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12. 주일 설교: 즐거운 사람, 우는 사람(마25:14-30). 양은익 목사.

 

말씀: 즐거운 사람, 우는 사람(마25:14-30)

가수이며 시인인 홍순관은 ‘다 함께 봄’에서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인가요 다 함께 피어야 봄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일 아침, 모두 피어나는 봄 인사를 하시며 서로 격려하시고 사랑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흥사단 입단 문답에서 민족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흥사단에 입단하기 위해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꼭 물었다고 합니다. ‘누가 독립운동을 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던 청년들에게 도산 선생은 집요하게 계속해서 물었다고 합니다. ‘누가 독립운동을 해야 합니까?’ 결국에는 청년들의 입에서 ‘내가 해야 합니다’라는 대답을 끌어냈다고 합니다.

‘나의 나든, 너의 나든, 그의 나든 내가 해야지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한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나를 국가요, 민족이요, 나라로 여기고, 개인으로서의 나를 뛰어넘어, 모두의 나, 한민족의 나, 대한의 나로 정직하고 떳떳한 공적인 나로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각 사람의 인격과 자아를 존중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임을 각성시킴과 동시에 전체가 하나가 되는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역설하셨습니다.

오산 학교의 설립자 남강 이승훈 선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 남강 선생에게 외국의 세력과 연합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제안했을 때, 선생은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씨앗이 땅을 밀치고 올라올 때, 제힘으로 밀치고 올라오지 남의 도움을 받아 올라오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없습니다. 모든 일 제힘으로 하고, 제힘으로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어려운 시기 선조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정신은 3.1 만세 운동, 6.1 항쟁으로 그 정신이 이어졌습니다. 힘없고 미미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 정신은 지금도 살아 있어야 합니다.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입니까?’ 이 나라는 나의 나라이며 사랑하는 나의 자손들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내가 더욱더 사랑하고 아름답게 세워나가야 할 나라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특히 더 이 정신을 철저히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보고 지키라고 맡기신 나와 우리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탄핵 방송을 보고 책상에 앉아 성경을 볼 때 주신 말씀이 오늘 말씀입니다. ‘즐거운 사람, 우는 사람’ 이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달란트 비유입니다. 당시 상황에 빗대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인은 상당한 부자였습니다. 외국을 가는데 재산을 다 가져갈 수 없기에 종들에게 맡기게 되었습니다. 이 맡김은 이자를 받는 조건도 아니고 차용증서를 쓰는 조건도 아닙니다. 철저한 신뢰와 신임하에 맡긴 것입니다. 종들을 자유인으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로 신뢰하며 맡긴 것 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달란트는 엄청난 액수의 돈입니다. 금 1달란트는 일반 노동자 15년의 임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월 급여를 300만 원으로 가정하면 1달란트는 약 5억 4천만 원 가량 됩니다. 첫 번째 종은 5달란트를 위임받았으니까 27억가량 되는 겁니다. 세 명의 종이 위임받은 8달란트는 노동자 임금 120년분, 약 43억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입니다. 주인은 마음껏 일해 보라고 종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 돈으로 장사할 수도 있고 투자해서 돈을 늘릴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믿고 큰돈을 맡긴 주인의 신뢰에 대해 종들은 열심을 다해 새로운 삶을 살아 은혜를 보답해야 하는 소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얼마 후 주인은 돌아와 결산을 할 것 입니다. 결산의 결과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즐거운 사람( 21절, 23절,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은 종입니다) 둘째, 우는 사람(30절, 1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결산 때 즐거워하는 종은 맡은바 소임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종은 맡긴 돈의 원금을 잃으면 야단맞을까 두려워 돈을 땅에 묻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혜택과 기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기회를 사장시켜 버린 것입니다. 결산의 날 결과는 엄중함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결산의 날도 이러할 것입니다.

