 현상도 있습니다. 일부 사람에게서 순간적으로 1만~3만 볼트의 전기가 발생하여 순간적으로 그들이 가로등 옆을 지날 때 가로등이 꺼지는 현상입니다. 이런 신비한 현상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 처럼,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게 될 때 우리에게 어떤 신비한 현상이 일어날까? 궁금하게 만듭니다.

‘외국인 억양 증후군'(Foreign accent syndrome)이 있습니다. 이것은 외국어를 배운 적이 없고, 배웠다 해도 간단한 기본만 배운 사람이 사고를 당하거나 충격을 세게 받은 후, 마치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자기 나라 언어처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경우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많은 뇌과학자가 이 신기한 현상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련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 몸에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신비한 능력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모두 한가지 언어를 써서 하나로 소통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오순절 외국어 사건입니다. 오늘은 위대한 50일이 끝나는 7번째 주일, 성령강림 주일 오순절입니다. 각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신 주일입니다. 신약 교회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성령강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교회의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영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성령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도의 삶은 스스로 혼자의 힘으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삶입니다.

성령 강림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성령 하나님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민감해져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며, 성령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며 순종하는 삶은, 자신 위주로 사는 삶과는 너무나도 차원이 다른 삶입니다. 13절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합니다. 우리도 성령 하나님을 잘 모르면 이런 부류들의 사람(조롱하는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신비’함을 모르고 모습만 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삶 가운데 성령 하나님을 초청하고 성령 하나님 위주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 강림 사건은 갑작스럽게(홀연히) 일어납니다. 모두 모여 기도하던 중에 성령께서 임합니다. 누가는 이 신비한 장면을 다음같이 묘사합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2-3절) 여러분들도 성령을 거부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4절) 다른 언어란 이제껏 배운 적도, 쓴 적도 없는 언어입니다. 이 놀라운 사건을 보고 사람들은 놀랍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7-8절)

바로 이 ‘말’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핵심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언어 (말씀)으로 임재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그들은 전혀 배운 적도 없는 말들 (외국어)을 하기 시작합니다. ‘말’의 창조자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들의 말하는 내용이 달라지고, 말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4절) 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들도 성령으로 충만하기 전에는 우리와 같았을 것입니다. 나쁜 생각으로 가득 찬 말, 악한 말, 부정적인 생각들이 다 밑으로 가라앉고 그 말을 밀어낸 자리를 온전히 성령께서 차지하신 것 입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예전에는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없었던 성품들, 불신의 말들이 다 밀려 가버린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삶의 모습,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령이 나를 장악하면 나의 옛사람의 모습은 사라집니다.

2.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성령으로 충만하자, 충만함이 넘쳐,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 말의 주체는 성령입니다. 내 안에 있는 성령이 말을 밀어내서 성령에 의해 하게 되는 ‘불가항력적’인 말입니다. 생명을 건 말들은 저절로 밀려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의 말들이 내 안에서 밀려 나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해 얘기합니다.

여러분 안에 세상의 영이 지배할 그때 나오는 말들은 어떻습니까? 귀신들린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은 어떻습니까? 제어할 수 없는 악하고 독한 말들을 쏟아 냅니다. 악한 영이 밀어내는 말입니다. 말은 영의 지배를 받습니다. 성령에 충만한 영은 하나님의 말들을 쏟아 냅니다. 성령 강림 사건 당시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 말들이 얼마나 힘찼을까요? 얼마나 자신감에 넘쳤을까요?

3.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니라

모국어가 아닌 말들이 동시 통역되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밀려 나오는 말들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언어는 나와 네가 통하는 수단입니다. 통하지 않는 말은 소음입니다. 말은 소리지만 동시에 뜻입니다. 말을 통해 마음이 서로 만나고 영혼끼리 만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성령 강림을 통해 언어로 분열된 외국인과 통하게 하십니다. 말을 통해 성령 강림 첫날, 소통의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이날 바벨탑의 저주가 풀립니다. 나중에 천국에서 우리의 언어도 모두가 소통하는 하나의 언어 일 것 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일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 나를 장악하셔서 나를 이끌고 나아가게 해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벽을 만들지 않고 벽을 허뭅니다. 소통합니다. (communication: 교통, 사귐, 상통, 교제). 성령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선물을 주십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5:22-23)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이 전쟁 같은 삶에서 하나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기적같은 삶을 성령은 우리에게 허락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사랑이 불가능한 사회’를 지옥으로 정의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삶은 지옥이 됩니다. 내 안의 악한 영은 밀고 올라오며 악한 말들을 내뱉습니다. 성령은 탄식하며 우리를 책망합니다. 육체의 일을 그만 벌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삭막하고 내 영혼이 곤고 할수록 내게는 성령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성령은 어머니와 같습니다. 약하고 탄식할 때마다 끊임없이 격려하고, 위로하며, 때론 야단치십니다.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미의 마음으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성령은 위로자이며, 보호자이며, 인도자입니다. 나는 내가 사는 인생이 아니라, 성령이 살아가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신앙은 이성도 필요하지만, 신비도 필요합니다. 성령이 나를 온전히 휘 감싸는 신비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되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 사랑을 과연 할 수 있습니까? 온전한 사랑은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하실 때 나와 주님은 연결되어 사랑은 나를 통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모두 신앙의 간절한 모습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신경 세포 중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가 있습니다. 이 신경 세포로 인해 똑같이 따라 하고 모방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경 세포를 만들어 주셨을까요? 아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따라 해 보라는 깊은 뜻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히12:2)

이제는 우리 모두 주의 영을 받을 때가 됐습니다. 주의 영이 우리 안에 깊이 임재하시길 기도하십시오. 나에게, 우리 가족들에게, 우리 교회에, 이 땅에, 주의 영이 임재하시기를 초대하고 간구하십시오. 성령의 충만한 은혜 누리는 하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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