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3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12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그 의미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는 권력과 권위를 중시하는 로마의 아래에서, 여전히 종과 상전이 존재하는 사회였으며, 무엇보다 종교 지도자들의 특권의식으로 계층의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 시대가 올 때 누가 높은 자리를 얻을지 내심 서로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종이 되어 겸손히 서로를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겸손과 섬김은 근본적으로는 단순한 감정이나 도덕적인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발을 씻기시는 것에 대해서 7절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자기 발을 씻어주시는 것을 거절하는 베드로에게 씻음을 받지 않으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죄사함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제자들이 그 용서와 사랑을 서로 나누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34절에서는 이제 죽으심으로 보지 못하게 될 제자들에게 새 계명으로 주님이 사랑한 것 같이 제자들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의 본은 그의 온 생애가 말해 줍니다. 예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연약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왕궁이 아닌, 냄새 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시골 목수로 사시다가 공생애 기간 많은 이적으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지만 세상의 영광은 하나도 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 영광을 구하시며 십자가에게 고통을 겪으시며 죽으셨습니다. 초라한 모습으로 오셔서 멸시와 고통 받으시며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은혜에서 오는 감격으로 제자들은 이후 더 이상 세상에서 높아지려고 하지 않고 생명을 다하기까지 겸손히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을 위해 섬겼습니다.
16-17절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제자들은 주인 되신 예수님의 종이며,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겸손과 섬김은 복된 것입니다.
성도의 겸손과 섬김은 예수님이 모본입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주님 앞에 내 냄새 나는 발, 그 연약함을 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그 연약함 올려드리고, 그 다음엔 내 연약함도 다른 지체에게 내어 놓고,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함께 보듬어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강함과 약함이 있습니다. 누구에겐 강함이지만 어떤 이에겐 약함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서로 보듬어 주는 귀한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는 복이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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