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낙향하여 여전히 낙담하고 좌절된 마음으로 있는 베드로를 향해 ‘베드로’가 아닌 ‘요한의 아들 시몬’으로 부르십니다.
베드로란 이름은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며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요한복음 1:42에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을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 즉 베드로란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6:18에서 예수님께서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때도 지금 자신이 다시 돌아온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평범한 어부로 살았던 그를 부르셨던 자리,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신다는 뜻으로 부르심을 받았던 베드로, 주님이 가시는 길이면 어디든 따르겠다고 고백했던 베드로는 그 때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예수님을 부인했고 실망과 낙담 속에 다시 고향으로 왔습니다. 몸은 그물을 치지만 마음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의미를 찾지 못하고 혼란과 방황 속에 있었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은 처음 부르셨던 그 이름으로 다시 부르시며 그 때를 상기시키십니다. 다시 새롭게 일어서자고 일으키십니다. 베드로의 마음이 아프신 것을 아십니다. 그물을 던지지만 기쁨이 없음을 압니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깊은 방황 가운데 있는 베드로 일으키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베드로는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질문에 답하면서, 비록 예수님을 배반함으로 무너진 자신이지만,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며(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포함한) 예수님과 나누었던 수많은 추억, 그 기쁨과 아픔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되새겨 보고 또 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마지막 대답에서는 베드로가 근심하여 대답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불안해서, 슬펐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세 번씩이나 부인한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근심이요 불안이며 슬픔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송한 마음이 배어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연약함을 깊이 들여다 본 베드로, 그 속에서 더 깊이 주님의 사랑을 경험해 가는 베드로를 더 깊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함을 알면 알수록,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알게 되고 주님의 강함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갈수록 우리를 부르신 소명을 향해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실패하고 낙담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던 그 때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하신 예수님과의 귀한 나눔을 되새기며, 그 사랑을 고백하며, 주신 소명의 자리로 나오길 부르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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