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9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요6:5).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릅니다. 저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병과 문제를 고쳐주시기를 소망하며 옵니다. 갈급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향합니다. 식사 때를 잊을 정도로 열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무리를 보시고 그 육신의 고통뿐만 아니라 영혼을 불쌍히 여기십니다(마 14:14, 막 6:34, 눅 9:11).
이 때는 유월절 무렵인데,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갈릴리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식사 때가 되었을 때, 무리를 마을에 보내어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시거나(마 14:15, 막 6:36, 눅 9:12), 또는 한 끼 정도 끼니를 거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병이어 표적으로 사람들을 먹이십니다.
유월절은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을 면하고 출애굽할 수 있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념하며 대대로 지켜왔던 명절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유월절에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유월절 식사 때에 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자신의 살과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육체의 배고픔에 기적의 양식을 채우시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영혼의 배고픔을 해결하시는 구주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는 예수님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며 자기에게 오는 자는 영원히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체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세상 왕으로 예수님을 따릅니다. 세상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기적을 원합니다. 세상 왕이 되셔서 세상을 지배하시고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세상을 만족시키는 왕을 기대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세상의 왕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삶의 수많은 인도하심을 경험하였어도 여전히 육체의 만족이 없는 인생을 보며, 끊임없이 세상 왕으로서 이것도 저것도 해결해 주셔야 할 예수님을 기대하며, 늘 배고픔의 문제에만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기적을 경험했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의 굶주림으로 영생의 양식을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허다했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경험하고도 그 때뿐,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의 만족을 구하며, 영혼의 충만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갈급한지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제한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잠시 배부른 것에 갇혀 있지 않고, 영원한 배부름을 사모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물으십니다.
“너는 어디서 떡을 사서 먹겠느냐?”
“어디서 사서 네 형제자매를 먹이겠느냐?”
예수님에게서 온 양식입니다. ‘생명이 떡’이신 예수님, 그분 자신이십니다. 우리의 영혼의 양식은 예수님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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