또한, 지금의 우리의 삶을 매 순간 돌아볼 때도 이 말씀은 두려운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이 내쫓긴 종은 슬피웁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그렇듯이 남의 이야기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시면 안됩니다. 이 본문의 강조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은 두 배의 이윤을 남긴 종에게 포인트를 두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관심은 1달란트마저 빼앗기고 쫓겨나 울고 있는 종에게 있습니다. 이 종은 누구일까요? 앞으로 울게 될 종이 나는 아닐까요? 우리 모두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상상하는 너가 아닙니다. 쫓겨나 슬피 울게 될 그 당사자가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며 슬피 울며 쫓겨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나 아닌 너만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성경 말씀을 잘못 보고 계시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인생을 살며 잘못 할 수 있는 나 자신을 향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자녀로서의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축복과 특권을 사장시키지 말고 우리가 주님의 자녀답게 잘 살아야 하고 결산의 날은 엄중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1달란트 받은 종의 뒤를 따르면 안 됩니다. 맡기신 1달란트마저 빼앗으시고 내쫓아 버리십니다. 그때 아파하고 슬퍼하고 통곡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시는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이 격랑의 우리의 3달을 돌아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은 밖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이제는 차분히 눈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특권을 얼마나 잘 활용하며 주님의 자녀로서의 내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 질문은 유치한 질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몇 달 남의 것을 샅샅이 살펴봤습니다. 등장인물 모두를 살펴봤습니다. 이제는 내 것도 현미경으로 살필 때가 됐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리이며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무나도 우리를 잘 아시기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의 눈 속의 티끌만 보려 하지 말고 네 눈의 들보를 보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남의 것을 봤으면 네 것도 돌아보라는 신앙의 원리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특권을 주신 것이 우리가 단지 예뻐서 우리만 호의호식하라고 부르셨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주인처럼 맡긴 달란트로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보라고 주셨을 것입니다. 이 죄악 된 세상과 똑같이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을 통해 알려 주시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보라고 우리에게 그 크신 특권을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열심을 다해 받은(맡기신) 달란트로 최선의 수익을 내야만 합니다. 게으름 피우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우리도 그 종처럼 쫓겨나 슬피 우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세상은 싸움판입니다. 싸울 일이 있어서 싸우기도 하지만 싸우지 않아도 될 일 가지고도 싸웁니다. 가인 이후로 인류의 역사는 그랬습니다. 전쟁이 잦아들 날이 없습니다. 이 만만치 않은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삶은 내 개인으로써의 삶뿐만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부르심 받은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 큰 그림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셔서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사람이란 엄청난 기회와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 싸움과 전쟁이 난무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자 개별적으로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벅찬 감동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곧 결산의 시간이 올 것입니다. 우리도 장사를 잘해서 이윤을 남겨야 합니다. 영적인 장사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 밑천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과 맞서 싸우며 끝까지 인내하며 우리를 우리의 목표까지 쓰러지지 않게 해 줄 우리의 무기는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에 사랑은 모든 것을 인내하며 감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땅에 오셔서 본인의 목숨을 내놓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면 우리는 아무리 고난과 역경이 와도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사랑이 없을 때 우리는 세상 환경에 무너집니다.

바울 사도도 깊은 영성으로 이 사랑의 위대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15가지 사랑의 덕목).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넘어지고 쓰러지고 무너질 존재들입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라는 놀라운 말씀을 주십니다.

내 영적 은사와 놀라운 믿음과 내 헌신과 봉사의 열정도 사랑이 있어야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 논리적이고 똑똑한 사람, 강한 신념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러나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상처받은 우리가 치유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치료제입니다.

요즘 우리는 정의와 공의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 단어가 얼마나 엄중한지 알고 썼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밑바탕에 없는 정의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보복의 악순환에 빠집니다. 사랑이 없으면 나 아닌 너는 모두 이방인(타자)입니다. 내 boundary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모욕으로 대합니다. 굴욕을 안깁니다. 삶에서 배제하고 낙인 찍어 버립니다. 이 모두 사랑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주위에서 너무나도 많이 보는 일들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 용서가 나오게 됩니다. 최고의 정의는 용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적폐청산의 화룡점정은 용서입니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이 땅에 만연한 모든 불의한 것들을 해결하는 마지막 한 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책임입니다. 받으신 달란트를 잘 쓰시길 바랍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엡4:32)는 엄청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사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통찰력 깊은 영성의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라실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 놀라운 달란트를 집에서도 쓰시고, 교회에서도 쓰시고, 사회에서도 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산의 날 우리는 어둠으로 쫓겨날 것입니다. 그래서 울며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울며 통곡할 날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

심수봉의 백만 송이는 그 가사가 신앙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메시지입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그리스도인은 늘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이 늘 우리와 함께하심을 사랑이 나를 늘 지켜주실 것임을. 이 나라를 사랑하는 모두에게 이 크신 주님의 사랑이 울려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일본강점기 그 고난과 압제 속에서 우리 민족의 날개가 다 꺾였을 때 이상 시인은 [날개] 마지막 부분에서 외쳤습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이것은 생명의 외침입니다

이렇게 바꿔봅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살자 살자 살자 한 번만 더 살자꾸나’

여러분 마음에도 이 강렬한 외침의 울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희망의 외침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나라 사랑은 형식적이 아닌 진실 그 자체였습니다. 이 진실한 나라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렇게 열심을 다해 결산의 그 날 모두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며 웃는 환호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