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9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시며 삯꾼 목자와 대조하며 말씀합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선한 목자는 양의 주인이며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립니다. 삯꾼 목자는 품삯을 받는 일꾼이며 위험할 때 양들의 목숨을 버립니다. 선한 목자는 양의 생명에 관심이 있지만, 삯꾼은 품삯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차이는 평화로울 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양 떼가 위험에 처할 때 드러납니다. 건조하고 척박한 이스라엘에서 양들을 지키는 일은 위험한 일입니다. 굶주린 맹수가 언제 공격할지 모릅니다. 다윗이 목자일 때 양을 구하기 위해 사자와 곰과 싸웠던 경험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삼상 17:34-35). 생명을 다해 양을 지키던 다윗은 누구보다도 목자의 심정을 이해하며 고백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사실 삯꾼 입장에서는 양이 제 양도 아닌데 이리가 떼로 몰려올 경우에는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기까지 양을 지킬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구전 율법을 모은 책인 미쉬나에서는 그 당시 삯꾼 목자는 이리 한 마리가 공격하면 양을 지켜야 하지만, 두 마리 이상이 공격하면 양을 버려도 책임이 없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만큼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양의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양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오신 구세주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에스겔서에 보면 종교 지도자들이 삯꾼처럼 행하여 양들이 노략거리가 되고 들짐승의 밥이 되는 것을 보며 탄식하며 한 목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겔 34:8,23; 37:25). 사랑 없이 위선이 가득한 종교지도자들, 그 삯꾼들 앞에서 구약시대 예언했던 바로 그 구원의 참 목자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소경이 눈을 뜨는 생명의 존귀함에 기뻐하기 보다, 자신들의 교리와 권익을 중히 여겨 출교를 시킵니다. 소경은 예수님을 구주로 따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더욱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생명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 나는 그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의 양으로 잘 따라가고 있습니까? 사람을 대할 때, 영혼의 생명에 관심이 있습니까, 삯에 더 관심이 있습니까? 아낌없이 주는 사람입니까, 받은 만큼만 주는 사람입니까, 받은 만큼도 주지 못하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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