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2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25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솔로몬 아래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삶의 풍요가 가득했습니다.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었습니다. 창 22:17에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성취하심을 보여줍니다. 많은 백성은 풍요 속에서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영토의 확장과, 주변 나라들, 동쪽으로 유프라테스, 남쪽으로는 애굽 지경까지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평화를 누렸습니다. 계속적인 나라 안팎으로 전쟁을 겪어야 했던 사울과 다윗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이웃 나라와 평화를 누리고(24절), 온 이스라엘은 질서 가운데 평안히 살았습니다(25절).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지식은 고대 근동 어떤 사람보다 뛰어났습니다. 잠언과 시편에 나타난 지혜와 동식물까지 총망라한 지식을 겸비한 솔로몬은 그 당시 많은 나라들의 흠모의 대상이었으며 그 지혜를 배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찾아왔습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 부어주신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스라엘이 번영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단행하였습니다. 병마를 많이 두었습니다. 26절에 병거의 말 외양간이 사만이고 마병이 만 이천 명이라고 말씀합니다. 병마는 고대 전투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력 중의 하나였습니다. 누가 보아도 국가 안보를 위해 병마를 많이 두는 것은 필요한 조치이며 정당한 것인데, 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일까요?
본문에서는 솔로몬 왕국의 부흥 속에 삽입되어 있어서 이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 분명하게 왕은 병마와 아내와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16-17). 특별히 본문과 연결된 병마는 대부분 말의 산지인 애굽에서 얻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다시 우상을 섬기는 애굽과 접촉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국방을 위한다는 명목이 우상을 들여오는 계기가 되어 다시 애굽, 그 심판의 자리로 옮겨지게 됩니다. 실제로 애굽과 병마무역 관계를 가진 이스라엘은 우상과 접촉하게 되고 이후 하나님께 심판 받는 원인들 중에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합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흥을 갈망하고 누리되,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풍요롭기를 원하시며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멀어지거나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풍요는 구하지 않고 버려야 합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거스르는 것이라면 취하지 않는 용기를 갖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참된 풍요요, 부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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