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6일. 부활주일 설교: 눈물의 은혜를 구하세요(요20:11~18). 양은익 목사


말씀: 눈물의 은혜를 구하세요(요20:11~18)

오늘은 부활 주일입니다. 부활 주일, 주님의 은총이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 부활의 극적인 반전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절이 겨울에 있지 않고 만물이 생명으로 약동하는 봄에 있음도 감사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활의 큰 은혜로 참된 믿음 갖기를 소망합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한국의 예레미야 선지자로 일컬어졌던 이용도 목사님(1901~1933)이 계십니다. 목사님은 눈물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목사님 기도의 일부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눈물이 다 말랐습니다. 눈물없는 곳에 못된 것들만 무성하여 있습니다. 눈물은 살균력이 있습니다. 원망, 불행, 이기등은 전염병과 같아서 자신을 죽이고, 또 남의 가슴에 살촉을 박아 죽게 하는 악독한 병균입니다. 이 모든 균들은 눈물로써 죽일 수 있습니다. 동정의 눈물이 쏟아질때, 뜨거운 사랑의 눈물이 쏟아질 때, 남을 원망하는 것이나 시기 불평 이기 행위 등 모든 불선의 병균은 다 죽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따스하고 온유하고 미쁜 마음을 내어 줍니다. 마치 상처의 소독을 한 후에 새 살이 돋아 나오듯이!’(이용도, 눈물을 주소서)

이런 눈물에 대한 토로를 남겨주셨습니다. 눈물의 힘이 이 정도라면 여러분도 눈물을 흘리시기 바랍니다. 이용도 목사님께서는 눈물이 없으면 못된 것이 우리 안에 넘쳐 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도 기도 중에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사람들께 주님께서 눈물을 보이신 것은 세 번이지만 홀로 기도하실 때 주님은 많은 눈물의 기도를 드리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쓸데없는 눈물이 아닌한 하나님께서는 따뜻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 눈물의 끝자락에 회복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요한이 전해주는 부활의 첫 장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첫 증언자가 제자가 아닌 그리고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 입니다. 당시에 여자는 증언자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인데, 여자였던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목격되는 그 큰 영광의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주님은 왜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셨습니까? 단순히 우연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의 서술을 살펴보면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황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 울고 있습니다.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새벽에 무덤을 찾아갈 때부터 울고, 무덤 밖에서도 울고, 무덤 안에 들어가서도 웁니다. 하도 우니까 천사들도 왜 우느냐고 물어보고(13절), 부활하신 주님도 물어볼 정도로 울고 있습니다(15절). 왜 그렇게 울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왜 우십니까? 사랑하면 웁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웁니까? 눈물은 사랑할 때 나옵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정말 사랑했고, 감사했고, 그리워한 것이 분명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 한 여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시몬의 집에서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입니다.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셨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렸고 주님의 발에 입맞춤했던 여인입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렸다고 핀잔받을 때 주님은 사함을 많이 받았기에 사랑도 많다고 따뜻하게 변호해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이 여인이라면 마리아는 자신의 허물을 사해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처절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 시신에라도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달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시신마저 도둑맞아 없어진 것으로 보이니 안 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도 무덤에 와서 시신이 없는 것을 보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요한도 약간 이상한 눈치는 챘으나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무덤 곁을 하염없는 눈물로 지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장 먼저 만나 주실 만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은 도망 다니기 바쁩니다. 자리를 지키며 눈물로 지새는 마리아에게 주님께서 부활 후 처음 나타나신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연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첫 번째로 만날 수 있었던 영광을 차지한 것은 마리아의 사랑의 눈물이 만들어 낸 기적입니다.

