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빌라도, 그 이름(요18:39~19:16). 2017.4.12.

20170412

2017년 4월 12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오늘 본문으로 예수님의 재판은 끝나게 됩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판결 아닌 판결을 한 후,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넘겨 주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형에 처한 사람은 결국 빌라도입니다. 이로 인해 빌라도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로마인이 됩니다. 로마 황제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은 전 세계 사람들이 기억하고 알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구절을 우리는 늘 암송하며 기억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십자가 판결 후 어떻게 됐을까요? 네로 황제에게 소환되어 죽었다는 설, 양심의 가책으로 자살했다는 설, 부인과 함께 후에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설들이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전해주는 빌라도의 모습은 유대 전체를 다스리는 지배자임에도 불구하고, 중심이 없고, 뚝심도 없고, 우유부단한 느낌을 줍니다. 왜 이런 느낌을 줍니까? 예수님 한 분을 놓고 이랬다저랬다 하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추진력이 좋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재판에는 유대 군중들의 눈치를 상당히 보면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가 다스리는 지역이 시끄러워지고 민란이 일어나면 그의 정치적인 생명이 끝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난 군중들의 눈치를 보며 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관저에 들어가지 않자 빌라도는 관저 안에 잡혀 온 예수님을 신문하고 관저 밖으로 다시 나가서 유대인에게 신문결과를 알려주며 재판을 진행합니다. 빌라도가 재판하며 관저 밖으로 나온 횟수는 4번입니다. (18:29. 18:38. 19:4. 19:13) 그리고 관저 안으로 3번을 들어갑니다. (18:33. 19:1. 19:9) 빌라도가 재판관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모양새로 재판한 것을 보면 당시 그가 유대 군중들의 눈치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군중들은 십자가에 달라고 아우성치지만 빌라도는 예수님께로부터 아무 혐의도 발견 못 합니다(18:38, 19:4,6)

정당한 재판이었다면 예수님은 무혐의로 풀려나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19장 12절을 보십시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성난 유대 군중들은 반역자를 옹호하면 빌라도도 반역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외침에 빌라도는 꼼짝 못 합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죄 없는 예수님을 죄인으로 재판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 강자나 약자나 목숨 앞에서는 약해지고 구차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권력자요, 재판관 신분의 빌라도도 피에 굶주린 성난 민중들의 함성에 굴복하고 예수님을 끌고 나와 그들에게 넘겨 줍니다. (16절) 이렇게 예수님의 재판은 끝이 납니다. 군중들의 압력과 여론에 몰려 어쩔 수 없는 잘못된 억울한 판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재판이 많이 있습니다. 역사는 진실을 밝혀냅니다. 이렇게 여론에 밀려서 재판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우리도 중심이 없으면 빌라도의 모습처럼 됩니다. 소신과 뚝심으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더욱 잘 살펴야 합니다.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신앙이 중심이 잡혀야 자녀들의 신앙도 중심이 잡힙니다. 우리는 오늘 빌라도의 모습을 잘 봐야 합니다. 지도자는 군중들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고 용기 있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설득할 수 있는 뚝심이 있어야 합니다. 인기에만 영합하면 안 됩니다. 지도자는 이끌고 나가야지 끌려 따라가면 안 됩니다. 난세일수록 이런 뚝심 있는 지도자들이 더욱 그립습니다. 모두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 죽음을 향해 끌려갑니다. 한 사람(빌라도)의 우유부단함 때문입니다. 오늘 이 빌라도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교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우리의 신앙이 뚝심 있는 신앙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리:김화영)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