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진실로 진실로(요3:3-5)
오늘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어제가 입춘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눈이 옵니다. 그러나 곧 따스한 봄이 올 것입니다. 지금 아픈 문제로 추운 겨울을 보내시는 교우가 있다면 빨리 따듯한 봄기운이 찾아오기를 계속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진실의 문제를 보고자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때 진실함은 반드시 가져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시간의 제약으로 많은 것을 다룰 수는 없더라도 ‘진실’에 대한 돌아봄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 새벽 예배시간 계속 요한복음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진실’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에만 ‘진실로 진실로’라는 중복 표현이 25번이나 나옵니다. 진실에 대해 그토록 거듭 강조하셨던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 참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진실의 반대는 거짓입니다. 진실하다는 얘기는 순수하고 정직하고, 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얀 거짓말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거짓에는 위선이 깔려 있습니다.
‘위선자는 감히 그분 앞에 설 수 없다’(욥13:16.공동번역)는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은 거짓과 위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이 진실한 것을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시51:6)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보다도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실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것을 믿고, 입에 하나님을 달고 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교인과 교인 아닌 사람 중에서 누가 더 진실하겠습니까? 우리는 내심 ‘그리스도인들이 그래도 좀 진실하겠지’하고 기대합니다. 윤리학자들이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연구기관을 통해 연구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두 그룹 간에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미국, 한국 다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교인이라서 진실하고, 교인 아니라서 덜 양심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누군가가 몰래 카메라로 나의 일상을 1주간 촬영했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어떤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흥미로운 사실은 교회가 소수집단으로 있을 때는 상당히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김구 선생은 예전에 ‘경찰서 10개보다 교회 1개 세우는 것이 더 낫다.’ 고 했습니다. 그 당시 교인들의 삶은 진실하고 존경받던 삶이었기에 그런 말이 모두에게 이해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인 수가 늘어난 지금 우리의 모습,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야소 교인들은 거짓말 하지 않고 허랑방탕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진실한 삶을 살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떠한 합리화나 양보함 없이 진실이라는 삶의 가치를 지켜내야만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때 묻은 사회 속에서 때 묻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과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함을 말씀합니다. 3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5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거듭난 척하는 것으론 안 되고 성령으로 진실하게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진실함입니다. 일거수일투족, 삶 전부가 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어떡하면 진실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진실하지 못하게 하는 힘과 세력을 방어해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파고들어 와 우리를 진실과 멀어지게 하는 것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세력은 영적 세력으로 도덕적 능력에 따라 각 개인에게 작용합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잘 대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하지 못하게 하는 일반적인 사항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과장된 말
말은 진실을 막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말 중에 특히 과장된 말이 진실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말은 좋은 속성도 많지만 나쁜 속성도 있습니다. 말의 나쁜 속성 중 하나가 과장입니다. 과장은 진실이 아니고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과장된 말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제어 못 할 정도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큰 영적 세력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속에는 과장성에 대한 유혹이 대부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월감을 느끼는 순간이나 나를 방어해야 하는 순간 나타납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무너지는 순간을 보십시오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4절의 ‘절대로’란 표현도 과장입니다. 5절의 ‘하나님처럼 된다’는 표현도 과장입니다. 뱀의 과장된 유혹에 아담과 하와가 무너진 것입니다. 과장된 말을 하는 사람, 그것을 듣는 사람 양쪽 모두에게 과장은 큰 유혹입니다. 듣는 사람은 그것이 과장임을 알때도 알면서도 과장을 받아들입니다. 뻔한 사실에도 넘어갑니다. ‘당신 굉장히 예쁘네!’ 하는 표현에 기분좋게 반응하는것 처럼 말입니다.
과장은 욕망과 관련 있습니다. 과장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과장은 우리를 진실과 멀어지게 합니다. 뱀 같은 사기꾼들은 과장성을 무기로 유혹합니다. 사기꾼들의 주특기는 과장입니다. 과장을 남발하는 사람은 늘 주의하셔야 합니다. 과장을 싫어하는 사람은 과장의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기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과장을 할수록 진실에서 멀어집니다. 과장은 위선을 낳고 위선은 거짓을 낳습니다. 과장은 거짓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지름길입니다. 고쳐야 할 나쁜 습관입니다. 그래야 진실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과장하는 시대, 포장하는 시대, 뻥튀기하는 시대입니다. 교회와 신앙인들이 배워서는 안됩니다.
2. 남에 대한 지나친 의식
진실하지 못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눈치입니다. 비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타인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게 되면 거짓과 숨김이 들어오게 됩니다.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온 시간이 언제입니까? 밤입니다. 니고데모는 사람들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에 밤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 시대 존경받는 지위에 있었던 니로데모로써는 젊은 예수님을 찾아갔다는 소문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쓰는 단어에 ‘쪽팔린다’(부끄러워 체면이 깍이다)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부끄러움’이라는 단어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부끄러움이란 자기 스스로 돌아보아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스스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반면에 쪽팔림은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는 것입니다. 시선이 남에게 가 있습니다. 비교하며 경쟁하는 시대, 이런 세태 속에서 살다 보면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도 모르게 서로 비교하며 살게 됩니다. 친구들, 이웃집과 남편의 지위를 비교하고 자녀들의 성적을 비교하고 그러면서 우쭐하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마음은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듯이, 서서히 내 마음(내 삶)을 훔쳐갑니다.
쪽팔려 하는 사람과 부끄러워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많을 것 같습니까? 전자가 훨씬 많습니다. 이것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사회는 불행하고 위험한 사회, 위선적인 사회입니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견제와 의식은 건강하지 못한 영성입니다. 과도한 비교의식과 눈치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작은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시고 계십니까? 알게 모르게 진실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당당하십시오. 과장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시고, 남의 눈을 의식하며 비교하는 삶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과장하려는 유혹과 자꾸 비교하며 우쭐하거나 초라하게 느끼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3. 잘못된 가치관
가치관이 잘못되면 진실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돈이 최고인 사람은 돈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살아갑니다. 명예가 최고인 사람은 다른 가치를 다 포기하더라도 명예를 지키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는 가치를 위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치관이 잘못되면 내가 잘못하는 줄 모르게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애써야 합니다. 잘못된 가치관으로는 진실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임을 고백하고 살아야 합니다. 좋은 가치관을 따르고 있어야 진실 하고자 하는 몸부림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거짓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실하려면 첫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내가 진실해지려고 애쓰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할 힘은 하나님께로 부터 옵니다. 진실(眞實)은 진리의 열매입니다. 우리에게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진리가 있어야 진실할 수 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있어야 진실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주님은 마귀의 유혹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유혹을 말씀으로 이겨내면 결과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히4:12.공동번역) 이런 날카로운 말씀의 칼맛을 늘 봐야 합니다.
둘째, 진실하려면 하나님이 언제나 내 앞에 계시다고 하는 코람데오(Coram Deo)의 의식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진실은 그리스도인들의 포기 할 수 없는 삶의 가치입니다. 거대한 거짓의 그늘이 우리를 두르고 있지만, 용기 잃지 말고 진실한 삶 이루시면서 하나님 사람다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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