오늘 말씀의 백미는 16절입니다. 주님께서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마리아야’ 이 음성에 마리아의 가슴은 뛰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그렇게 따듯하게 대해 주셨고 변호해 주셨던 그 음성이 어둠 속에서 들려 온 것입니다. 눈물 흘리던 마리아가 그 음성을 향해 뒤돌아섭니다. ‘예, 랍오니여’ 랍오니(사랑하는 선생님)는 존경과 사랑과 친밀함을 모두 담은 존칭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눈물, 감사의 눈물을 흘렸던 마리아, 그녀는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깊이 슬퍼해야 기쁨을 알게 됩니다. 눈물을 잃으면 기쁨도 쉽게 오지 않습니다. 기쁨과 슬픔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기쁨은 따듯한 사랑의 눈물을 나오게 합니다. 기뻐만 하던지, 슬퍼만 한다면 쾌락주의자 이거나 염세주의자일 것입니다. 둘 다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병든 자의 마음을 지적할 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결혼식)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장례식)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않는다’(마11:17) 반응이 없고 무관심한 것을 지적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남의 일에 관심 없음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기쁨도 모르고 슬픔도 모르면 큰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냉정해지고 냉혹해지고 심지어 잔혹해집니다. 히틀러 시대가 그랬습니다.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우리에게는 진실한 눈물이 필요합니다. 눈물에는 어둠을 헤쳐 나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장 어둡고 막막한 순간 어떻게 처신하셨습니까? 이를 악물고 참으셨습니까? 냉정하셨습니까? 앞으로는 눈물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눈물은 우리에게 믿음을 줍니다. 참다운 사랑을 줍니다. 믿음과 참다운 사랑이 눈물을 흘리게 할 것입니다. 기도 중에 흘리는 눈물은 100도가 넘는 것 같습니다. 이 눈물이 진정으로 흐를 때 우리는 삶을 살 수 있는 새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습니다.

눈물에는 어둠을 헤쳐나가는 힘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눈물이 주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하는 영광을 가져왔듯, 기도 중에 흘리는 우리의 뜨거운 눈물은 우리를 하나님과 만나게 해주는 연결점이 됩니다. 여러분도 이 ‘눈물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흘리게 하시는 눈물은 모든 것을 정화합니다. 모든 것을 위해 우는 겁니다. 선을 위해서, 죄를 위해서, 기쁨을 위해서, 약하고 약한 자신을 위해서, 너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부활과 회복의 싹이 움틀 것입니다.

어둠 안에는 생명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세상의 창조도 어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기의 탄생도 어두운 뱃속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새 생명의 창조는 어둠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 지금 어둠 가운데 있으십니까? 그것은 곧 새 생명이 싹틀 시기가 왔음을 알리는 시간입니다.

오늘 눈물 이야기 때문에 많이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은 눈물이 자연스럽게 용납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교회가 흘렸던 눈물들도 상당히 가식적이었기에 눈물을 외면해 버리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진실한 눈물마저 거절하면 안 됩니다 내 눈물입니다. 너의 눈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흘리는 나의 눈물입니다. 이 눈물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만 진정한 눈물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기도는 눈물을 통해 진정한 위로와 회복을 주십니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기독교에 대한 연구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최근 교회는 건물과 외형은 더 성장했지만 사람 수는 더 줄어들고 있고, 교회에 기도가 줄었다고 합니다. 신도들의 기도시간, 기도원 수가 줄었다고 합니다. 교회의 기도 모임이 점점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첫 번째로 만난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 마리아의 진심을 담은 눈물의 기도 때문이었다면,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부활을 맞이한 자다운 삶을 살아가려면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집안 살림하느라 너무 바쁘십니까? 직장생활 하느라 너무 바쁘십니까? 그러나 기도 시간만은 절대로 양보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기도 시간에 진정으로 드리는 눈물의 기도는 모든 삶의 병균들을 살균하며 하나님의 세상을 구원하시는 그 놀라운 능력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용하실 것 입니다. 자녀 문제로 걱정과 고민 가운데 있습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가슴이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답답하십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눈물에는 어둠을 헤쳐 나가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 중 흘리는 눈물이 후회를 막아 줄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아침입니다. 이 부활이 우리 안에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다 주님의 부활하신 몸을 받고 다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이 부활하신 승리의 몸을 받으시고 2017년 힘차게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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